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 서귀포의 모처에서 폐암 투병 중이신 법정스님의 병세가
여간해서는 호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스님의 어느 책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병마를 두고 어느 선사께서는 "몹쓸 것이 예고도
없이 찾아 와서는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하지만 어쩌겠느냐?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소중한 시절 인연이 아니겠느냐?
너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어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 이 말씀은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회자되는 스님의 순수한 영혼일 것이다.
한편 같은 병으로 투병 중이신 이 해인 수녀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 나는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고를 타고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이다."
또한 수녀님과 가장 절친한 작가로서 "별들의 고향"으로 우리와 너무 친숙해져 버린 최인호
작가께서도 현재 암 투병 중이시다.
부디 침묵의 지혜를 감성의 언어로 빚어내 우리에게 끝 없이 들려주신 법정스님과 두분의
기적적인 쾌유를 간절히 빌어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어제의 무거웠던 산행을 반추해 보기로 한다.
산행 일시 : 2010. 1. 30(토)
산행 코스 : 동상주차장~칠성대~운장대~상장봉~복두봉~구봉산~주차장(양명마을)
산행 시간 : 약 7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산행 들머리인 동상 주차장이다. 당초 들머리는 이곳이 아니고 피암목재였는데 관광버스 기사께서
알바를 하시는 바람에 이곳을 들머리로 삼기로 하였다. 뿐만아니라 산행도 당초 계획보다 30여 분이
늦은 11시가 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날씨도 겨울날씨 답지않게 포근했다. 따라서 초입부터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
동상휴게소를 출발할때부터 산길은 계속 오르막 길의 연속이었다. 간간이 빙판길이 있었고 그 위로
눈도 쌓여있었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최대한 버텨보기로 하였다.
오르막 길을 걷는 중에 아이젠을 착용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우린 칠성대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연석산 삼거리이다. 우측으로 진행하면 연석산이고, 우리는 왼쪽 운장대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몇 년전 산행은 시내버스 종점인 외처사동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연석산 방향으로 하산하였었다.▼
연석산 삼거리까지는 그럭저럭 아이젠 없이도 왔는데 이곳부터 아이젠 없이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귀찮았지만 우린 아이젠을 착용하고 더딘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듯 북두
칠성의 전설이 담겨있는 해발 1122m의 칠성대(서봉)에 이르렀다. ▼
분명 영하의 날씨일텐데도 오르막길을 걸어왔기 때문인지 무척 덥고 땀이 많이 흘렸다.
모자도 벗어버리고 덥석 주저 앉아버렸다. ▼
칠성대를 지나 운장대로 향하는 길목 어느 구조물 철조망에는 수 많은 리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을까? 그렇게라도 내세우고 싶었을까? 백두대간 마루금도 아닌데.. 복잡한
산길이 아닌데도....▼
다시 산길을 계속 걸어나갔다. 우린 구봉산 방향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
해발 1126m의 운장대이다. 남한의 대표적 고원지대인 진안고원에 위치한 운장산 정상부는
정상인 상봉, 동봉, 서봉의 3개의 봉우리가 거의 비슷한 높이로 이루어져 있다. 운장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대불리를 지나 운일암, 반일암 계곡을 거쳐 나가며 주자천을 이룬다고 한다.
특히 운일암, 반일암 계곡은 이름 그대로 깎아지른 암벽과 숲에 쌓여서 햇빛이 반나절 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한다. 열 두굴, 삼형제바위, 대불바위, 보살암, 비석바위, 용소등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석계로 경관이 수려하고 여름철 피서지로서 각광받는 곳이다. ▼
운장산은 해발 1125m의 높이로 호남지방 금남정맥 중 제일 높은 산으로 운장산의 서쪽 완주,
익산, 김제,정읍일대는 넓디 넓은 평야지대이고 평균 고도가 해발 290m인 진안고원에는
높은 산이 없으므로 조망은 아주 훌륭하다. ▼
해발 1133m의 상장봉(동봉)이다. 산행 전 검색한 자료에는 운장산 정상부의 봉우리들이 동봉,
서봉 등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막상 이곳의 정상석엔 동봉. 서봉 등의 이름은 없고 칠성대, 운장대,
상장봉 등으로만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럽기그지 없었다. ▼
아직도 몸은 더운 열기로 가득했었다. 시원한 냉수마찰이라도 하고 싶었다. ▼
운장산에서 구봉산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내 키만큼 자란 산죽들이 산길을 막고 있었다.
산죽들의 숲 사이를 뚫고 산길을 걷기가 여간 불편하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시사철 푸르
기만 한 산죽의 자태에 빠져 그것들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었다. ▼
각우목재에서 길은 갈라졌다. C코스를 선택한 분들은 내처사동으로 바로 내려갔고 A,B코스를
선택한 분들은 복두봉으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복두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위험천만한 빙벽구간이었다. 많은 분들이 무서워서 되돌아 왔다.
어쩔 것인가? 비록 로프는 매달려 있다고 하지만 두터운 얼음이 얼어있는 20 여 미터의 짧지
않은 구간이었다. 그러나, 구봉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 구간을 통과해야만 했었다. ▼
제1단계의 빙벽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바위 밑 고드름 앞에서 제법 여유를
부리고 있는 표정이다. 그러나 아직 빙벽구간은 끝나지 않았는데....▼
빙벽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산길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선두대장께서 되돌아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고 했더니 너무 위험한 구간이라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서 아직
통과하지 못한 분들은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해서 그냥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미 빙벽
구간을 통과한 장박사와 나는 앞으로 계속 질주해 나갔다. 그런데 왠 도로가 나타났다.
설마 이곳이 백두대간 마루금은 아닐테고....▼
배가 고파왔다. 시계를 봤다. 벌써 1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고 무엇보다 앞에 턱하니
버티고 있는 복두봉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조금 힘들더라도 복두봉 정상부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
배고픔을 참고 복두봉을 오르는데 갑자기 장 박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들려왔다. 이유를 물었다.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
지쳐있었기에 내려갈 수는 없고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 참후에 그가 나타났다. 참을만 하다는 것이었다. 계속 복두봉으로 향해 올랐다. 그러나
장 박사는 계속 뒤처져 오고 있었다. 큰 일이었다. 2시 40분까지 복두봉을 통과하지 못할 때는
구봉산으로 가는 길을 막고 B코스로 가야하기에 내 마음은 급했다. 더구나 우린 점심도 먹지
않은 상태이다.
극약 처방을 내렸다. 장 교수와 일단 적당한 장소에서 준비해 간 라면을 끓여먹고 나는 혼자
A코스 분들과 합류하여 구봉산으로 향하고 장 박사는 B코스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급히 라면을
끓여먹고 뒤처리를 부탁하고 나는 복두봉을 향하여 그야말로 질풍노도처럼 달렸다. 사진은 복두봉의
모습이다. ▼
복두봉 통과시간 3시~! 이미 20 여분이 넘어버렸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구봉산을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쏘냐. 나는간신히 사진 한 컷을 건지고 또 다시 뛰어나갔다. 사진은 복두봉이다. ▼
길가에 가지많은 소나무가 있었다. 저렇게 많은 가지를 지니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이 없다는데....▼
다리에 통증이 왔다. 왠만하면 아프지 않던 다리였는데 아이젠을 착용하고 달리기 경주하듯이
뛰었으니 성할리가 없었다. 머리 위에서 흐르는 땀이 눈을 가려 앞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구봉산은 1.0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해발 1002m의 구봉산 정상에 이르렀다. 기암괴석의 암봉으로 뾰족뽀족 솟아있는
특이한 모습이 남쪽 지리산 천황사 쪽에서 바라보면 아홉개의 봉우리가 뚜렷해 구봉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
운장산. 구봉산 일대의 정상석들은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실속이 있었다.
직사각형의 조그만 대리석을 심어두었기에 이유없이 크기만 한 거대한 정상석 보다는 훨씬
친환경적이었고 또 별도의 삼각점을 설치하지 않고 맨 윗면을 삼각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다른 지자체에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구봉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제법 큰 강의 모습이다. 날씨가 너무 흐린 관계로 저 곳이 어느 강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었다. ▼
구봉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급경사였다. 로프가 매달려 있긴 하여도 땅이 두텁게결빙되어
있어서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었다. ▼
폭포수가 산길로 흘러내리다가 결빙되었기에 더욱 더 위험했다. ▼
산에서 내려 와 올망졸망한 구봉의 봉우리들을 올려다 보았다. 시간관계상 봉우리 하나하나를
일일이 둘러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명실상부한 구봉의 정상을 둘러본 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
산행 날머리인 평화스런 양명마을의 모습이다. A코스를 선택한 분들이 모두 하산했던 시간은
늦은 6시를 넘고 있었다. 장 박사와도 반갑게 다시 만났다. 요새 학회 일이다 뭐다해서 운동을
도통 못했다고 한다.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늘 밤에도 귀가하지 못하고 청원휴게소에서 학회 사람들과 만나 리조트로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고 한다. 이 자리를 빌어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산행에 동참해준 장박사께 고마움을 전한다.
어둠이 내려 사위가 캄캄한 밤 시각에 모두 모여 뒤풀이를 하고 차에 올랐다. 귀가한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됐었다. 식구들 모두 조그만 잔칫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다.▼
산 첩첩 물 겹겹의 산악지대는 각종 동식물의 번식지이고 계곡에 길게 형성된 작은 평야에는
"삿갓배미"일 망정 논밭이 일구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산수조화의 극치를 이룬 이곳을 우리는 과연
뭐라 불러야 할 지.. ▼
<에필로그>
법정스님,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곧고 정갈한 글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나누어 주셨던 스님.
어서 빨리 쾌차하셔서 그 맑은 영혼을 다시 더 느끼고 싶다. 스님의 책은 읽어도 읽어도 늘 새로운 것만 같았다.
전에도 수 없이 읽었지만 책이 낡아 다시 사서 또 읽는다. 물론 그 분이 몇번이고 추천해 주신 어린왕자와 류시화
님의 여러 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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