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자연현상으로 보면 메마른 가지에 안개같은 연둣빛 물감이 풀리는 계절이고 우리네
인간사로 보면 바야흐로 애정이 꽃 피는 시절이다. 이곳 저곳에서 쉴 새없이 날아드는 청첩
장을 보면서 "봄엔 역시 황사만 오는 게 아니구나" 라며 농같은 농을 던지게 된다.
그래도 봄날의 싱그러운 풀잎처럼 어여쁜 청춘들이 저마다 짝짓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봄날
산행 못지않게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오늘도 지인의 혼례식이 예정돼 있었고 그 보
다 훨씬 먼저부터 정맥 산행이 예정돼 있었다.
집사람과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을 하였다. 집사람은 예식장으로, 나는 빼놓을 수 없는 아니
빠져서는 안될 5월의 숲을 찾아 정맥산행에 나섰다. 오늘 산행은 우리 정맥 산꾼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힘들고 어려운 산행이었다.
초여름의 무더위를 뚫고 육순의 나이에 9시간 산행,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나이에?"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올 법도 했다. 우직스러운 표현이긴 해도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 시쳇말로 “이 나이가 어때서?”이다.
이 나이, 잠시 그 요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살이라도 적
게 보이려고 동안(童顔)을 꿈꾸며 자신이 동안이길 바란다. 그런데 동안의 비결은 철이 안드
는 것에 있다고 한다. 철이 들지 않는 노인, 그렇게 해서라도 동안만 될수 있다면 대만족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 나이는 우리 나이로 육십하고도 셋이
다. 20대 중반 새내기 공무원시절엔 주위에서 혹 얕잡아 볼까싶어서 "서른"이라 둘러대곤했다.
하지만 진짜 서른이 됐을 땐 만 나이에, 음력 생일이 12월임을 이용한 애믄살 타령을 했었고
급기야 미국식 나이까지 동원해 스물아홉을 오래오래 고수하고 싶어했다. 그야말로 유.불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들이대는 내 방식의 이중잣대였다. 그러다가 50줄에 접어든 뒤엔 아예
나이를 잊고 살다시피했다. 잊은 척한게 아니라 실제로 몇 살인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다분히 편의적인 기억력은 그렇게 정신건강에 좋은 쪽으로만 작
동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와 적잖은 나이를 굳이 밝히고 나선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육순 이후
의 삶도 그럭저럭 살만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육순의 나이에 9시간 산행은 당연히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숨겨진 팩트는 육순의 나이라서
무리인게 아니라 나이를 초월하여 어느 누구라도 더운 날씨에 9시간 산행 자체가 무리라는 것
이다. 지금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100세 시대에 60줄의 나이는 한참 젊은 나이이다.
"그 나이에?"
"이 나이가 어때서."
오늘도 이런 저런 잡생각에 5월은 가고 또 봄날도 간다.
산행 일시 : 2015. 5. 17(일)
산행 코스 : 곡두고개~ 태화산~광덕산 갈림길~ 각흘고개~ 봉수산~ 천방산~ 극정봉~ 명우산~ 절대봉~ 차동고개
산행 시간 : 약 9시간
산행들머리인 곡두터널 부근이다.▼
지난달 우중산행으로 몸도 마음도 흠뻑 젖은 채 하산했던 잊혀지지 않는 장소이다.▼
해발 557미터의 까막봉 정상에 이르렀다.▼
산행 시작 1시간 여만에 해발 670미터의 태화산 천자봉에 이르렀다. 산 정상을
올라가는 것은 힘들고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은 위태롭다. 그러니 산이란 오르
기도 내려오기도 힘들 뿐이다. 아담하게 자리잡은 조그만 정상석이 앙증맞다.▼
우린 각흘고개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드디어 각흘고개에 이르렀다.▼
다시 우린 봉수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야 한다.▼
해발 536미터인 봉수산 정상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면 봉수산은 금북정맥에서
비껴 있었지만 우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평화가 있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겐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준다. 숲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고 간 폭풍우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천방산 정상이다. 벌써 산행시작한지 여섯시간이 지났다. 서서이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온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부엉이 많이 살았었는지 부엉산이라고 한다.▼
극정봉에 이르러서는 풀섶위에 덥썩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 힘들어서일 것이다.
너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해발 368미터의 명우산 정상이었다.▼
명우산을 조금 지나니 연리지가 있었다. 오랜만에 산길에서 만나는 연리지였다.
그러나 육신이 너무 피곤하여 연리지를 노래할 여유마저 없이 그냥 지나쳤다.▼
벌써 몇 번째 봉우리인가? 아마 일곱번째 산인 것 같다. 이렇듯 금북정맥은 모두 다 씹고
소화하여 입에 넣어주어야 받아 먹는 안이하고 게으른 산행을 절대 용남하지 않았다. 오
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듯싶었다. ▼
산행 날머리인 차동고개에 이르렀다. 바로 엇그제 경기 안성 칠장산을 출발한 금북정맥도
벌써 공주까지 왔다. 도면상으로 보면 대략 중간정도에 이른 것 같았다. 암튼 이렇게 해서
9시간 여에 걸친 오늘 산행도 그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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