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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천왕봉~추풍령

지지리-중재-중고개재-백운산-영취산-무룡고개

 

근래의 산행은 무박산행이 없었던 터라 소위 산맛을 온전히 느끼면서 산길을 걸을 수 있어서

마음 가벼웠고 행복 가득한 산행이었다. 이제 또 다시 다음 주에는 백두대간 마루금 중 구룡령~

조침령 구간의 무박산행이 예고돼 있지만 적어도 오늘과 내일 산행은 무박의 굴레에서 벗어 난

편안한 산길이 될 것 같다.

 

오늘 중재~백운산~영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지난 번 대간산행 때처럼 여원재의

슬픈 전설이나 복성이재 아래 흥부마을의 재미있는 전설 등과 같은 소위 속세에 얽힌 이야기는

없다고 한다. 속세에 얽힌 이야기들을 음미해 가며 대간 마루금을 걷는 재미도 분명 솔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없는 얘기들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굳이 들춰내서

떠드는 것도 대간 길을 걷는 올바른 자세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산행 일시 : 2009. 11. 21(토)

산행 코스 : 지지리터널-중재-중고개재-백운산-영취산-무룡고개

산행 시간 : 약 4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지지리에서 오늘 산행 들머리인 중재(중치재)를 향하여 분주하게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이 제법 쌓여있어 겨울산의 운치까지 느끼게 하여 주고 있었다. ▼

 

 

중치재이다. 복성이재에서 넘어 온 재이지만 지난 번 누락된 구간이라서 낯설기만 하다. ▼

 

 

가볍게 가볍게 몸을 풀듯 몇 걸음 걷다보니 어느 새 중고개재였다. 역시 무박산행이 아닌 대낮에

걷는 산길은 전혀 부담감이 없는 한 없이 편안한 산길이었다. ▼

 

 

오늘은 비교적 여유있는 산행이었지만 너무 여유만 부리다가는 땀도 제대로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백운산 정상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간간이 지나 온 길도 뒤돌아 봤다.▼

 

 

이제 백운산은 0.8km만 남겨두고 있다. ▼

 

 

백운산 정상 직전의 중봉 갈림길에 이르렀다. 백운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정상에 다다른듯하면 또 내림길이 있었으며 내림길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봉우리가 하나 더 솟구쳐

있었다. 마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 했다. 그렇게 몇 차례를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산은 정상에 오르는 길을 허락하여 주었다. 다행히 오늘 산길이 여유로운 산길이어서 망정

이지 장시간 산행이었다면 처음부터 지치고 말뻔 했다. ▼

 

 

중봉은 백두대간길에서 비껴 있었다. 다녀 올까도 싶었지만 정상석도 없다고 해서 그냥 사진만

촬영해 두기로 했다. 뒤에 보이는 산이 중봉이다. ▼

 

 

드디어 해발 1279m의 백운산 정상에 올랐다. 백운산은 지리산 전체와 덕유산 전체가 온전하게 조망

되는 곳이다. 일찍이 선답자 윤제학은 백운산을 일컬어 "왜 백두대간이 이땅의 등뼈인가를 털끝만큼의

의심 없이 실감케 하여주는 산이다."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백운산에 오르면 당초 대간길에

나선 목적은 거의 달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고도 한다. ▼

 

 

흰구름이란 뜻의 백운산은 같은 이름의 전국 30여개 산중 가장 높고 사방이 탁 트인 훌륭한 조망대다.

산정에 눈과 구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행정구역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 서상면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백운산은 10여개이고 그중 7개산 정도

다녀왔는데 무려 30여개산이라니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

 

 

 

백운산 정상에는 상고대가 피었다. 활짝 피어 난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하얀 순백의

겨울산행에 돌입하는 것 같았다. ▼

 

 

중봉 뒤로 아스라이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르는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보인다. ▼

 

 

웅장한 덕유산의 능선이 바로 지척에 있다. ▼

 

 

발걸음을 몇 발짝 옮겨보니 백운산 정상석이 또 있었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아담하고 멋스러운

걸로 보아서 이것이 오리지날 정상석 같았다. ▼

 

 

 

다시 발길은 영취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백운산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뭇내 아쉬워

다시 백운산을 뒤돌아 본다. ▼

 

 

다시 우리는 선바위고개에 이르렀다.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에도 산행지를 꺼내 들고 앞으로 진행

해야 코스를 살피고 있는 막내이의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표정에서 오늘 산행이 얼마나 쉬운 산행임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무박산행이 힘들었으리라..▼

 

 

 

영취산에 오르는 길의 숲은 하얀 눈으로 젖어 있었다. 숲은 고요했다. '신령 령(靈)'에 '독수리

취(鷲)'자를 쓰는 산 이름 때문이었을까. 숲은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해발 1076m의 영취산 정상에 이르렀다. ▼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매우 중요한 산이다. 새로운 산줄기 금남호남정맥이 시작하는 곳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봉화산,백운산을 거쳐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길에 있는 산이다.

금남호남정맥은 영취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바로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1,237m)

에서부터 무주의 주화산(600m)까지 이르는 65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그뿐이 아니다. 영취산의 물줄기는 동으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섬진강, 북으로는 금강으로 흘러든다.

우리나라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을 이루는 삼파수인 셈이다. 삼파수는 속리산 천왕봉(낙동강,

금강, 한강)과 함께 단 두곳이다. 이처럼 영취산은 이 땅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나누는 중요한 산이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이 '빼어나고 신묘하고 신령한 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당연했다.

 

 

정상석 뒤에 새겨져 있는 영취산의 해설이다. 커다란 정상석을 바라보면서 이곳이 3대강의 분수령

이라는 사실을 알고 문득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릴 때 굵직한 빗줄기가 정상석에 부딛혀

뜻하지 않게 낙동강으로 흐를 빗물이 섬진강, 혹은 금강으로 가지나 않을 까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빗물의 최종 목적지는 똑 같다. 빗물이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어느 강으로 흐르던 그것은

궁극적으로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

 

 

영취산 정상에는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 간판에는 백두대간을 표시한 우리나라 전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백두대간 산길을 걷는 곳곳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읽어봐도 싫지가 않았다.
[우리나라의 산줄기]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들을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


 

또한 백두대간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백두대간은 이 나라 골격의 틀 중에 가장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되어진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

 

 

오늘 산행 날머리인 무룡고개로 내려왔다. ▼

 

 

이것은 장수군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안내판이다. ▼

 

 

오늘 백두대간 산행도면 ▼

 

 

산행이 너무 빨리 마무리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았다. 귀경길에 논개의 생가를 다녀가자는 의견이

집약되어 뜻하지 않게 보너스 여행을 하였다. 의암 주논개 생가지 안내석이다. ▼

 

 

논개 생가터가 있는 마을의 석양풍경이다. 어느 집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논개의 동상과 초상화 ▼

 

 

 

의희루(義姬樓)에 올라 당시 논개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

 

 

의암 주논개 생가지 안내판이다. 1593년(선조26) 6월 남편 최경희 현감을 따라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고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남편과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 모곡촌육조를 진주 남강변 현재의 의암이라 불리는

바위로 유인하여 함께 투신 순국한 겨레의 여인 주논개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

 

 

주논개의 고향이 장수마을이라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

 

 

주 논개의 생가터와 복원된 생가의 모습이다. ▼

 

 

 

 

논개 부모의 묘소이다. ▼

 

 

 

단아정, 이곳은 의암 주논개가 어릴적 또래들과 노닐던 곳으로 이른 봄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고 산새들의 고운 노래소리가 주촌골의 메아리를 불러모은 곳이다. 이곳에 義姬의 충절을 표상

하기 위하여 정자를 세우고 丹娥亭이라 이름하였다. ▼

 

 

 

주 논개공원의 시설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