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
산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그렇다. 오늘도 나는 그윽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을 만나기 위해, 내 자신이 문득 산이 되기
위해 어김없이 법정스님의 깨우침을 쫓아 청량산을 찾았다. 청량산 듣기만 하여도 부드러운
어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제아무리 욕심이 많은 자라도 청렴해진다는 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청량산은 바로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온 몸으로 웅변해주고 있는 산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산세가 너무 좋아 남에게 보여주기조차 아깝다는 청량산, 오늘은 바로 그 청량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캐내는 날이다. 내게 있어서 청량산은 오늘이 두번째 산행이다. 첫 산행은 지금으로부터
5 년 전에 이뤄졌다. 그러나 그때는 유감스럽게도 청량의 주봉인 장인봉도 통제구역이라서 오를 수
없었고 장인봉으로 이어지는 청량산의 명물로 새로 등장한 하늘다리도 없었다.
산행 일시 : 2010. 4. 5(월)
산행 코스 : 청량산문~ 입석~경일봉~자소봉~탁필봉~하늘다리~장인봉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우리를 실은 육중한 차는 청량문을 통과하여 주차장에 이른다.
입석(立石)의 모습이다. ▼
입석 안내판에 청량산의 노래가 적혀있다. ▼
등산로 입구이다. 청량문 경내에 있는 다른 시설들도 들러보고 싶었지만 오늘 목적은 산행이라서
그냥 산길로 접어들다.
비지땀을 흘려가며 한 참을 오르니 갈림길이었다. 오른쪽 길은 종주 코스이고 왼편 청량사
방향은 최단 코스이다. ▼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더욱 총명해졌다고 하는 총명수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물을 마실 수가
없다. ▼
총명수에 관한 안내문이다.
어풍대에서 내려다 보니 옹기종기 청량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청량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 같은 선무당이 보기에도 명당자리임이 틀림 없어 보였다. 절 뒤로는 탁필봉, 자소봉 등 기암괴석
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있고 앞으로는 확 트인 전망을 지녔으니 더 이상 좋은 명당자리가 이 나라
어디에 또 있으랴,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청량사를 들러볼 수 없다고 하였다. 해서, 나는 먼발치에서나마 몇 번이고
청량스런 절을 보고 또 보았다. 물론 청량사 입구에 자리한 "안심당" 이라는 사찰 내의 전통다원
도 바라보았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살가운 이름을 지닌 안심당은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넉넉한 공간이다.
은은한 전통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모두에게 개방된 산사의 포근한 쉼터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때 바람은 당연히 대중일테고 소리는 스님일게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
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진다고 한다. 바로 5년전에는 가을 바람
으로 풍경을 땡그렁 흔들어 소리를 놓고 갔지만 오늘은 참 소리를 만나 청량한 깨달음으로 얻고
가리라.
마음이 차분해졌다. 5 년 전의 기억을 반추해 보았다. 허름한 건물외벽에 붙어있는 이색적이고도
문학틱한 서각 앞에서 발길이 멈춰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소리를 만났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될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창문에 그림자/
고요히 어른거릴까./
글자 하나하나 뜯어보면 분명 그 의미가 크게 느껴질 듯 싶지만 우선은 청량한 바람이 뽀얀 안개가
피어오른 듯한 청량의 산 계곡에 부딪혀 아름다운 소리를 연출하는 정경 정도로만 느껴져도 충분할 듯
싶었다. 내게 있어서 청량의 가을 바람소리는 언제까지 기억될 수 있을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절의 바람만 다를 뿐 분명히 바람소리는 생생하기만 하였다.
또 다시 갈림길이었다. 왼편 길은 지름길이었고 오른편으로는 우리가 진행해야 할 경일봉으로
가는 길이었다. ▼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연속 이어지는가파른 길을 따라 올랐다.
산꾼은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한다.그러나 우리가 보다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더 내려가야만 한다. 일단 경일봉까지는
올라야 했다. 경일봉 정상에는 청량산 도립공원답지 않게 표지석 하나 없었다. ▼
경일봉에서 한 참을 내려오니 갈림길이었다. ▼
자소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목에는 아직까지도 대롱대롱 나무가지에 매달려 용용히 버티고 있는
몇 닢의 나뭇잎이 있었다. 이제 저 나뭇잎들은 새로운 잎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위하여 얼마 후
면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땅위에서 뒹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이미 뒹굴고 있어야 할 낙엽
이었다. 해발 840m의 자소봉이다. ▼
자소봉 정상의 조망은 아름다웠다. 모진 풍상 겪어가며 외롭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에 등 기대어
서 있고 싶었다. ▼
오늘은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었지만 길 건너편에는 청량산성이 있었다. 하얗게 뻗어있는
길을 따라 청량산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성 쪽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은 더욱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
자소봉을 내려와 탁필봉으로 향했다. 해발 820m의 탁필봉 정상석은 의외로 낮은 곳에 있었다. ▼
탁필봉을 지나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우회하는 편안한 길도 있지만
그 길로 가면 좋은 풍광을 놓치고 만다. ▼
탁필봉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이다. ▼
연적고개였다. 주봉인 장인봉까지는 1.5km라고 표기돼 있지만 시간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표기되어 있다.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1.5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된 것 같다. 이렇게 무성의한 길라잡이는 차라리 설치하지 안하니만
못했다.
뒷실고개이다. 기억을 돌이켜 보니 첫번째 산행에서는 청량사에서 바로 이곳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
길섶의 나무들을 튼튼한 실로 묶어 한편의 시를 소개하고 있었다. 시귀는 좋았을지라도 썩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문득 나무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겨울을 맞아 자기 자신을 버리듯 과감
히 잎을 떨군 나무가지들은 모진 겨울을 보내며 새 생명이 움트는 새 봄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또한 한여름이면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는 나무의 지혜 ...새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가 때가
오면 훨훨 벗어버리고 빈몸으로 겨울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우리도 나무처럼 살수는
없을까?
우리도 저 나무처럼 이것 저것 분별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드디어 청량산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하늘 다리에 이르렀다. 멋지고 아름다웠다. 설명처럼
안전할듯 싶었다.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걸어나갔다. 갈림길이었다. 장인봉은 이제 3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
"환가(還歌)" 산을 유람하여 무엇을 얻었나/ 농부에게 가을 수확이 있는 듯하네/ 전에 있던
서실로 돌아와/조용히 향연을 마주했네/ 그래도 산사람이 되어서/ 요행히 속세의 우환을/ 당하지
말았으면/
해발 870m의 청량산 장인봉, 청량산의 주봉답게 주변 조망이 일품이었다. 조금전 연적고개에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는 길라잡이의 허구성을 증명이라도 해볼 심산으로 시간 체킹을 하였었다.
약 15분 정도 소요되었다. 내 발걸음이 아무리 준족편에 속한다고 단정하더라도 1시간 30분과
단 15분은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다.
정상에 올라...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
세계로 가고싶네/
장인봉 정상 바로 밑에는 훌륭한 전망대가 있었다.
낙동강,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 황지와 영주를 지나 청량산이 위치한 이곳 봉화로 접어든다고 한다. 청량산에서 내려다 보는
낙동의 물줄기가 한 없이 푸르고도 정겨웠다. 그것은 아득한 그리움이었다.
장인봉을 떠나 급경사 길을 내려오는데 왼편 바위에 붙어 자생하고 있는 머루나무를 보았다.
그 줄기가 어찌나 강하게 생겼는지 굵직한 로프같았다. ▼
장인봉을 지나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였다. 그 길은 상당히 지루했다. 급경사를 내려와서 올려다
본 청량산 장인봉의 모습이다.
드디어 급경사 길은 끝나고....
날머리로 내려섰다.
날머리엔 시원한 청량폭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
예상보다 훨씬 빨리 산행이 마무리되었기에 뒤풀이는 차편으로 이동하여 송어회를 먹기로 하였다. ▼
사실 나는 송어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단체 행동에서 예외일 수도 없었거니와 더구나 오늘
송어회는 이곳 봉화에 고향을 둔 분들을 비롯해서 여러분께서 한 턱을 쏘시는 것이라니 어찌 맛
이 없겠는가? 그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그곳엔 연자방아도 있었다.
양어장엔 쉴새 없이 맑은 물이 분출하고 있었다. 송어에게 산소 공급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송어들의 유영하는 모습이다.
<에필로그>
오늘 청량산 산행 역시 5년 전의 그때 이상으로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그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하늘다리를
건넜고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에도 오를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오늘 산행은 청량산의 봉우리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오를 수 있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자락 아쉬움이 남는다면 기대했던 청량사의 경내를 둘러 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과
당연히 청량한 울림이 있는 "안심당"에서 한 잔의 차를 마셔보지 못했던 것일테고 마지막 또 한가지는
청량산 산지기를 자처하는 왕년의 산꾼 이 대실 씨가 기거하는 "산꾼의 집 "에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조난구조, 산불감시, 차 공양 등을 자처하며 수년 전부터 옛 잡동사니와 골동품들을 조그만 공간에 가지런히
진열해놓고 청량산을 찾는 산꾼들에게 약 차 한 잔씩 공양하고 있었던 이 대실씨, 지금도 5년전의
그 모습일지 아니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그것도 아니면 과연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기나 하는지..
청량산을 떠나 한 참을 올때까지 산꾼의 집은 내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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