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담양의 병풍산에 이어서 이번 주 역시 내 고향에 있는 방장산을 찾아나섰다. 언제고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편안하기만 했었다. 더구나 방장산은 고향에 있는 산이라고는 하나 이름마저 생소한 산이었기에 미지의
산을 걷게 된다는 기대감에 충만하여 내 마음은 더더욱 설레였는지 모른다. 사실 방장산이 요즘 들어 100대
명산의 하나라고 야단들이지만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솔직히 산 이름마저도 모를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었다.
73년 11월 호남고속도로 전주~순천 구간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방장산은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산이었다. 그러던 방장산이 등산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데에는 산세와 더불어 산기슭에 들어앉은
자연휴양림과 가까이 위치한 석정온천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행 일시 : 2010. 2. 28(일)
산행 코스 : 장성갈재~봉수대~방장산~고창고개~벽오봉~방장사~양고살재
산행 시간 : 약 4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산행 들머리인 장성군 북이면 갈재이다. ▼
산행 초입부터 약 1 시간 가량을 가파르게 올라야만 했었다. 당연히 힘이 들었고 온몸은 비지땀으로 흥건히 젖고
있었다. 배낭 속에 든 핸폰이 울렸다. 나는 그 동안 산을 오르는 순간만큼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속세와의 끈을
단절하고자 핸폰을 꺼두고 산행을 하였었다. 하지만, 오늘은 산행 후 고향 친구와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하여 핸폰을 켜둔 채로 산행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관광버스 안에서 통화가 여의치 않았기에 지금 연락이 온 것이다. 산행 가이드는 하산 집결시간을 오후 4시까지로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최소한 3시까지는 하산을 하여야 고창시내에 가서 그 유명한 풍천장어의 얼굴이라도 볼것
같았다. 해서, 친구와 일단 3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일행인 장 박사와 함께 산길을 부지런히 걷기로 하였다.
오르막길을 거의 뛰다싶이 오르고 나니 왼편에 멋진 바위 봉우리가 나타났다. 아마 쓰리봉인듯 싶었다. ▼
능선을 따라 부지런히 산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734봉이었다. ▼
전북 고창군과 정읍시, 전남 장성군의 경계를 이룬 방장산은 전형적인 육산의 산세를 지녔음에도 정상부에는
바위산의 위용을갖추고 있었다. ▼
산 봉우리에 올라 고향의 산하를 둘러보려 하였으나 운무 자욱한 날씨 덕에 당장은 미련을 접어두어야 했다.▼
갈림길에 길라잡이가 나타났다. 여느 길라잡이와는 달리 너무 초라했었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저 진행방향만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보았다. 잠시인 것 같은데 많이도 걸어왔다. 아니 뛰어 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거
같았다. ▼
해발744m의 방장산 정상에 올랐다. 힘찬 기운과 뛰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방장산은 우두머리를 일컫는
"방장"이란 이름에서 유래된 산이라고 한다. 명성에 비해 정상표시대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
전남과 전북을 가르며 우뚝 솟구친 방장산은 북동방향으로 주봉으로 삼은 봉수대와 734봉을 거쳐 장성갈재로
산줄기를 뻗어나가고 남서쪽으로는 벽오봉(640m)을 거쳐 양고실재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장벽을 형성. 그 사이
장성갈재와 노령으로 연결되는 입암산(626m)을 비롯한 내장산 국립공원 내의 산봉들과 멀리 담양호 주변의
추월산과 강천산이 바라 보이고 서쪽으로는 고창벌이 내려다 보이는 등 사방으로 멋진 조망을 선보인다. ▼
방장산은 또 호남고속도로변의 명산으로 자리를 구축. 주봉격인 봉수대는 현재 지형도상이나 눈으로 보기에도
742m봉에 비해 낮지만 암봉을 이루며 사방으로 절벽을 이루고 있어 조망이 뛰어나다. 이 봉수대가 743m봉에
비해 조금 높았으나 6.25때 폭격을 맞아 낮아졌다고 한다. 예로부터 산이 신령스럽고 산세가 깊어 도적이 많이
들끓었다는 방장산의 원래 이름은 방등산(方登山)이었다고 한다. ▼
갈림길이었다. 방장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곧바로 하산하는 B코스 분들이 선택한 코스이다. 우린 다른 분들
보다 한 시간 이상 내려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종주를 하지 않고 곧바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당연히 패러행글
라이딩장으로 향했다. ▼
패러행글라이딩장이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30분이었다, 산행날머리인 양고살재까지는 2km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하산예정시간을 약 30분가량 더 단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러행글라이딩장에서 내려다 본 고창시내의 전경이다. 희뿌연 날씨 탓에 온전히 조망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느 고장과는 달리 정겨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패러행글라이딩장에서 선수들이 비행에 앞서 뭣인가를 숙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
방장산의 능선은 비교적 가파름이 약했다. 하지만, 가파름이 심하지 않은 능선과는 달리 이리저리 뒤틀린
야생목들의 유희가 봉우리 하나 하나를 오를 때마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사진은 반등산이다.▼
방장동굴이 90m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안내판이다. 물론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게 아니고 동굴을 본 후에
다시 이곳으로 올라와야만 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했었지만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곳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
이 동굴은 "방등산가"(方等山歌)의 유래가 얽힌 동굴로서 예로부터 고창평야를 배경으로 수송되는 곡물을 약탈하던
도적떼들의 소굴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구한말에는 병인박해를 피하기 위해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노령
산맥을 넘어와 신앙을 지키며 은거하기도 하였으며 6.25전쟁 때는 빨치산의 근거지로 사용될 만큼 깊은 숲속
은거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
방등산가, 방등산은 나주의 속현인 장성의 경계에 있다. 신라 말엽, 도적이 크게 번져 이 산에 은거하며 양가집
자녀들을 잡아가는 등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때 "장 일현"의 한 여인도 잡혀 갔는데 이 방등산가를 지어 그 남편이
구하려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
경사가 약한 능선길을 달리다 싶이하여 문넘어재에 이르렀다. 다음 차례는 갈미봉이다. ▼
남녘의 포근한 날씨답게 오늘 방장산 곳곳에서는 마른 가지에 봄물이 오르며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가득하였다.
내 인생의 계절도 지금이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문득 새봄과 더불어 파란 희망의 기지개를 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갈미봉이었다. ▼
방장산의 방장사, 100대 명산을 끼고 있는 사찰이니 당연히 명성있고 우람한 사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찰은 초라했다. 도회지 근처의 산에 있는 왠만한 암자보다 더 초라했다. 도대체가 절로서의 고즈넉한 느낌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밀알정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싹트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싹트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를 아끼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 고창 밀알회 -
이 돌탑은 1993년 4월 5일 고창 밀알회 형제 자매들이 모양성 주변에 동백나무 식목행사를 마치고 방장산
등반중 이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한알 두알 정성들여 쌓기 시작하여 매년 식목행사 후 쌓아 올린 탑입니다.
고마웠다. 그 정성이 기특했다.
밀알의 돌탑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데 또 다시 핸폰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잖아도 당초 약속시간 보다 30분 정도
빠른 2시 30분경이면 날머리에 도착할 거라고 전화를 할려던 참이었다. 물론 친구 전화였다. 풍천 장어집을 예약
하고 날머리에 와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양살고재이다.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의 양고살재이다. 양고살재, 그 말의 유래가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
석정 온천이 불과 3km의 거리에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동안 속세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겸 온천도 하고
장어도 먹고 여유롭게 쉬다 가고 싶었다. 더구나 내일도 공휴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 몸은 내 자신만 생각해도
되는 그런 무책임한 홀 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드디어 친구를 만났다. 산행가이드께서
정해 준 하산 시간보다 무려 1시간 30분이 빠른 시간에 산에서 내려와 친구를 만나니 여유가 있어 좋았다.
장박사랑 셋이서 친구 승용차를 타고 예약해 둔 장소로 옮겨 풍천장어에 복분자 몇 잔을 마셨다. 제법 여류롭게
식사까지 끝내고 다시 산행 날머리로 되돌아 왔다. 이곳 역시 마침 뒤풀이를 끝내고 귀성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때문에 단 1분이라도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산악회 총무님과의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필로그>
오늘 방장산 산행을 계기로 이제 봄 기운은 완연히 온 대지위에 퍼질 것이다. 봄 기운 따라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가득할수록 겨울 산의 미련을 훌훌 떨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유난히 강추위에 시달리며 지겨워 했던 이번 계절의 겨울산행..고생만큼이나
황홀하고 즐거웠던 백설산행.. 이제 그 눈꽃들의 화려한 축제를 또다시 찾아오는 순백의 하얀 계절에야
다시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자연의 향연은 계속될 것이다. 꽃피는 봄 산행,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산행. 붉게 타오르는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가을산행, 그리고 또다시 황홀함에 미련 많은 겨울산행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까..
이제 친구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때마침 서해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태양이 발산하는 장엄한 빛의
영향으로 하늘에 떠 있는 서너 무리의 깃털 구름이 빨간빛으로 단장하여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릴 반갑게 맞이하고 뜨겁게 환대해 줬던 우정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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