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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늦은목이~백두산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연나리~쇠나들이~조침령

 

 

오늘 구룡령~조침령 구간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고나면, 제1기 구간은 조침령~한계령 구간과

미시령~진부령 구간 등 두개 구간만 남겨놓게 되며, 제2기 구간은 죽령~고치령~늦은목이 구간

인 단 한구간(경우에 따라서 두 구간)만을 남겨놓게 된다.

 

 또 제3기 구간은 중재~육십령, 육십령~동업령, 동업령~신풍령, 신풍령~부항령, 부항령~우두령,

우두령 ~추풍령 등 6개 구간을 남겨놓고 있어 이를 포함하면 백두대간의 남은 구간은 총 아홉개

구간인 셈이다.

 

향후 일정상으로 봤을 때, 폭설 등 계절적 요인을 고려치 않고 끊임없이 산행을 계속한다면 내년

3월 경이면 "백두대간 종주"라는 대단원의 막이 내려질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은

구간 중 암릉구간으로 가장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조침령~한계령 구간이 눈이 완전히 녹아 없어져

산행이 가능할 것이므로 통상적으로 설악산의 지형적 특성으로 보아 일단 한 번 내린 눈은 아무리

빨라도 다음해 5월이나 되어야 그 소멸을 기대할 것이므로 미리 종주일정을 예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

다.

 

어쨌든 그 동안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누더기처럼 이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 일사불란하게 북진하여 올라 온 것이 아니라 천방지축으로 이리 왔다 저리 갔다를 반

복하며 겨우 겨우 이어져 왔던 것이다.

백두대간은 올곧게 뻗어 있는데 정작 백두대간을 지나는 나는 지리산에서 백두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내려가고 있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갈팡질팡 산길을 이어왔던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걷고도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의 백두대간

산행이 속전속결을 원칙으로 하여, 애시당초에 크게 3개구간으로 대분류해서 동시에 진행한 측면도 있

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초지일관 북진형태의 산행을 고집했던 터이기에 전반적으로 봤을 때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백두대간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줄기일테니 말이다.

 

문제는 근본적인 산행형태는 분명 북진산행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통제구역이라도 나타나면 통제의 눈

초리를 피해 돌연 구간을 바꾼다거나 또는 같은 구간이라도 진행형태를 남진형태로 바꾸어야만 하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의 현실에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등줄기인 성스러운 백두대간을 제 나라

국민이 마음껏 걷지 못하는 현실이....어쩌다가 통제구역을 무시하고 우직하게 산길을 걸으면 여지없이

범법자가 되고마는 우리의 현실이....

 

또 그것이 무서워 이리 저리 피해 산길을 걷는 내 모습이 때로는 너무 참담하였고, 스스로 낯이 부끄러웠다.

마음이 편치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산행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다시한번 산림청 등 정부

기관을 비롯해서 이땅의 위정자들에게 정중히 채근하지 않을 없다. "어서 빨리 백두대간 탐방로를

만들어 막혔던 길을 열고, 백두대간이 갖는 온전한 의미를 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노력을 해달라." 고

말이다.

 

산행 일시 : 2009. 11. 28~29(토요무박)

산행 코스 :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연나리~쇠나들이~조침령

산행 시간 : 약 9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야심 가득한 백두대간의 산꾼들을 태우고 안양을 출발한 차량이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구룡령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경이었다. 새벽시간의 구룡령은 강한 바람과 함께 눈

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모두들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차 안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야 했었다.

 

식사를 끝내고 산길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모두들 용기가 나지 않은듯 했다.그렇다고 마냥

차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한 산행, 그것은 오직 나

만의 책임이고 나만의 아픔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산행준비를 하였다.

 

금년 겨울들어 처음으로 착용해보는 스펫치와 아이젠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눈보라

세차게 몰아치는 해발 1031m의 구룡령, 어둠 속에 홀로 서있는 표지석은 더욱 외로워

보였다.

 

 

초입부터 가파르게 설치한 목재테크의 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했다.

귀이며, 코이며 별다른 방한 조치없이 외부로 노출된 부위가 몹시 차갑게 느껴졌다. 조금

걷다보니 구룡령 옛길의 정상을 알리는 안내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

 

 

해발 1089m의구룡령 옛길 정상에 올랐다. 구룡령 옛길에는 민초들의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하지만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는 새벽시간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안타까웠다.

구룡령 옛길은 노새에 짐을 싣고 오르면서도 그저 숲길을 걷는 듯 숲을 온전히 느끼며 여유롭게

거닐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은 미완의 숙제로 남겨두고 오늘은 그 정상만을 올라

볼 뿐이다.▼

 

 

오르락 내리락 거칠게 거칠게 산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눈 내린 산길이 미끄러웠다. 특히

가파른 길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네발 아이젠을 착용한 관계로 두번씩이나 엉덩방아

를 찧었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2.2km나 걸어왔다. 갈전곡봉까지는 앞으로 2km를

남겨두고 있었다. ▼

 

 

드디어 오늘의 최고봉인 갈전곡봉(葛田谷峰, 1204m)에 이르렀다. 갈전곡봉은 '칡넝쿨 밭'이란

뜻이다. 하루 하루 모진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이곳을 힘들게 힘들게 넘나들었을 것 같은 옛

화전민과 심마니 약초꾼들의 숨결이 문득 그리워졌다. ▼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조침령까지는 아직 17.05km나 남겨두고 있다. ▼

 

 

갈전곡봉을 지나면서 마루금은 숨 가쁜 고갯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남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가칠봉,구룡덕봉을 지나 방태산을 빚고는 내린천에서 그 세력을 다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곡봉~방태산 줄기 북쪽 기슭에 숨겨져 있다는 4가리 이야기를 들어보자.

 

4가리는 아침가리,곁가리, 적가리, 연가리를 말한다. 흔히 조경동(朝耕洞)이라고 알려진 아침

가리는 재앙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살던 곳 중의 하나이다. 역시 비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계곡이다.

 

4가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계곡은 방태산에서 발원한 적가리골이다. 자세가 마치 넓적한

그릇을 닮은 적가리골 원시의 짙은 숲이 품고 있는 계곡은 폭포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

루고 있으며, 적가리골을 품은 방태산은 초여름이면 온갖 들꽃들이 피어 나 천상의 화원을 이룬

다. ▼

 

 

백두대간에 대한 안내판이다. 여느 백두대간 안내판과는 달리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백두대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북부지방 산림청에 고마움을 전한다. ▼

 

 

956봉에 이르렀다. 많이 낯 익은 글씨가 하얀 눈 속에서도 눈에 띈다. ▼

 

 

분명 아침은 밝아 왔는데, 태양은 맥을 잃고 멍청히 떠있었다. 눈길을 따라 거닐고 있는데

길가에서 연리지를 만났다. 오늘로써 대간 길에서 세 번째 연리지를 만난 셈이다. 하나이

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오랜시간 미움과 사랑이 교차하

면서 서로에게 동화되고 겉모습까지 닮아가게 된다.

 

그렇게 둘이지만 한 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사랑을 연상하고 그리움을 떠올

린다. 아직도 못다 한 사랑이 많은 때문인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에 가득하기 때문

인지 오늘 또 연리지를 만나면서 초록빛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었다. 하얀 눈속에 서 있는 연

리지의 모습에서 강렬한 사랑을 보는 것만 같았다. ▼


 

 

시절은 분명 초겨울일텐데 이곳은 한 겨울이었다. 차가운 날씨가 그랬고 매서운 북서풍이

그랬고 무엇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길이 그랬었다. 찬 공기를 가르며 이름 없는 능선들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벌써 설국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한 채 제자리 걸

음만 하고 있는 듯 했다. ▼

 

 

 

 

누가 이렇게 황홀한 구룡령~조침령 구간을 백두대간 마루금 중에서 가장 특색없는 구간이

라고 탓하였던가? 사실 그랬었다. 집을 나오면서까지도 나는 이 구간에 대해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이 구간은 별 특징이 없는 산길이기에 일반 산꾼들은 전혀 내왕이 없다고 한다. 다만, 백

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백두대간 마루금이 있었

기 때문이다.

 

그렇고 그런 산길이 그곳에 있었는데 오늘은 맑은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듯이 어두운 하늘에서

하얀 축복이 내렸다.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황홀함을 어떻게 주체할

수 있을까? ▼

 

 

거뭇거뭇한 나목들이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음울하게 서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고 능지의 설 사면은 온통 하얀 색 일색이었다. 이런 멋진 그림들

이 어우러져 오늘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일행들을 그저 단순히 유쾌한 것 이상으로 만

들어 주는 결정적 촉매제가 되었으리라.▼

 



잎을 떨군 나무들의 가지가지마다에서는 하얀 순결을 꽃 피우고 있었고, 그 하얀 유혹들을 손을

뻗어 꺾어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키게 하였다. 아~! 저렇게 아름다운 상고대가 피어나다니....

역시 대자연의 행위예술은 장엄하기만 했었다.

 

 

보였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곤 하는 눈 덮인 수많은 연봉들, 그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도 하얀 눈 세상은 계속되었다. 그런 눈천지에서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허기

는 달래야 했었다. ▼

 

 

하얀 눈 세상이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알리는 리본들이 선명하기만

했다. ▼


산행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많다. 그러나 산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산행

이란 한번 가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한번 가보고 만다면 어찌 그것을 산

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산을 많이 가 보고 산에 대해서 눈이 뜨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도 느껴지는 날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크리스 마스 카드가 성행하던 어린 시절, 엽서에는 예외 없이 눈 속에 파

묻혀 있는 한 그루의 트리가 등장한다. 그 엽서에 있는 트리가 혹여 이곳에서 촬영한 곳이

아닐지 싶다. ▼

 

 

황홀한 눈길에 빠져 정신을 잃고 걷다보니 쇠나드리 고개였다. 쇠나드리 고개는 조침령의

옛길이라고 전해 온다. 오늘 산길에서 만나는 길라잡이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나

방향만을 제시해주고 있을 뿐 남은 거리도 없고 예정시간도 기록돼 있지 않아 답답했었다.

 

 

조침령으로 내려서는 목재테크이다. 아직도 날씨는 흐리기만 하다. ▼

 

 

드디어 산행 날머리인 조침령에 내려섰다. 조침령도 구룡령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길이 본래의

옛길이 아니다. 본래의 옛길은 현재의 조침령보다 남서쪽에 위치한 쇠나드리고개였다고 한다.

별로 높지 않은 고개지만 소도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세찼으니 예전에는 새들도 머물러 쉰 후

고개를 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조침령은 20여 년 전 군부대가 놓은 군사 도로라고 한다. ▼

 

 

조침령(鳥寢嶺, 877m),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소금을 지어

나르던 고개라고 한다. 조침령이라는 이름은 여러 개의 다른 의미로 불리었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떨어질 조(阻)', '가라앉을 침(沈)'자를 써서 험준하다는 뜻으로 조침령(阻沈嶺)이라 하였고,

산경표에는 조침령(曺枕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새도 자고 넘는 고개'라는

뜻으로 조침령(鳥寢嶺)이라고 쓰고 있다. ▼

 

 

새로 설치한 조침령 정상석, 백두대간 마루금에 설치된 여러 정상석 중에서 아마 제일 큰

정상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

 

 

조침령, 이제부터는 점봉산 구간이었다. 유전자원의 보고라는 점봉산, 어서 가보고 싶다. 그러나,

눈이 완전히 없어질 때 까지는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조침령 구간 역시 그 알량한 입산통제구역이었다. 따라서 버스가 날머리까지 올 수가 없었다.

덕분에 우린 기나 긴 터널 속을 걸어나와야만 했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