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한 건의 문자가 접수됐다.
"서해안 초계함 침몰사고와 관련하여 비상연락체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27일(토)은 별다른 산행계획 없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터라 비상소집령이 떨어져도
문제될게 없었지만 문제는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은 충북 알프스(구병산~속리산 구간)의 첫번째 구간을
걷는 산행계획이 잡혔기 때문이다.
산행계획을 취소할것인가? 아니면, 그냥 강행할 것인가?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고의 원인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비상소집 가능성이 좌우된다 할 것이다. 만의 하나 북한의
소행으로 판명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비상소집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한가닥 위안이 됐던 것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한결같이 북한의 소행 가능성을 다소 희박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가 일요일 아침을 맞았다. 산행 준비야 언제든지 갖추고
있었기에 별다른 준비없이 집을 나섰다. 마음 속으로는 정말이지 실종된 군인들의 전원 무사 귀환을 빌고
또 빌었고, 아울러 비상소집도 없기를 바랬었다.
산행 일시 : 2010. 3. 28(일)
산행 코스 : 서원리~칼바위능선~구병산~853봉~신선대~장고개
산행 시간 : 약 6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산행 들머리인 서원리이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고시촌 건물이다. 주변이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어서 그런지 제법 큰 규모의 고시촌 건물이 있었다. ▼
서원교이다. 이 다리를 건너 충북 알프스의 시발점으로 향한다.
충북 알프스의 시발점이다. 충북 보은군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구간을 1999년 "충북 알프스"로
지정하며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이곳은 5월 15일까지 산불예방을
위하여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감시원에게 통 사정을 하여 보았으나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애를 태웠다.
문득 입산 통제안내판을 주시해 보았다. 이곳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입산통제구역이니 입산을 하시고자 하는
분은 반드시 입산허가를 받아 입산하시기 바라며, 만일 입산허가를 받지않고 입산할 때에는 과태료가 부과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했다. 입산허가를 받고 입산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 구역은 절대적 금지구역이 아닌 상대적 금지구역인 셈이었다.
마침 이곳에 고향을 둔 분이 몇 분 계셨기에 그 분들이 애원해서 산길은 열렸었지만 기실은 입산 대상자 명단을
알려주고 허가를 신청하면 당국에서도 입산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암튼 산길이 열렸는데 원칙을 따져
어쩌겠는가? 나무 계단길을 따라 구병산으로 향했다. ▼
요 며칠 날씨는 분명히 이상기상(異常氣象)을 보여주었다. 때 아닌 폭설이 내린가 하면 수은주가 영하의 날씨로
곤두박질 치기도 했었다. 그 날씨의 여파 때문인지 오늘 날씨 역시 쌀쌀하기만 했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고 하였던가, 봄은 분명 왔는데 날씨는 봄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내 몸도 서서히
젖기 시작했다. 약 30 여분의 오르막길을 올라 갈림길이었다. ▼
칼바위 능선에 접어들었다. 구병산은 산 전체로 볼때는 크게 내세울 것은 없었으나 암산으로 이루어져 산행이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험했다. 예로부터 보은 지방에서는 속리산의 천황봉은 지아비 산, 구병산은 지어미 산,
금적산을 아들 산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사진은 병풍처럼 이어지는 멋진 구병산의
정경이다.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능선길을 평화로이 걷노라니 문득 김 소월 님의 산유화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렇다 때는 바야흐로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재채기를 하면서 마른 가지 끝에 새 움을 틔우는 봄날이었다. 구병산은 아직도 멀고 멀었다.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나가고 있는데 길 좌편에 꿋꿋하게 자란 노가지(노간주) 나무가 서 있었다. 노가지,
이 얼마나 다정스런 이름인가, 내 유년적 기억의 한켠에는 노가지 나무가 있었다. 불을 피우면 우직 우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잘도 탔었던 나무... 우리 아버지께서는 저 나무를 베어다가 어느 정도 자란 어린 소의 콧구멍을 뚫어
소코뚜미로 활용하셨다. 그런데 정원수 처럼 잘 자란 그 노가지 나무가 지금 내 앞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
풍광좋은 곳에서 일행 중 몇 사람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다.
기암괴석 앞에서도 한 컷 땡겨보았다.
갈림길이었다. 구병산은 아직도 2.6k를 남겨두고 있었다. ▼
다시 오르막길이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큼직한 고인돌 위로 돌무덤이 있었다. 인근 돌을 주워다가 정성드려
올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소망이 이뤄지기를 기원했다. ▼
여름에는 냉풍이 겨울에는 훈풍이 솔솔 불어 나온다는 풍혈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계절에는 어느 바람이 불어 나와야 하는 것일까? 냉풍? 훈풍? 바람 구멍에 손을 가까이
넣어 보았다. 그러나, 냉풍도 훈풍도 불어 나오지 않았다.
풍혈은 을릉도에 있는 것이 제대로 된 풍혈같았다. 작년 여름 을릉도를 방문했을때 풍혈이 있는 동굴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이지 에어콘을 능가하는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풍혈지대를 지나 정상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돌연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우회의 길 역시 상당히 험하고 질퍽거렸으나
조심 조심 그 길을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갈림길에 구병산이라는 안내표지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다.
다음 봉우리에 오를 무렵, 우리와 반대방향에서 산길을 걷는 어느 산객께 정상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정상은 이미
우리가 지나쳐 왔다는 것이다. 이제 보니 조금 전 구병산이라는 안내표지가 정상을 안내하는 표지같았다.
(뒤에 확인해 보니 구병산 글자 밑에 화살표시가 있었는데 빛이 발해 지워져 있었다.)
참으로 황당했다. '충북알프스'라는 브랜드 등록까지 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펴고있는 보은군, 이래도 되는
것일까? 등산로, 이정표, 안전시설 등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당해 지자체가 어찌보면
한심스럽기까지 하였다. 브랜드 등록을 취소하던지 어서빨리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안전산행을 위한
정비를 촉구해 본다. 사진은 정상에 있는 길라잡이이다. ▼
구병산(해발876m)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의 속리산 국립공원 남쪽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주능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아홉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구병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구병산은 주위에 있는 속리산에 가려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산 전체가 조용하고 깨끗하다. ▼
구병산 정상 표지석 뒤로 보이는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푸르기만 한 하늘 아래 첩첩한 산들도 푸르렀다.
참으로 눈부신 날이었다.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한 없이 푸르렀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상주 고을의 모습이다.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주를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역시 정상에서 바라 본 속리산의 산군들이다. 맨 우측부터 천왕봉, 비로봉.입석대. 신선대, 문장대, 관음봉, 묘봉,
상학봉 순이다. 물론 앞으로 걷게 될 충북 알프스의 구간이다. ▼
갈림길이다. 바로 지척에 853봉이 있었다.
853봉으로 향하는 길은 험로였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끔씩 밧줄이 설치돼 있었으나 이미 설치되어
있는 곳 보다 더 긴요한 곳이 많았다.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 바위를 오르내렸다. 다시 한번 보은군 당국에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충북 알프스라는 상품(?)이 나온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한번쯤은 모든 시설물들을 점검해 보고 스스로 산객(손님)들의 불편을 찾아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험지대를 어렵게 지나 853봉이었다. ▼
정상석이 낮기도 했지만 어려운 바윗길을 헤쳐 나왔던 탓에 몸은 많이 지쳐있었다. 만사가 귀찮아
맨땅에 덥석 주저앉아 버렸다,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하였던가,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위험한 산길을 걸어왔기에 이렇게
멋진 배경도 느낄 수 있었다.
주위 배경이 너무 좋아 사진촬영은 하였지만 그 뒤로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구병산은 전체적으로 기암괴석이 줄을 잇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구병산은 원래 아홉 봉우리라는 의미로
구봉산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큰 봉우리만 아홉개를 넘어야 했던 것이다. 그 봉우리 하나 하나 마다에
오르막이 있었고 내리막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산길에서는 당연히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내리막 길은 쉽고 편하다. 하지만, 인생 여정에서 맞이하는
인간의 길은 그렇지 않다. 오르막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고, 그런 반면에 내리막길은 짐승의
길이고 수렁으로 떨어지는 길이 많다. 만일 우리가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생이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하겠는가?
우린 오르막길을 통해 뭔가 뻔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거듭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는 거듭 태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법정스님의 가르침이다.
또 한 차례의 바윗길 험로를 거쳐 신선대에 이르렀다. 구병산 신선대, 이름처럼 신선이 나와 쉬어갔음직 했다.
신선대는 주변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장고개로 내려섰다. 이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백두대간 마루금의 비재가 나타난다.
충북 알프스 제2구간은 바로 저기 형제봉 부터 속리산 구간인 문장대까지 이어진다.
다음 구간인 형제봉으로 오르는 산길의 모습이다.
통닭 백숙으로 뒤풀이를 마치고 귀경길에 올랐다. 차창밖으로 일몰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벌겋게 물든
태양이 지평선 위에 걸린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에 끝 없이 펼쳐지는 들녘너머로 뉘엿뉘엿 잠겨드는
해를 바라본다. 해가 넘어간 뒤 땅거미가 질때까지 그 저녁놀의 잔영을 바라보았다. 그 여리고 순하디 순한
빛깔을....
<에필로그>
충북 알프스 첫번째 구간, 비록 위험했고 힘도 들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우려했던 비상소집도
없었다. 다만, 침몰된 천안함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오늘 천안함의 함미를 찾았다고 한다. 참으로 반갑고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실종된 군인들이 전원 살아있기만을 바랄 뿐이고, 또 전원이 구조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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