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글 머리에....
중국인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이름 안에는 무려 56개의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소수민족이 있으며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 그간 수많은 나라들이 부침을
거듭해 왔다. “불가사의”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등은 이러한 유서 깊은 역사의 빛나는 유적들이다.
또한 광대한 국토만큼이나 다양한 기후와 자연의 모습들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 나라의 특징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장가계 여행도 기실 따지고 보면 광활한 국토에 다양한
기후가 빚어낸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들을 느껴보기 위함에서일 것이다.
지난 1996년 백두산 등정이후 꼭 10년 만에 떠나게 되는 중국여행,
이번 여행은 그 어느 외국여행 때보다도 특징이 많고 또 그런 만큼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다녀 온 해외여행은 엄격히 말하면 관광여행이라기 보다는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의 성격이 더 강했었다. 아쉽게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아내와 함께한
해외여행은 단 한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모처럼만에 아내와 함께 하는 순수한 개인적 차원의 여행이기
때문에 더욱 더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Ⅱ. 상하이
4월 12일 새벽 5시, 4월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시간에는 아직도 한기가 느껴지는
시기이다. 아내와 함께 약간의 설레임을 갖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6시 경에 공항에 도착하여 함께 떠나게 될 일행과 반갑게 조우했다.
어차피 남자 중심의 모임이었기에 남자회원들끼리는 서로 잘 아는 터이지만
여자분들은 서로가 첫 만남이기 때문에 간단한 상견례를 갖추고 곧바로 탑승 수속을 밟아
상하이 행 중국 동방항공 MU5052편에 몸을 맡겼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약 1시간 30분가량을 날라 상해에 도착했다.
미주여행이나 유럽여행 등에 비하면 얼마나 이코노믹클래스증후군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상해공항을 빠져나오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명 계절적으로만 보면 지금 내리는 비는 봄비가 틀림없을 테지만 오들오들 온
몸이 떨리는 걸 보면, 늦겨울의 썰렁함을 동반한 겨울비라고 밖에 부를 수 없었다.
아내는 미리 양산을 준비해뒀으나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우산을 사들었다. 차마 우산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조잡한 물건,
그러나 산성비 일지도 모르는 빗줄기를 무방비 상태로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국에서의 첫 관광지로 임시정부청사로 향했다.
10년 전에 이미 돌아 본 곳이지만 아내를 위시해서 처음 오는 일행이 많았던
터라 묵묵히 상해의 일정을 소화해낼 수밖에 없었다.
3층 벽돌집의 상해 임시정부청사, 1926년부터 윤 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까지 청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건물이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돼버렸다고 한다. 이어서 홍구 공원을 찾았다.
1932년 4월 29일,
윤 봉길 의사의 의거현장으로 최근에 윤의사의 항거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했다는
기념탑 앞에서 당시 윤의사의 용맹스런 항거정신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Ⅲ. 드디어 장가계로....
어차피 오늘 숙박은 장가계에서 예정돼 있었기에 다시 상해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간단한 탑승수속을 마치고 중국항공편으로 장가계로 향했다.
비행시간 약 3시간, 요란스럽게 불어대는 계절풍 탓이었을까? 기체가 몹시 흔들리는
공포를 느꼈었기에 비행시간은 더욱 지루했었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까지의
비행시간이 고작 40여분인 점을 고려해 볼 때, 또 한번 중국의 광대한
국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숙소에 도착했다. 워낙 피로가 누적되었던 터라
어서 잠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주변형편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소위 4성급 호텔이라는 곳이 샤워기도 고장 나 있었고 체감온도가 족히 영하 10도는
되었음직 하지만 난방장치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튿날 들은 얘기지만 어느 일행은 화장실이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고 있어서
밖에 있는 공중변소를 이용했다고 한다.)
“집 나가면 고생” 이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세삼 가슴에 와 닿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느껴졌다. 나 자신이야 이까짓 불편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지만 모처럼 외국 나들이를 나온 아내에겐 한 없이 한 없이
미안한 마음뿐이다.
Ⅳ. 천하제일교, 십리화랑...
4월 13일(목). 오들오들 추위에 시달리며 뒤척거리다 날이 밝았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난관을 극복해내야 즐거운 여행,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호텔식으로 조식을 끝내고
원가계로 향했다. 아직도 음산하게 느껴지는 빗줄기는 속절없이 뿌려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우리를 실은 버스는 원가계에 도착하고 있었다.
흡사 무릉도원을 거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만끽하며 3
35미터 높이의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우와~~” 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산이 뚫렸다. 역시 원가계의 최대 볼거리는 “천하제일교”였다.
약 200미터 높이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그 뒤에 두개의 봉우리 정상부분이
다리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1982년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천하제일교는 자연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걸작품임에 틀림없었다.
1400 여 년의 오랜 세월동안 수차례의 지각변동과 기후의 영향으로 절벽 위에
이어진 절벽위의 다리로 그 높이만도 30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십리화랑은 또 어떤가? 오싹오싹 온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십리화랑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총 5킬로미터 길이의 십리화랑, 협곡의 양쪽으로는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있고
이름 모를 야생화의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으며 조금 먼 곳을 응시하노라면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이 각양각색의 형상으로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아! 장가계....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장가계....
인구 153만명, 20개의 소수민족 중 옛 산적들의후예인
토가족이 70%정도라고 한다.
억만년 전의
침수와 자연 붕괴 등으로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맑은 계곡이 있는 천혜의 대규모 산림 공원.
1992년 세계 자연유산에 포함된 장가계는 과연 지구의 기념물다웠다.
“장가계를 보지 않고는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말할 수 있으랴..“
그랬었다.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 태고의 신비 그대로를 보전하고 있는 장가계,
그의 웅대하면서 아름답고도 기이한 산세 앞에서 우린 한 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천하제일교의 모습이다.▼
'해외여행 사진첩 >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태산.노산(상편) (0) | 2013.03.05 |
---|---|
중국 태산.노산(하편) (0) | 2013.03.05 |
중국 상해(보산구) (0) | 2009.01.29 |
그 무덥던 북경의 여름 (0) | 2009.01.29 |
중국 장가계 트레킹(2) (0) | 2009.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