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고 한다. 그 이유로 "산에는 높이 솟는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이며,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 이 밖에도 무수한 것들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은 사철을 두고 늘 새롭다. 그 중에도 여름이 지나간 가을산은 영원한 나그네인 우리들을
설레게 한다."고 법정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랬던 것일까? 나도 소위 "산맛" 이라는 걸 알아가는 것일까? 나도 자연과 어느 정도 소통하는
단계에 이른 것일까? 어쨌든 요즘 나는 산길을 거닐면서도 때로는 산이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여유로운 산길을 걸을 때는 더욱 그렇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산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설레임으로
산을 그리워 할지 모를 일이다.
산행 일시 : 2009. 11. 22(일)
산행 코스 : 심중리~동림산~망경산~군공원묘지~운주산~고산사~동교리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산악회 : 산악랜드
아침 7시에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 중간에 여러 산객들을 태우고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망향 휴게소에 들렀다. ▼
오늘 산행 들머리인 심중리(민태절)이다. ▼
오늘 걷게 될 코스별로 거리가 나와 있는 안내판이다. 오늘은 모두 3개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3개산이라고는 하지만. 들머리에서 동림산(457m)정상까지 1.6km, 다시 망경산(385m)정상
까지는 3.3km, 고소재까지 0.6km, 운주산 정상까지 4.2km, 고산사까지는 1.7km, 고산사에서
동교리까지 약 3km 등 총 14.6km의 거리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거리쯤은 백두대간 마루금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백두대간 한 구간의 절반 남짓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
동림산 중턱쯤에 이르자, 면계의 표지판이 있었다. 면 경계가 그리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굳이 저렇게
표지판까지 설치해 둘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
산행시작 30 여분만에 오늘의 첫 산인 동림산에 이르렀다. 산 정상에는 심중리 편입기념비가 있었다.
그리고 기념비 뒷면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연기군은 차령산맥의 정기와 금강의 푸른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천혜의 보배로운 고장이다.
예로부터 충.효.예를 바탕으로 민심이 곧고 순박하여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살기좋은
고장으로 군민 모두가 슬기와 지혜를 모아 보다 슬기롭고 복된 삶의 터전을 가꾸어 왔다.
1995년 3월1일자로 충북 청원군 간외면 심중리가 우리 연기군에 편입되었으므로 이를 기념하고
군민화합과 우리고장 발전을 위한 충북 청원군과 경계를 이루며 차령산맥의 정기가 있는 이곳
동림산 정상에 심중리 편입기념비를 세운다. 1995. 3. 1 연기군민일동
연기군에서 심중리가 찾이하는 비중이 얼만큼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기념비 하나로 군민불화가 화합으로 승화된다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군민 모두의 진정성있는 태도에 달렸다고 본다. 우리가 영원히 기대어야 할 자연은 모름직이 자연스럽게 관리해야 한다. 시설물
하나에도 자연은 고통받고 있다. ▼
동림산 정상에는 이렇다 할 정상석 하나 없었다. 차라리 심중리의 연기군 편입기념비 대신에,
간결하고 아담한 정상석을 설치해 놓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미리 준비해 간 정상표지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이제 망경산을 오를 차례이다. 망경산까지는 3.3km이다. ▼
낙엽쌓인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거듭했다. 산길은 정직했다. 오름이
있으면 반드시 내림이 있었다. 이제 망경봉은 1.3km를 남겨두고 있다. ▼
동림산에서 1시간 여를 걸었을까? 드디어 오늘의 두번째 산인 망경산에 이르렀다. 특이한 점은 지금
내가 서 있는 망경산의 높이가 우리 집 뒷산인 모락산의 높이와 똑같은 해발 385m라는 사실이다. ▼
망경봉에서 내려다 본 천안시내의 모습이다. ▼
우리가 가야 할 운주산의 모습이다. ▼
오늘 3개산 연계산행은 마치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거닐다 보면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횡단하여 다시 또 마루금을 걸어야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망경산을
내려오니 난데없이 지방도로가 나타났다. ▼
693번 지방도로 조치원 방향이다. ▼
천안시내 방향이다. ▼
연기군 국가유공자 묘역이다. 국립 현충원은 몇 차례 다녀오기도 했었지만 지방의 군단위에서 이렇게
국가유공자 묘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
국가를 위해 헌신봉사하다가 가신 분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과연 군단위에 국가유공자가 몇 분이나 되기에 또 명실상부한 국가유공자는 엄연히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고 있는데 군단위에 이처럼 큰 묘역을 설치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
운주산은 이제 2.5km를 남겨두고 있었다. ▼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운주산 정상에 이르렀다. 그러나, '백제의 얼 상징탑'이
반가이 맞이할 뿐 이곳에도 역시 정상석은 없었다. 다만, 정상석 크기의 검은 돌에 "고유문"이란
것이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
고유문 뒷면에 새겨 진 글의 내용이다. 신미년 육월 이십구일 운주산신님께 고하나이다. 차령산맥의
정기가 서려있는 이곳 운주산에서 10만 연기군민들은 옛 백제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향토문화의
맥을 잇고 고장의 무궁한 발전과 국가의 번영, 나아가 조국통일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
백제의 얼 상징탑, "이 탑은 백제 부흥군의 호국 충혼이 서려있는 운주산의 정상에 위치하여 독립
기념관과 마주 보며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서로 화합하는 평화로운 터전위에 온유
하고 순박한 인정을 가꾸며 충의롭게 살아 온 충효의 고장 연기에서 충청인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진취적 기상을 드높이고 예지에 빛나는 미래 문화의 원동력으로 삼아 민족통일의 염원을 이룩하고
자 건립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언어였다. 그 말의 뜻대로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운주 산성 성곽로이다. ▼
성곽로를 타고 한 참을 내려오니 운주산성이었다. 운주산성은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7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늘 구름이 끼어있다 하여 이름 지어진 해발 460m의 운수산 정상을 기점으로
서.남단 3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포곡성 산성이다. ▼
운주산성은 서기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풍왕과 복신, 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구국항쟁지로 평가되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산성이다. 산성주위의 네귀에 높이 솟은 봉우리를
정사각형으로 성벽을 연결시키며 구축한 성곽으로 분지형의 산세와 어우려져 수려한 풍치를 뽐내고
있다. 둘레3,210m, 폭2m, 높이2∼8m로 축조된 성안에는 3개의 우물터 흔적이 있으며 중턱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얼마전까지 논으로 활용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성안에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
등산로가 끝나는 부분에 성곽복원작업을 한 서문지를 만난다. 서문지를 올라 소로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운주산성 성곽을 만나게 된다. 성곽은 무너져 흔적만이 남아 있고 성곽의 형태를 보전하고
있는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군에서는 산성복원작업(동문지, 서문지)을 197.6m하였고,
동문쪽에 주춧돌을 발견 건물지 복원작업을 약 150㎡하였다고 한다. ▼
무너져가는 조국을 사수하기 위하여 성을 쌓고 마지막 항전을 했을 백제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만추의 가을에 세삼 서글픈 생각이 든다. 마음 스산했다. 한 때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담았던 성,
그 꿈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웠던 산성은 이제 무너져 바람만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
고산사입구이다. ▼
고산사 경내의 백제루이다. ▼
어떤 의미일까? 허름한 나룻배에 "신백제"라고 쓰인 노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
고산사에서 도로를 따라 한 참을 걸어왔다. 우여곡절을 거쳐 해천사입구 삼거리까지 왔다. 산행
날머리까지는 아직도 30 여분을 걸어가야 한다. ▼
날머리인 동교리로 가는 길가에는 그림같은 집들이 많았다. 부대낀 몸, 쉬었다 가고 싶었다. ▼
오늘 산행의 최종 날머리인 동교리 샘골마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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