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설 연휴 때 가려고 작정하였다가 일시 미뤄 둔 김유정 문학촌과
금병산을 찾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경춘선 전철시대를 맞아 벌써 두번 째
나들이인 셈이다.
따라서 오늘은 그 동안의 힘든 장시간 산행에서 탈피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김유정 문학촌을 답사해 보는 소위 문학기행이면서, 동시에 산책로 수준의
금병산을 오르는 부담없는 산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자료를 통하여 김 유정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김유정(金裕貞 1908 - 1937) : 강원도 춘천 출생. 휘문고보 졸업. 1927년
연희전문에 입학했으나 맏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으로 집안이 기울자,
학교를 중퇴하고 한동안 객지를 방황하다가 1931년경에는 강원도 춘성에서
야학을 열고 문맹 퇴치 운동을 벌였다.
1935년 단편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순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표작에는 '소낙비'(1935), '노다지'(1935), '금 따는 콩밭'(1935)
등이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토속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농촌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농촌의 문제성을 노출시키면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웃음으로 치환
시켰다. 그러나 그는 세계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 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인간의 모습을 희화화함으로써 투철한 현실 인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소설 "봄. 봄"에서 그는 의뭉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장인과
어리숙한 데릴사위(머슴)사이의 해학적 갈등과 대립을 적절하게 그려냈다.
산 행 일 : 2011. 2. 12(토)
산행 코스 : 김유정역~김유정 문학촌~실레마을~금병산~유정마을
산행 시간 : 3시간(해찰할 거 다하면서 널널하게..)
누 구 랑 :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김 유정역에 내렸다.▼
김유정역을 빠져나오니 역사건물이 한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의 한옥은 멋스럽고 정감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금병산에 오르기 전에 김유정 문학촌을 먼저 들르기로 하였다.
그래야만이 금병산과 그 주변의 문학적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을 것 같았다.▼
실레마을, 2008년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조성된 시설이다.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시루떡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김유정의 30 여편의 작품 중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10 여편이라고 하며 등장인물도 실존인물로 꾸몄다고 한다.▼
작가 탄생 100주년 주제관이다.▼
그리운 작가 김유정..▼
추억의 만화방...
김유정 문학촌이다. 행정구역은 춘천시 신동면 증3리 실레마을이며
1930년대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김유정이 태어난 곳을 기념
하기 위해 조성된 문학마을이다. ▼
김유정 기념전시관이다. ▼
김유정의 상(像)이다. ▼
디딜 방앗간이 있는 것으로만 봐도 김유정은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
"봄. 봄"의 장인과 주인공이 드잡이 하던 곳을 해학적으로 꾸민 작품이다.▼
김 유정의 주요 작품인 "봄. 봄"과 "산골나그네"를 스케치한 것이다. ▼
5월의 산골작이..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딧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찍
굵찍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친 안윽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친 모양이
마치 음푹한 떡시루같다 하야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씨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심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
영원한 산골나그네 김유정..
미친 사랑의 노래..
저에게 지금 단 하나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싶사외다.그리고 그 품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한껏 울어보고
싶사외다. 미완성 장편소설 - 생의 반려 중에서....
김유정이 일곱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읜 슬픔은 그의 자전적 소설 "생의 반려"속에
잘 나타난다. 매일매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던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어머니와 닮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김 유정의 첫사랑 박 록주이다.
그때부터 김유정은 박록주에게 2녀여 동안 광적인 구애를 했으나 그의 애절한 마음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대의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록주가 네살
연하의 김유정의 마음을 알아줄리 없었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거리에서 한 번 홀깃 스쳐본, 그나마 잘났으면 어머니와,
쭈구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렸다. 그것두 서루 눈이 맞어서
달랬다면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알어주지 않으려
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동안 썼다.
-소설 "두꺼비"중에서...
김 유정, 그 쓸쓸하고 짧았던 생애..▼
김유정의 대표적 작품 "봄. 봄"의 작품 앞에 섰다.▼
기념전시관에는 김유정이 죽기 11일 전에 그의 평생지기였던 작가 안 희남(본명:필승)
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어쩌면 유서와 같은 마지막 글에서 김유정은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
을 찾게 하여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김유정은 과연 그의 친구로부터 답신을 받았을까? 참으로 슬픈 이야기이다. 참으로
가슴 절절한 이야기이다. 기념전시관에서 편지의 사연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긴
했었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 다시 편집하여 여기 올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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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
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100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
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
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 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
을 찾게 하여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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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레이야기길에서 풀어야 할 물음표(?) ▼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금병산을 오를 차례이다. 정상까지는 90분이
소요된다는 상큼한 길라잡이가 나타났다. ▼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김유정 소설에는 19살 들병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인제나 홍천에서 이 산길을 통해 마을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야기가 여러 개 있다. 들병이(들병장수)란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
면서 파는 사람을 말한다. ▼
한적한 잣나무길에 접어들었다. 오엽송 잣나무 길위에 간밤에 눈이 살짝 내렸다.
잠시나마 김유정의 문학적 혼에 빠졌던 것일까? 마음이 편안했다. 머리도 맑았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까지도 경쾌했다.▼
정상은 이제 65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금병산 오르는 길은 오솔길과도 같았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산객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호젓한 산길, 오늘만큼은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시간도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
이곳 금병산 오르는 길목에도 멋진 소나무들이 있었다.
마치 금병산을 찾는 우리들을 환영이라도 해주듯 도열하고 있었다.▼
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
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스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고 앞에서 또 푸드득,푸드득, 하고 들리는 닭의
횃소리다. 필연코 요년이 나의 약을 올리느라고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내려올 길목에다 쌈을 시켜놓고 저는 그 옆에 앉아서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 소설 "동백꽃" 중에서....
정상에 있는 길라잡이이다. 우리는 김유정 역으로 하산해야 한다.▼
해발 652m의 금병산 정상이다. 금병산은 관악산 정도의 높이를 지녔지만
관악산 보다 훨씬 수월한 산이다. 산이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푸근하다는
느낌을 준다.▼
금병산에서 내려다 본 춘천 시가지의 모습이다. 경춘선 전철시대를 맞아
춘천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먼 도시가 아닌
수도권의 한도시가 된듯하다.
투명한 날씨라면 이곳 금병산 정상에서 영춘지맥의 대룡산, 오봉산, 부용산,
사명산, 용화산 화악산 등 주변의 명산들을 한 눈에 볼수 있다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이들 산군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날씨가 되지 못했다. ▼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이다. ▼
하산 길이다. 우린 김유정역 방향으로 가야한다.▼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이다.▼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이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 사람들이
얼마나 가혹한 삶을 살았는가를 수아리골 저 다락논이 증언하고 있다. ▼
금병의숙 느티나무길이다. ▼
김유정이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 등 농촌계몽운동을 벌일 때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근식이가 자기 집 솥을 훔치던 한숨길이다.▼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이다.▼
점순이, 봉필영감, 데릴사위 "나" 등 모두 실제의 인물들을
모델로 하여 쓴 소설 "봄. 봄"의 그 현장이다. ▼
"봄, 봄" 배경장소이다. ▼
맹꽁이 우는 덕만이길이다. ▼
저는 강원도 춘천군 신남면 증리 아랫말에 사는 김덕만입니다.
저는 설흔넷인데두 총각입니다. 덕만이가 들병이한테 자기 소개
하는 장면이다. ▼
하산 후, 미리 이곳에 오기전에 찜해뒀던 김유정 문학촌
바로 옆에 있는 유정마을이다. 유정마을, 왠지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그곳은 바로 나의 내가 태어 난 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닭갈비 요리가 일품이었다. 동치미 국물과 백김치가 맛있었다.
사람들도 많았다. 줄을 서서 겨우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음식점에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명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 맛이 좋던...주인이나 종사원들이 친절하던...분명 이유가 있다.
주인 아주머니께 이곳을 내 블로그에 담아 전국에 홍보해 주겠다고 했더니
"NO, thanks."를 연발한다. 오는 손님도 다 못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았다. 분명 특징이 있는 음식점이었다. 김유정 문학촌의 격에
맞는 식당인 것 같았다. 전국의 이름 난 모든 명소의 음식점들이 본받을
많한 음식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