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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늦은목이~백두산

진고개~동대산~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

 

 

 

 

 지난 금요일 직원들과 양평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늘 낮에는 어비산을 오른 다음,

저녁 9시가 다 시각에 귀가하였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샤워를 하고 곧바로

백두대간 무박산행에 나서야 했다.

 

 금요일 밤에는 새벽 3시가 넘을 때까지 직원들과 술을 마셨었다. 팔당땜 근처

에서 1차로 오리 고기를 안주로 한 잔하고 양평 시내로 가서 단란주점에서 또 한

잔 했었다. 마지막으로 콘도로 들어와서 또 한잔 마신 것이다.

 

17 : 6 이라는 성비가 말해주듯 여직원들이 유난히 많기에 더욱 많은 술을 마셔야

했다. 왜냐하면 여자분들은 대체적으로 집을 떠나면 홀가분하게 자유의 몸이라는

생각에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술도 많이 마시기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정작 피해를 본 사람은 당연히 나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대간 무박산행인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집을 나섰다.

 

 

 

산행 일시 : 2009. 10. 24~25(토요 무박)

산행 코스 : 진고개~동대산~신선목이~두로봉~만월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

산행 시간 : 약 9시간 45분

안내산악회 : 안양 산죽회

 

 

 

지난 번 산행 날머리였던 진고개이다. 우린 새벽 2시 30분경에 산길에 접어들었다. ▼

 

 

진고개에서 동대산으로 오르는 길은 단 한 번의 내리막도 없는 가파른 길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며 불어오는 만추의 밤바람은 명치 끝까지 시려올 듯 싶었지만

산길이 초입부터 가파른 길로 이어졌기에 내 육신은 어느 새 흘러내린 땀으로 흥

건히 젖어들고 있었다.

 

앞사람의 발꿈치만 처다 보며 한 시간쯤 올랐을까, 드디어 해발 1,433m의

동대산에 올랐다.

 

 

동대산, 여기서부터 온전하게 오대산(五臺山, 1563.4m)의 품이었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m)비롯해서 호령봉(虎嶺峰, 1560m), 상왕봉(象王峰,

1493m), 두로봉(頭爐峰, 1421m), 동대산1433m) 등 다섯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오대산은 또 일찍이 일연이 나라 안의 명산 중에서도 불법(佛法)이 가장 번창할

곳이라고 칭송한 산이다. 동대산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상황봉 비로

봉 호령봉으로 가지 친 산줄기가 연꽃처럼 둥글게 둘러져 있을테지만 오늘은 칠

흑같은 어둠만이 내리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느낄수도 없었다. ▼

 

 

오대산은 산 자체가 신앙이다. 오대산 곳곳에 부처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있다.

신라 진골출신인 자장율사(590경~658경)는 당나라에서 공부할때 문수보살로

부터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받았다.

 

부푼 꿈을 안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부처의 정골사리를 중대 적멸보궁에 모시고

이를 중심으로 북대.남대.서대.동대에 오류성중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지은 작은 띳집은 후에 월정사가 되었으며, 당나라 유학 당시 공

했던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대산이라고 한다. 지장율사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에 자리한 이 산을 보고 오대산이라고

이름을지었다고 한다. 

 

 

깊고 울창한 숲을 따라 걸었다. 고단했다. 외로웠다. 그나마 새벽하늘을 수놓고

있는 은하의 별무리와 수많은 헤드 렌턴들이 절묘한 빛의 조화를 이뤄내면서 어둠

속에 고요히 잠 들어있는 대지를 밝혀주고 있어서 우린 어느 정도 외로움으로부터 벗

어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해발 1200m의 차돌백이다. 지금 보니 영락없는 차돌바위이다. 

 

 

해발 1120m의 신선목이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나는 혹시 바보는 아닐까? 무엇을 얻고자 이리 고생하는 것일까? 졸린 눈이

영락없는 토끼눈이었다. ▼

 

 

산길은 너무 가파랐다. 힘이 들었다. 그러나, 두로봉은 아직도 1.2km를 더

올라야만 한다. ▼

 

 

산봉우리가 노인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대로 이름이 된 두로봉(頭老峰,

1422m)에 올랐다. 두로봉에 오르는 길도 험로였다. 온 몸을 부대껴가며 힘

들게 오른 두로봉이었다. ▼

 

 

 

 

두로봉을 지나니 사위가 환해오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이다. 찬란한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산줄기마다 능선을 따라 붉은 기

운이 서려 빛나고 있었다.

 

나무들도 빛났고 바위들도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빛으로 그득했다. ▼

 

 

 

두로봉을 지나왔다. 이제 만월봉은 1.3km 남겨두고 있다. ▼

 

 

해발 1281m의 만월봉이다. 만월봉에 떠오르는 보름날의 달빛이 유난히 밝고

좋다고 하여 월정사(月精寺)라는 유명한 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만월봉(滿月峰, 1280.9m)을 지나 산이 매가 엎드린 모양을 하고 있다는 응복산

(鷹伏山, 1369.8m)에 올랐다. ▼

 

 

 

나무의 가지들은 굵었고 껍질은 두꺼웠다. 우람한 나무들이 몸 구부리고 가지 뒤틀려

살아가고 있었다. 모진 풍상을 다 겪은 듯 싶었다. 응복산을 내려 왔다. 돌계단을

지나니 나무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구룡령까지 6.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

 

산길에는 나뭇잎 떨어져 수북했다. 숲은 이미 깊은 가을이었다. 발바닥으로 낙엽의

느낌이 전해졌다. 푹신하고 따스했다. 1120봉이다. 어느 분께서 마늘봉이라고 써

붙이셨다. ▼

 

 

이곳을 떠나려다가 다시 뒤돌아 섰다. 아미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 내세요." 아주 간결한 말이지만 고맙기 그지 없기 때

문이다. ▼

 

 

1261봉에 올랐다. 어느 곳이 마늘봉인지? 어느 분께서는 조금 전의 봉우리를

마늘봉이라 하셨고 백두대간을 4번째 종주하는 일행 중 한분은 이곳이 바로

마늘봉이라고 한다.

 

하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어차피 마늘봉은 대간꾼들이 만든 봉우리라고

하니 말이다. ▼

 

 

 

약수산으로 가는 길은 아득했다. "바로 저 봉우리겠지" 하고 올라서면 또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서 있는 봉우리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사진은 1280봉이다. ▼

 

 

 

백두대간을 소개하는 표지판이다. 백두대간은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만

하는 민족의 산줄기이다. ▼

 

 

나뭇잎 수북이 쌓인 길을 따라 걸었다. 거대한 신갈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해발

1000고지가 넘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소나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약수산(藥水山,

1306.2m)에 올랐다. 산이 품고 있는 약수(藥水)로 인해 약수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산이다.

 

약수산에서 발원하는 미천골에는 불바라기약수(미천약수)가 있고, 약수산과

갈전곡봉 사이 구룡령 계곡에는 갈천약수가 있다고 한다. 양양 주민들은 오색

약수보다 이 약수를 더 인정한다고 한다. ▼


이제 오늘의 산행 날머리인 구룡령(九龍嶺, 1013m)으로 향했다. 구룡령은 도로가

나기 전에 홍천에서 속초로 넘어가던 고개이다.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가 일

백 이십 여리 고갯길을 이룬 모습이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지난듯하다 하여 구룡령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드디어 구룡령으로 내려섰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 많은 백두대간의

리본이 매달린 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길 옆에는 폐쇄된 산림전시관이 있었다. 빈 건물이 황량하고 다소 흉물스러웠다.

조금 더 걸어나오니 백두대간 구룡령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연속 산행에 지친 내

몸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

 

 

해발 1031m의 구룡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

 

 

구룡령 고갯길로 내려섰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지금 구룡령이라고 알고 있는

56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는 원래의 구룡령이 아니라고 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원래의 구룡령 고개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이다. 그 후 1994년 이 도로를 포장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 구룡령의 위치를 표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위치가 잘못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구룡령 옛길은 최대한 경사를 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어 노새에 짐을 싣고

오르면서도 그저 숲길을 걷는 듯 숲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걸어볼수는 없을까? 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사진은 다음 산행 들머리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