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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늦은목이~백두산

대관령~선자령~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누군가가 내게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가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사계절 중 단연 가을을 좋아한다. 우선

선선한 기후가 좋고 가슴을 확 트이게 해주는 높고 파란 하늘이 좋다.

 

 따뜻한 햇살에 곱게 익힌 열매를 걷어들이는 농부의 마음도 역시 가을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꽃 피는 봄 산행이라고는 하지만 봄은 

몸이 나른해서 별로다.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산행, 역시 여름은 너무 덥다. 땀이 많이 흘러 쉽게 지쳐버

리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장쾌한 설원을 거닐은 백설산행인가? 물론 아니다.

겨울엔 무엇보다 짧은 해가 싫다.

 

그렇다면 자명하다. 그 어느 계절이 눈이 시리도록 붉게 타오르는 단풍과 낙엽이

우러진 가을산행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본격적인 가을 산행이 시작된

다. 내 인생의 계절도 두말 할 필요 없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아~! 가을이다. 정녕 가을이 왔단 말인가? 그러나 자연이 자연스럽게 가져다

주는 계절을 두고 딱히 가을만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대자연의 향연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실시되는 백두대간 무박산행이다. 이번 구간은 장쾌한 능선을

따라 푸른 초원지대를 거닐게 되는 멋진 구간이다. 그러기에 기대도 많았고 설레

임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가 많으면 그만큼 실망 또한 크게 되는 법이다. 그랬던 것일까?

을 나올 때 부터 오늘 산행지인 오대산 일대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마음이 시종 개운치가 않았다. 하지만, 한가닥 희망은 져버리지 않았다.

 

첫째는 일기예보가 오보이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비가 내리더라도 우리가

하산한 이후에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산행 일시 : 2009. 9. 26~27(토요무박)

산행 코스 : 대관령~선자령~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산행 시간 : 약 8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새벽 두시가 채 안된 시각에 대관령 휴게소에서 하차했다. 간단히 야식을 하고 

몸을 푼 다음 곧바로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대관령(832m)은

강원도의유서 깊은 고을인 강릉과 역사를 같이해 온 고개이다. 또한 한반도의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고개로서 강릉의 전설과 신화는 모두 여기에서 시작된

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강릉 촌로들은 대관령을 아직도 "대굴령"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고개가 너무 험해 대굴

대굴 굴러내리는 고개라는 뜻이다. 산행하는 동안만큼은 제발 비가 내려주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나의 염원을 끝내 외면한 채, 빗방울은 방울 한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칠흑같은 어둠과 짙은 안개 탓에 산행 컨디션은 엉망이 되고 말았으며 그러기에

변변한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져낼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말이 산길이지 그 길은 콘크리트 길이었고

자갈을 깔아놓은 길이었다. 대관령주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람이 많아

곳곳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오늘따라 바람 한 점 불어주지 않았고 고온 다습한 날씨로 인하여

초입부터 세속에서 묻어 온 육신의 땀을 여지없이 쏟아내게 하고 있었다. 우

리는 선자령 방향으로 계속 걸어야 한다. ▼

 

 

대관령 국사 성황당입구이다. 짙은 안개가 내리고 있어 도대체

사진이 찍히지가 않는다. ▼

 

 

산행 시작 1시간 여만에 선자령에 도달했다. 선자령(1157m)은 맑은 날이면

강릉시내와 동해의 파란 물결,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의 고지대 초지인 대관령일

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능경봉 고루포기산, 북으로는 황병산~오대산으로

이어지는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선자령이란 이름에는 선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계곡에 마음을

빼앗긴 선녀들이 자식들과 함께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선자령(仙子嶺)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관산, 보현산, 만월산

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선자령이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고개처럼 '령'(嶺)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지형이

완만하고 다른 길과 만나는 지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역시 짙은

안개로 인해 사진이 엉망이다. ▼

 

 

선자령 정상 표지석이다. ▼

 

 

선자령에 있는 길라잡이이다. 우리는 약 7km 거리인 매봉으로 향해야 한다. ▼

 

 

곤신봉에 올라섰다. 희미한 글씨의 초라한 곤신봉(1131m) 표지석이 외롭게 서 있었다.

풀잎 가녀린 구절초, 바람에 일렁이며 곤신봉을 위로하는 듯했다. 분명히 산의 정상일테

지만 산봉우리의 정상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특별한 오르막 길이 없었기도 했고, 광활한 초지가 펼쳐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

 

 

해발 1140m의 동해전망대에 이르렀다. 말이 전망대이지 오늘같이

이렇게 안개 짙은 밤에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 

 

 

희망의 전망대 ▼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촬영지이다. ▼

 

 

대관령 삼양목장측에서 제공한 상큼한 길라잡이이다. ▼

 

 

후덥지근한 날씨, 바람의 언덕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기대했었지만 그 언덕에도 바람은 없었다. ▼

 

 

 

매봉(鷹峰, 1173m)에 올라섰다. 어느 분이 설치하였는지 초라한

정상표지판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봉에서부터 노인봉까지는

비법정탐방로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백두대간이 그 길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린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라도 그 길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매봉을 지나 소황병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위가 갑자기 환해지기 시작했다.

동이 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우~! 해드렌턴만 벗어도 훨씬 편안한 산길이 될 것 같았다. 이제서야 겨우

산길다운 산길을 거니는 듯 싶었다. 짙게 우거진 숲속의 길을 걷는 동안, 시절도 없이

울어대는 산새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리고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단풍을 보았다.가을은 이제 북쪽으로 부터

찬란한 단풍을 몰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 올 것이다. ▼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단풍에 빠저들어 얼마간을 걷다보니 다시

초원지대가 나타났다. 그러나, 초지는 군데군데가 흉칙하게 패여

있었다. 먹이가 부족한 맷돼지들이 풀뿌리를 캐 먹기 위하여 마구

파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황병산 지킴터에 도착했다. 아직 출근시간이 안되어서인지 지킴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길 다행이지 만약에 그들이 있었다면 우리

는 꼼짝달싹 못하고 50만냥의 과태료를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킴이 대신 우리가 소황병산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

 

 

대간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펑퍼짐한 소황병산(1328미터)정상에

올랐다.말이 산이지 펑퍼짐한 들판이다. 여름에는 초원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엔 꽁꽁 언 얼음만 뒤덮여 있는 동토다. ▼

 

 

 

 

산봉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끝 없이 이어지는 초지를 따라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면서

걸었다. 소황병산을 지나면서 초지는 끝나고 다시 산길이 이어졌다. 해발 1297m의

노인봉 대피소에 이르렀다. 이제 노인봉은 불과 300m만 남겨두고 있었다. ▼

 

 

 

노인봉 대피소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려는 순간,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세운

육중한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였다.

 

"백두대간을 보전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

이곳은 오대산 국립공원의 출입금지 지역입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핵심

생태축으로서 사람의 간섭에 예민한 야생 동식물의 보고이자 마지막

서식처입니다. 이곳만은 자연에 양보합시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 과연 국토 사랑의 올바른 방법일까요?

이곳만은 자연에게 양보합시다."

 

조금 전 매봉에서 본 출입금지 안내판 보다는 한결 표현이 점잖아 보였지만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백두대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것처럼 써놓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씁쓸했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걷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고 숲을

지키고 생태계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일텐데도 말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사람들치고 출입금지지역을 만들어 놓은 뜻을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고판 보다는 자연을

지키고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백두대간의 탐방로를 갖춰 달라는

것이다.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면 그 길을 벗어나 산행을 할 등산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민족의 신앙이며 정신이며 삶의 바탕인 대간

길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

 

 

 

노인봉(老人峰, 1338m)에 올랐다. 노인봉은 대간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노인봉은 오대산 국립공원의 권역에 속해 있다.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를 이

루고 있는 산으로 유명한 소금강계곡을 산자락에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 화강암 봉우리가 솟아 있어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백발노인

처럼 보여 노인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노인봉(1338m)근처에 이르면 이십오리가 넘는 구절양장에 폭포와 소, 암반이

절경을 이루는 청학동 소금강계곡이 동북쪽으로 길게 이어진게 보인다.

 

소금강계곡은 짙은 숲속을 흐르는 맑은 계류와 불쏙불쏙 솟은 기암절벽이 아름

답고 오대산 줄기인 황병산을 주봉으로 우측은 노인봉, 좌측은 매봉이 자리한 소

금강은 학이 날개를 편듯한 형국이라 해서 청학산이라고도 불린다.

 

소금강은 율곡 이이(李珥,1536~1584)와 인연이 깊다. 선조2년(1569년) 율곡은

외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관직을 그만두고 강릉에 와서 1년간 머물때 오대산

일원을 둘러보고 "유청학산기"를 남겼다.

 

소금강이란 이름도 당시에 율곡이 지은 것인데 소금강의 금강사 앞 영춘대엔 율곡

이 직접 썼다는 小金剛이란 글씨가 새겨져있다. 그러나, 소금강 계곡은 오늘은

들리지 못했다.

 

 

오늘 대간 길은 마치 구절초 군락지를 방불게 했다. 마루금을 걷는 시간 내내 구절초를

만날 수 있었다. ▼

 

 

오늘 산행 날머리인 진고개(해발 960m)이다. 대관령에서 산길에 접어들려는

순간 내렸던 빗방울은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뒀던 탓인지 산길을 걷는 시간

내내 더이상 내리지 않았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여기는 진고개 정상입니다.'라고 쓴 안내판이 보였다. 비만 오면 땅이 질어져

진고개라 불렀다는 고개에는 도로가 놓여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진고개가 아니

었다. ▼

 

 

 

오늘 산행은 당초 계획보다 빠른 새벽 2시에 시작하였으므로 하산 역시

아침 10시에 이뤄졌다. 따라서 여유시간이 너무 많아 귀경길에 계방산

송어횟집에 들러 송어잔치를 벌렸다. ▼

 

 

송어횟집 건너편에 자리잡은 이승복 생가길이다. 작년 겨울에 계방산에

올라 하산시에 들렀던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