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흔 (傷 痕)
뿌리 뽑혀 흔들거리는
나무의 처연함을 아는가,
오랜 시간 가슴앓이 끝에
더는 힘에 부쳐, 주체하지 못하는
내 소중했던 두 그루의 나무를 뽑아냈었다.
가슴이 시리다.
반백년 동안이나 내 힘 없는 영혼을
지탱시켜 주었던 하얀 나무,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볼썽사나워
엉뚱한 금속 쇠붙이로 매꿔 보지만
갈갈이 찢기어진 빈 가슴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의 이 상처가
감기 정도나 앓고 난 것처럼
거뜬한 마음으로 여명을 향해 날개 짓 하는
새들의 맑은 울림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내 인생의 담벼락이 오늘처럼 싫은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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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傷痕)은 등단 작품 중의 하나이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몇 년전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그 소회를 한 편의
시로 표현해 보았다. 그 이후, 이(齒)에 대해 별 걱정없이 지내오다가 지난 해 다시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에 또다시 두개의 이를 발치하고 시술을 받았다. 다음 주에 또 하나를 더 손봐야 한다.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통증은 못 느끼지만 시술 과정을 돌이켜 보면 몸서리쳐지도록 끔찍했다.
물론 시술비도 만만치 않다. 가계가 휘청거릴 정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말고, 무리한 운동도 삼가하라는 것이다. 술이야 다소 적적하겠지만 마시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이미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산행은 어쩔 것인가? 백두대간 산행도 과연 무리한 운동에 포함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도 당분간은 피해야 하는 것일까? 이래 저래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론을 도출해
냈다.
결론은 이렇다. 주말이나 휴일의 산행은 내게 있어서 삶의 연장선상이다. 따라서 산행을 멈춘다는 것은
삶 또한 거기에서 잠시 정지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구나 백두대간의 마루금 걷기는 계획된 일정에 따라
차질없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단 한차례라도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여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치과 의사의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내 인생 여정의 하나인 산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산행 일시 : 2010. 2. 20(토)
산행 코스 : 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
산행 시간 : 약 8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오늘 산행 들머리인 덕산재에 가기 전에 라제통문 휴게소에 들렀다. 센스있는 산행대장의 리더에 따라
우린 생각치 않게 산행외 보너스로 라제통문을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나 자신 이곳을 차로만 통과 했을
뿐 차에 내려 둘러 볼 기회가 없었던 차에 아주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이다.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境界關門)
이었다. ▼
무주구천동 33경인 라제통문에 대한 안내판이다. ▼
김천쪽에서 바라 본 라제통문이다. ▼
라제통문 로터리에는 의병 강무경의 동상이 설치돼 있었다. ▼
의병 강무경의 활약내용이다. ▼
동상의 건립 배경이다. ▼
라제통문에서 약 20 여분 달려 날머리인 해발 644m의 덕산재에 내렸다. 덕산재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으며 대간 진행방향인 부항령 방향에 러셀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오늘 산행이 힘든 산행이 될것임을
예고하는듯 했다.
무주구천동 방향으로 향하는 소위 "라제통문로"이다. ▼
지난 대간 산행구간이었던 대덕산 방향이다. ▼
덕산재를 떠나온 지 한 참이 된 것 같은데 겨우 2.8km를 왔을 뿐이었다. 우린 부항령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드디어 부항령(釜項嶺, 690m)에 이르렀다.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잇는 부항령은 백두대간
고개중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최북단 고개이다. 부항이란지명은 고개 동쪽의 마을 형국이 풍수지리상
가마솥 같이 생겼다 하여 가매실, 또는가목이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면서 부항이 됐다고 한다.
삼국시대때 무풍이 신라에 속할 때 덕산재, 소사고개와 더불어 변영을 잇는 주요통로였으며 부항령 아래
에는 현재 삼도봉 터널이 지나고 있다. ▼
부항령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을 이어주던 고개로서의 옛 정취를 잃은 채 쓸쓸했다.
백두대간의 산꾼들을 제외하고는 지나는 사람이 없이 잊혀진 오솔길이 되어 있었다. 이유인즉, 삼도봉
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막내이와 나는 허기가 왔기에 이곳에서 간단히 행동식을 챙겨먹었다. ▼
부항령을 출발하여 30 여분쯤 걸어왔다. 이제 백수리산은 불과 700m만 남겨두고 있었다. ▼
백수리산(1,034m)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오늘따라 날씨도 포근한 봄날씨 같았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동절기의 평소 산행만 생각하고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였던 것이 크나 큰 실착이었다. 벌써 물은 동이 나기일보 직전이었다. 목이 타올랐지만 참아야 했다. 그 대신 막내이만 물을 마시게 하였다. 이제 그나마도 언제
바닥이 날지 모를 일이었다.
해발 1034m의 백수리산 정상이다. '백두대간 백수리산 1,034m'라고 써있는 작은 현수막이 앙증스러웠다.
부산 낙동산악회에서는 백두대간 마루금 곳곳에 이런 현수막을 설치해 놓았다. 정상석이 없는 곳에서는 저런
현수막 하나하나가 참으로 값지고 의미있다. ▼
피로가 역력한 막내이의 모습이다. ▼
백수리산을 지나고서도 수 많은 이름 없는 봉우리들을 오르내려야만 했었다. 지나 온 능선을 뒤돌아 보았다.
저 많은 산봉우리들을 걸어오다니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였다.▼
정상석이 없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박석산(1,175m)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득히 덕유산과
초점산, 그리고 대덕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
갈증을 참아가며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앞서 가던 막내이가 "야~! 산죽회 리본이다."
하며 멈춰 선다. 오늘은 다른 산악회를 따라 나섰지만 제딴에는 자기가 소속돼 있는 산악회의
리본을 보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오늘 산길이 대체적으로 이랬었다. 처음부터 아이젠은 착용했었지만 스펫치를 착용하지 않다가 중간에
착용하려 하였으나 이미 등산화 속으로 꽤 많은 눈이 들어간 뒤라서 포기하고 말았다. 백두대간의 마루금
상에는 저렇게나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더구나 그 길은 러셀마저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힘이 평소보다
두배이상 들었고 산행속도도 그만큼 늦을 수밖에 없었다. ▼
눈 쌓인 산길을 힘들게 힘들게 걷다보니 목은 더욱 더 타올랐다. 식수가 이미 동이 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 없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타는 목마름"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나온 말일
것 같았다. 지친 막내이가 저만큼 뒤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걸어오고 있었다. 산길에서는
원래 다른 분들로부터 물을 얻어마시지 않는 것이 하나의 불문률처럼 되어있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막내이에게 물을 조금이라도 얻어 공급해주고 싶었다.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 설상가상으로 많은 적설량으로 인한 힘든 산행.. 이 모든 환경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물 사정은 비단 우리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오늘 대간산행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물타령들을 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럴진데 어떻게 물을 얻어 마실 수 있단 말인가? 한 모금의 물,
그것은 바로 생명수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삼도봉을 향하여 지루한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삼도봉 500m
전방쯤에서 갑자기 "산삼 약수터"라는 표지가 나타났다.
살펴보니 30m 아래에 약수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냥 약수가 아니고 산삼 약수였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통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약수터엔 가는 물줄기나마 물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질나게 나오는 물을 받아서 얼른 올라갔다. 어서 빨리 막내이에게 달콤한
생명수를 먹여주기 위해서이다. 한 참을 뒤쳐진 막내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뒤따라 오는 어느 분께
막내이의 소재를 물어봤더니 방금 전에 이 지점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내가 물을 받아 오는 틈에 지나 간
모양이었다.
제빨리 막내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막내이는 삼도봉 다 가서야 겨우 조우할 수 있었다. 그저 고마움에
물을 꿀꺽 꿀꺽 받아 마시고 깊은 한 숨을 몰아쉬는 막내이의 모습에서 작은 행복같은 것이 느껴졌다. ▼
삼도봉에 오르자 삼도화합 기념탑이라는 거대한 석조물이 있었다. 물론 이 석조물은 내게 있어서 벌써
네번쯤은 보는 듯 싶었다. 석조물의 하단에는 거북이 세 마리가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 세 마리의 용이
검은 여의주를 이고 있었다.
석조물의 삼면에는 충북 영동군, 경북 금릉군, 전북 무주군이라고 맞닿아 있는 행정구역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삼도의 삼군 주민들은 매년 10월10일에 이곳에 모여서 삼도의 화합을 위한 조촐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어찌 삼도만의 화합만 바라겠는가? 부디 한반도의 대화합을 소망하게 되는 삼도봉이길
바란다. 사진은 전라북도 방향의 모습이다.▼
삼도의 대화합을 위한 기념탑임에도 불구하고 석조물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에 균열이 나 있었다.
흉한 모습이었다. 삼도의 화합을 위해 세워진 석조물이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분열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아래 사진은 충청북도 방향의 모습이다. ▼
언제나 이곳은 높은 산정을 휘감고 칼바람이 불었지만 오늘 만큼은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었다.
하지만, 이처럼 평온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삼도에 얽힌 돌무더기 전설은 산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삼도봉 정상엔 원래 세개의 돌무더기가 있었다한다.삼도 사람들이 각각 자기 고을의 안녕을 위해 쌓은
것이다. 그런데 돌무더기를 크게 쌓은 도가 가장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람에 삼도간에
서로 경쟁적으로 돌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돌무더기가 가장 작은 고을 사람들이 돌무더기를 모두 허물어버렸다는 것이다.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마음이 씁쓸한 이야기이다. 듣지 않은 만 못한 이야기이다. 사진은 경상북도 방향의 모습이다.▼
삼도봉에서 바라 본 석기봉의 모습이다. ▼
우린 황룡사 방향으로 하산하여야 한다. 그런데 황용사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
삼마골재이다. 백두대간분수령은 삼도봉에서 방향을 틀어 영동과 김천고을을 양쪽에거느리고 뻗어간다.
삼도봉에서 말복재로 가는 길은 오붓한 오솔길 오른쪽은 김천의 오지인 해인고을이요, 왼쪽은 영동의 오지로서
상촌주민들의 식수원인 물한계곡이다. ▼
아래 사진은 밀목령 방향의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친 막내이를 다독여가며 물한계곡 방향으로 뛰어내려왔다. 얼만큼 내려오니
삼도봉 약수터가 있었다. 역시 물한 계곡이었다. 사시사철 맑고 찬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
얼음 밑으로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얼음을 깨고 컵으로 물을 담아 마셨다. 물맛이 시원하고 정갈했다.
마음도 맑아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듯 했다. 산행에 지친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아마 우리 막내이도
그랬으리라.
물한계곡은 다리 하나에도 저렇게 품격있게 설치돼 있었다. 여름 철 갑자기 불어 난 계곡물을 피해 계곡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 만들었으리라.
물한계곡은 풍치는 물론 물맛도 첫손에 꼽힌다. 금강에 합류하는 초강천의 발원지인 물한게곡은 삼도봉에서
갈라져 나온 백두대간의 지맥인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등 천고지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기에 골이
깊고 물이 맑을 수밖에 없다. ▼
우리가 하산 했을땐 어둠이 짙게 내려 있었다. 실로 8 시간의 긴 산행이었다. 겨울철 산행치고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뜻하지 않게 물 부족으로 애를 태웠던 산행이었다. 많은 적설량 때문에 무척 힘이 든 산행
이었다. 내일 역시 대간산행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치과 의사께서는 무리한 운동은
절대 피하라고 말씀 하셨는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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