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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진첩/여행 사진첩

조도(진도군)

 

 

 

 

 망각은 서럽고 무관심은 두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기를 쓰고 맑은 가슴으로 옛일을

추억한다. 추억은 기억이 된다. 기억이 모여 다시 역사가 된다. 이것은 슬픈 추억 혹은

역사 이야기다. 2014년 4월 16일, 이토록 잔인했던 4월이 또 있었을까?

 

 그 해 4월은 여느 해 4월 보다 더욱 참담했다.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맥 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날의 날씨는 한 없이 우울했던 잿빛하늘이

며 기막히도록 스산했다.

 

 그리고 4년 여가 흐른 지금. 그토록 달라지자고 했건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가만히 있

말자고 했건만 모든 것은 그대로 가만히 있다. 절대 잊지 말자고 했지만 이젠 잊지 말자

이들과 그만 잊자는 이들이 서로 적이 된 형국이다.

 

세월호의 비극이 발생한지 4년 여, 팽목항에 섰다. 답답했다. 먹먹했다. 우린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죄스러웠다. 노란 리본을 다는 것으로, 참회의 묵념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들의

죄가 절대 용서 받지 못한다.

 

 러나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은 세월호는 침몰했어도 "진실은 침몰되지 않는다." 였다. 그것

은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의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염원하는 민중들의 처절한

외침이 녹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행 일시 : 2016. 10. 17(수)

여행 코스 : 진도항(팽목항)~ 창유항~ 도리산 전망대~ 하조도 등대~ 불등아랫샘

누  구  랑 : 삿갓 모임 회원들이랑

 

 세월호 리본을 바라보며......▼

 

 

 

세월호 기억의 벽을 세우며.....

 

 2014년 4월 16일, 제주도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뒤 자신들만 탈출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도우

며 구조를 기다리던 304명은 모두 바다에 잠겼다.

 

배 안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도 있었다. 정부는 이들 중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했다. 살아있는 우리는 부끄럽고 참담했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가

슴에 노란 리본을 단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우리는 304위의 영혼들 앞에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고. 그날의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이제 우리 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돈과 권

력에 지배받지 않는 민주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 마음을 전국 26개 지역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타일 4,656장에 쓰고 그려 이곳 팽목

항에 "세월호 기억의 벽" 을 세운다. 

              

 

                                          2015. 4. 16

 

       - 세월호 기억의 벽을 만드는 어린이 문학인들 외.....

 

 

 

 

세월호 "기억의 벽" 앞에 섰다. "세월호 기억의 벽을 만드는 어린이 문학인들" 등

여러 단체에서 공동으로 설치한 기억의 벽이다. 여기 그 전문을 올려본다.▼

 

 

 

안타깝고도 슬픈 세월호의 상흔들을 뒤로 하고 조도를 향하여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주위에는 새우깡을 찾아 달려드는 갈매기떼가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힐 듯 아슬아슬 곡예비행을 하기 마련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따라 단 한 마리의 갈매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 갈매기

떼 마저도 그날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날의 바다가 너무 슬

펐기 때문이리라.▼

 

 

 

 깊어져 가는 이 가을, 더 늦기 전에 어디론가 하염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린

조도로 향한다. 모든 것이 풍성한 가을이 좋듯 가을사랑도 좋다.가을사랑은 고요해서

좋고,특별한 말이 없어도 느낌이 통해서 좋다.

 

 사랑에 목숨 걸 일은 없지만 이제라도 아리아리 빛나는 가을사랑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한참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었다.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곳으로 데리고 와서 일생을 살다가 살다가 죽

어갈 것이다.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같았다. 조금 전 진도항에서의 슬프고 가슴 먹먹했던 일

들이 바로 지금 여객선 갑판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서 이상 야릇한 감정을 폭

발 시키고 말았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안내도 앞에 섰다. 나무와 풀은 비와 바람으로 햇빛으로 생명

을 이어가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넘나든다. 사람살이도 그렇게 말 없이  넘나

들며 마음을 전하는 것일게다.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말자,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말자.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

이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볼때 나는 우울하다.▼

 

 

 

 팽목항에서 약 40분을 달려 창유항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조도만을 생각하고

조도를 느끼고 조도를 노래할 순간들이 찾아 온 것이다.▼

 

 

 

 조도가 자랑하는 도리산 전망대에 올랐다. 조도군도 154개의 섬이 모인 절정의

다도해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조도는 역시 아름다운 섬이었다. 이 아

름다움 앞에서 어느 순간 이마가 시큰해질 정도의 슬픔이 찾아왔다.

 

아름다움은 슬픔을 부른다. 유난히 눈부신 아름다움에 취해 갔다. 그 어떤 감정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비루한 수필가인지라 그럴듯한 감성의

달필로 이 아름다움을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쪽빛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조용히 일렁거리는 파도는 흡사

덜익은 젖가슴 같았다. 우린 그곳을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우린 탄성을 지르며 보고 또 보았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황홀하였다. 그것은 흡사 자연이 빚어낸 작품들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은 존재하지 않은 듯 싶었다.

 

저 정도의 풍경 앞에서라면 갖은 걸 다 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이 바로 이 순

간에서 정지했으면 좋을 것 같았다. ▼

 

 

 

 

 

 한 줄기 따뜻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파란 하늘이 거울처럼 쪽빛바다 위에 아름답게 비친다. 아~ 이곳은 다도해,

보고 있어도 보고싶고, 곁에 있어도 그립고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쉽게 찾듯 남들보다 한 발만 빨리 움직이면 우린

더 아름답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여기 소개되는 "바실홀"도

그랬을 것이다.

 

 1816년 9월 5일, 이양선을 타고 이곳 상조도에 정박한 후 섬의 꼭대기에 올

라 135개의 섬을 세고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라고 외쳐댔으니 말이다.▼

 

 

 

다음 남도 여행지는 "관매도" 라고 암시라도 하듯 관매도에 관한 홍보 안내판이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었다.▼

 

 

 


 

 



 

                                 

 

 

 

 

 

 역시 남해바다는 모성의 바다처럼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비릿한 갯내음과 부딪히고

고함 지르는 서해바다가 삶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분명 남해바다는 좋은 사

람들과 밀어를 나누기 좋은 환상의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사는 냄새를 맡기엔 재래시장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고 한다. 성질 급한 사람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엔 파도가 좋고,

장 살기좋은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울적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고, 세상

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여행이 좋다고 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울적해서 세상

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바람 부는 날 나는 이곳 조도에 왔다.▼

 

 

 

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저곳은 쑥밭이라고 한다. 이곳 조도의 주요 수입원은 톳 양식과

쑥 재배가 있는데 쑥 재배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의 몫이라고 한다. 쑥은 10월 부터 나

기 시작해서 겨울철은 물론 봄까지 계속 쑥이 나온다고 한다.▼

 

 

 

조도대교이다. 조도대교는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교량으로써 그 길이는 510m,

폭은 8.2m 이며 1997년 준공되었다고 한다. 주변의 나배도, 옥도의 기암절벽들

과 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조도 등대에 왔다. 하조도등대는 등탑의 높이 12m이고 등고는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48m에 이른다.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 해역에서 가장 조류가 센 장죽수도(長竹水道)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909년 2월1일 조선총독부 체신국의 관리 아래 처음 불을 켰다고 한다. 여수, 부산,목포,

군산, 인천 사이를 왕래하는 1만톤급 이하 선박의 주요 뱃길이 되는 곳이며,북동쪽 끝에 광

력이 높은 유인등대를 설치하였으며 등대의 불빛은 39km까지 이른다고 한다.▼

 

 

 

 새떼가 내려앉아 다도해의 절경을 빚어낸 한국의 하롱베이, 조도(鳥島)라는 이름은

수많은 새떼가 바다 위에 날개를 접은 채 앉아 있는 형상에서 유래됐다고 하며, 200

여년 전, 영국 해군함정에 의해 발견된 섬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섬 조도, 이곳에서는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않아도 되며

머리 아픈 일들은 잠시 접어놔도 된다. 오직 섬의 아름다움에 취하

고 취하면 그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런 저런 곳으로 훌쩍 떠나 어색한 시.공간에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삶에 잔잔히 녹아드는 것, 나의 이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다가 있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하늘의 색깔을 그대로 빼닮은 남해바다,

그 바다 앞에 서 있는 나는 부러울 것이 없었고 아쉬울 거라곤 없었다. 그래서 내

삶은 가벼워서 좋았고 나를 감싼 풍경은 마냥 아름다웠다.▼

 

 

 

 

 

 

 

 불등 아랫샘의 모습이다. 마을 골짜기의 물이 땅속으로 흘러 만조 시에는 바다가 되고

간조 시에는 바닷물이 밀려나가고 솟아나는 용천수가 고여 마을 주민들이 식수와 생활

용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갯가에서 나오는 물이 짜지 않는 것인지 역시 "신비의 갯샘" 이었다.▼

 

 

 

 

 조도 사람들의 사는 마을이 보고싶어서 "육동 마을"을 찾았다. 한 눈에 봐도 정감있고

행복이 넘치는 마을 같았다.사람이 태어나고,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 일 외엔 오래토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화스런 마을이었다.

 

그야말로 다툴 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좋은 마을 같았다. ▼

 

 

 

 

 

 

 

 

 

* 마지막으로 평소 제가 좋아하는 시, 여러분과 함께

  공유코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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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 병률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무엇이 문제인가,

 

해는 지고 있고

하늘이 시리게 시리게 파란데

저녁으로 맥주 한잔과 키예프식 호박전을 앞에 두고 있는데

당신이 내 마음 속에 있는데

 

황금으로

지은 집을 가진들 무슨 소용이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이 가슴 미어지게

눈부신들 어찌하랴 당신이 당신이 없는데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바보 같은 사람

여러번 말했지만 나는 멀리 있는 사람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