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세면을 하면서 거의 반사적으로 거울속의 내 모습을 쳐다보게 된다. 어떤 날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아직은 쓸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옛사람의 얼굴인듯 아주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거울에 그런 마력이 있나 하고 다시 들여다 봤을 때, 문득 그동안 세월의 무게에 찌들어 볼품사납게 변한
내 얼굴임을 확인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세월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만든 벽시계는 때로는 고장이 나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시계는 고장 나는 법이
없다. 참으로 많이도 달려 온 세월이다. 많은 세월을 달려오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그 사람들...
지금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세월은 흙과 바람에 녹아들어 말이 없다. 오늘 우리는 또 몇
백년 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막막했다. 아득했다. 그리고 울적했다. 이런 날일 수록 오늘 내게 준 건강과 기량을 부질 없는 일에 탕진하지
말고 좀 더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절절했다.
이 보잘 것없는 내 얼굴이 구름속에서 환히 그 모습을 드러낸 달처럼 조금이나마 이 세상을 밝게 비춰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건강해야 한다.몸 못지않게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산정호수에 왔다. 속세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위로받기 위해 산 속의 맑은
호수에 온 것이다. 내일부터는 적어도 며칠동안은 세수를 할때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그 무엇으로 물들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산정호수를 감쌌던 노을 같기도 할테고, 그곳을 적시던 아침 태양같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세수를 하고나서도 한참 동안은 붉게 상기돼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오늘 산정호수를 통해서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기엔 재래시장이 좋고, 조금이라도 우울한 마음을 위로받기엔 바람부는 날이 좋고 세상
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나들이가 좋다."는 말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은 주말 산행 대신, 청소년들의 캠핑체험에 다소나마 도움을 주기 위하여 포천에 왔다.▼
캠핑 체험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에 인근에 위치한 산정호수에 왔다. 산정호수는 명성산 자락에 있다.
명성산은 슬픈 사연이 있는 산이다. 명성산은 궁예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울음산이다.▼
호숫가를 거닐었다. 빨간 단풍 앞에서 발길을 멈춰섰다. 한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모진
아픔을 겪었을 것이다. 단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슬픈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떠나야만 한다.
한햇동안 나무에 매달려 있던 단풍들이 나무를 떠나는 것은 더 많은 단풍잎들이 나무에 매달리게 하기 위해
서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저 단풍잎들이 저절로 가
지에서 떨어져나가듯이 그래야 그 자리에 새 순이 난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산정호숫가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불어왔다. 노란색 단풍잎이 흐느끼듯 흔들렸고,
공허한 내 마음도 갈피를 못잡고 흔들렸다.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이었겠지만 왠지 슬퍼졌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만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얕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습게도 스스로를 경멸하는 꼴이다. ▼
산정호수의 맑은 물을 바라보니 문득 술 생각이 난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내가 술을 마시는 건 순전히
사람이 좋아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건 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술은 착하며
솔직하다. 술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리고 술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하지 않으면 그냥 물일 뿐이다. 그저 수돗물에 지나지 않는다. 훗날
나는 산정호수의 오늘을 짜릿한 소주맛으로 기억코자 한다. 목을 따라 내려가던 화학주의 그 쓰라린 냄새
로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 욕망이 강한 사람들은 권력을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값진 것으로 여겨왔다. 왕건은 어땠을까? 불의를 치는 것은 반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의연히
반역의 대열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역사는 분명 냉정하면서도 이성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당위성과는 달리 역사는 엄연
히 최종 승자의 전유물이 돼버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이런 빌미를 제공한 궁예에
게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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