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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천왕봉~추풍령

권포리-통안재-사치재-새맥이재-시리봉-복성이재

 

넓다란 길가에 가지런히 늘어선 은행나무, 이제 얼마 안있으면 한 마리 까치의 푸르럭거림에도

노란 잎새가 곱게 내려 앉을 것이다. 그리고 잎새잎새가 모여 낙엽군을 형성해서 거리를 뒤덮고

거리는 온통 노란물결일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자연이 가져다주는 섭리의 매력은 놓치기 아깝다.

오늘도 나는  덧 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따라 자연이 주는 섭리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산길을 걷는다.

 

 

산행 일시 : 2009. 10. 17(토)

산행 코스 : 권포리-통안재-매요리-사치재-새맥이재-시리봉-복성이재

산행 시간 : 약 5시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지난 회 산행 날머리였던 권포리에 다시 왔다. 지난 산행 때는 뒷풀이를 이곳 권포회관 앞 마당에서

했었다. ▼

 

 

권포리에서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 통안재로 올라선다. 그런데 권포리 골목길에서

부터 알바가 시작된다. 어떤 할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무심코 걷다가 일어난 낭패(?)다. 때문에 선두가

후미로 후미가 선두로 뒤바뀐다. ▼

 

 

결코 짧지않은 접속구간인 통안재를 오른 다음 본격적인 대간 길에 접어들었다. 우리 막내이가 지난

번 벌재~하늘재구간에서 혹독한 산행으로 백두대간 신고식을 마쳤기에 오늘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됐었다.  ▼

 

 

산길은 평탄했다. 산책길을 거닐듯이 가벼운 발놀림으로 마음 편하게 걸었다. 얼마간을 거닐다 보니

유치(柳峙)재가 나타났다. ▼

 

 

백두대간 마루금 걷기가 이렇게 편해도 되는 것인가? 마치 동네 야산을 오르듯이 우리는 버들재를

지나 매요(梅要)마을로 들어섰다. ▼

 

 

 

'매요리'라는 마을 이름은 일찍이 사명대사가 '마을 사람들의 성품이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할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매요마을에 들어서니 멋진 정자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백두

대간 산꾼들을 위해 마련한 정자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배려가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되어 이미 폐교된 운성 초등학교 앞에는 매요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막걸리도 맛볼수 있는 대간 분수령의 명물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대간꾼들만나는

재미에 주인장인 할머니는 아직도 문을 못닫고 있는 것이리라. ▼

  

 

"이 매요 마을에서 쉬면서 막걸리를 한 잔씩 하는 것이 대간을 타는 사람들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럴 것 같았다. 우리 막내이는 라면을 시켜주고 우린 막걸리를 걸쭉하게 몇 잔 시켜 먹었다. 솔직히

그 전통 때문에서라기 보다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속언에 따랐다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

 

 

해발 500m인 사치재이다. 막걸리 몇 잔에 탄력을 받아 금새 사치재에 안착할 수 있었다. ▼


 

사치재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고속도로와 만나는 유일한 지점이다. 88올림픽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고속도로 밑 지하도를 통과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달려오는

차량을 확인하고 잽싸게 고속도로 위를 걷는다. 고속도로 자체가 마루금이기 때문이다. ▼

 

 

사치재를 지나 시리봉으로 향했다. 시리봉(777m)으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때때로 바람 불어

몸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시리봉에 가까웠을 때 새까맣게 타버린 숲이 보였다. 약 10여 년 전에

일어난 산불로 인해 타버린 숲이다. 소나무 숲이었다. 숲을 보노라니 마치 소나무들의 공동무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인간의 작은 부주의가 저렇게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것이다. 마음이 씁쓸했다. ▼

 

 

시리봉(시루봉)에 오르는 능선은 억새 숲이었다. 막내이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

 

 

 

시루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억새와 잡목들이 우거진 숲길이었다. 그길을 걷는 일은 짜증

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순간 만큼은 표정이 밝아진다. ▼

 

 

새맥이재를 향해 걸었다. 어느 전망 좋은 봉우리에 올랐다. 백두대간 마루금 중 오늘처럼 길라잡이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정상석이 없는 곳도 흔하지 않으리라..바로 밑에는 88고속도로의 지리산

휴게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

 

 

새맥이재이다. 새맥이의 유래가 궁금했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자료가 눈에 띄지 않았다. ▼

 

 

시루봉 정상쯤으로 보였다. 간간이 바람이 불었다. 어느 순간에는 시원한 바람이 또 어느 순간에는

명치 끝까지 시린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 밑에서 산길을 거닌다는 그 자체가

큰  행복이었다. ▼

 

 

복성이재로 향하는 길목에 나타 난 선바위의 모습이다. 담쟁이 넝쿨로 바위 전체가 감겨져 있다. ▼

 

 

오늘의 마지막 구간인 복성이재로 향했다. 복성이재에 다다를 무렵 무너진 성벽이 보였다. 아막산성

(阿莫山城)이라고도 불리는 아막성이었다. 무너진 아막성벽 곁에는 전라북도 기념물38호라는 입간판

서 있었다. 그 옛날 삼국시대에 세워진 오래된 성이라고 한다. ▼

 

 

 

아막성, 백제에서는 이렇게 지칭했고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불렀는데 신라와 백제가 국경 분쟁을

일으킬 때마다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적인 성이다. 군사들의 목적도 바로 운봉고원이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백제 무왕 3년 서기 602년 백제는 4만의 군사로 아막성을 공격하였으나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하여 성을 점령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후일 재차 공격하여 이 성을 점령하였지만 다시

신라에게 빼앗으며 그 후 무왕 17년에 총공격을 감행해 다시 점령하였다. 참으로 치열한 전투였을

것 같았다. ▼

 

 

세월 탓일까. 사람들의 무심함 탓일까. 성벽은 무너지고 성벽을 쌓았던 돌들은 허물어져 골짜기를

메우고 있었다. 이 곳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장열하게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못 다한 삶이

아직 그 곳에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빨간 열매를 맺은 이름 모를 저 나무만은 무엇인가를 알듯 싶었다. ▼

 

 

그 동안 나는 지나 온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해 너무 냉담하였다. 어쩌면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게 된

동기도 조금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어보자는 것이었다. 허물어져 내린 돌들을 조심스레

밟고 골짜기를 내려왔다. 수백 년, 수천 년 이 땅의 숨결이고 삶이었던 역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가슴 아팠다. 

 

 

몸은 어느 새 아막산성에서 복성이재로 내려오고 있었다. 길라잡이에 흥부마을로 내려가는 안내도

돼있다. ▼ 

 

 

복성이재로 내려섰다. 복성이재는 북두칠성 주변에 별자리를 잡은 복성이라는 별의 빛이 비추는

재라고 한다. ▼

 

 

복성이재는 전라북도 장수군과 남원시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

 

 

 

복성이재라고 써 있는 이정표 곁으로 '중치 12.1km'라는 안내판이 달려 있었다. 바로 다음 대간길의

진행하는 방향이다. ▼

 

 

용변을 보기 위해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인 수분령 휴게소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