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내 삶의 여정이 무겁고도 외로운 여행 일정으로 빽빽하게 짜여져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여정의 일부를 기꺼이 산을 만나는데 투자하겠다. 그렇다. 오늘도 나는 그 여정중의 하나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기로 하였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힘들고 괴로운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좋은 날도 있고 즐거운 날도
또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들 때는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인생의 참된 멋일 것이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산행을 하다보면 처절하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길은 대체적으로 오래 걷게 되어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산길은 부드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또한 그 산길은 대체적으로 구간도 짧은 편이다. 오늘 산길이
그랬었다. 지난 몇개월 동안 쉼 없이 진행해 온 백두대간 무박산행, 그 길을 이어가면서
이미 내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오늘 걷게되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이처럼 힘들고 지친 내 몸을 조금이라도 위로받기 위하여
부드럽고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구간으로 짜여져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산행 일시 : 2009. 9. 5(토)
산행 코스 : 성삼재~작은 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삼거리~주촌마을
산행 시간 : 4시간 30분
안내 산악회 : 경기우리 산악회
이른바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 입구이다. 이름처럼 아름답고 신선스러울 것같은
느낌이 들지만 과연 그럴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후죽순처럼 생겨 난 음식점들이 오염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
꾸불꾸불 뱀사골에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따라 우리를 실은 관광버스는 어느 듯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 그 옛날 변한과 진한에게 쫓기던 마한의 왕은 지리산으로 들어와 성을 쌓고 여러 장군들을
보내어 군사적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바로 이곳 성삼재(姓三재)는 성이 다른(각성바지) 세 명의
장수를 보내 지킨 곳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늘의 산행 들머리이다. 우리는 만복대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
해발 1248미터의 작은 고리봉에 올랐다.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온 소금배를 묶어 놓는 고리가
있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작은 고리봉에 오르니 만복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
벌써 성삼재로부터 2.0km를 걸어왔다. 만복대까지는 3.3km를 남겨두고 있다. 이렇듯 길라잡이는
참으로 유용하다. 우리네 인생의 길목길목에도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 온 길을 돌이켜 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바른 길만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산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살결에 스치는 산죽 잎새의 느낌이 좋았다. ▼
시원스레 펼쳐지는 능선을 따라 만복대를 향하여 걷고 또 걸었다. ▼
드디어 해발 1433m의 만복대에 올랐다. 시계가 좋지않아 별로였지만 지리산 날씨치고는 그런대로
봐줄만 하였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리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반야봉이 보인다. ▼
정령치는 이제 2.0km만 남겨두고 있다. ▼
만복대에 있는 돌탑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돌탑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돌탑이 아니고 새로 쌓아올린
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담아 쌓은 돌탑이 무너져서 슬퍼했었는데
이렇게 재건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만복대 서쪽사면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정령치 휴게소(해발 1172m)로 내려왔다. 만복대의 이 능선은
천연의 요새로 멀리로는 마한의 피난 왕조, 가깝게는 빨치산들도 한동안 심원계곡 일원에 진을 치고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정령치는 서산대산의 황령암기에 의하면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산 밑을 내려다 보면 발 아래 보일 듯 말듯 굽어 보이는 절경은 장엄하기 그지없고 오늘처럼 안개가
낀날에는 선경이 연상되어 내 자신이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낀다. 때맞춰 시원한 바람 한 줄기 고갯
마루를 휘감고지나간다. 기분이 상쾌했다. 2천여년 전 정장군의 얼굴을 스치던 바람도 이랬을까? ▼
백두대간의 재조명과 의미, 다시한번 음미해 본다. ▼
정령치, 변방에서 살던 병사들이 그리움으로 밤을 새던 이 고갯마루에서 큰고리봉으로 들어서려는데
길가에 엉겅퀴 한 무리지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엉겅퀴를 보니 문득 슬픈 전설이 떠 올랐다.
젖소를 길러 우유를 짜서 장터에 팔러다니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무거운 우유 통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소녀의 머리 속은 우유를 팔아서 무엇을 살까하는 즐거운
생각뿐이었다. 산을 넘어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바람을 탄 엉겅퀴가시가 소녀의 종아리를 찌르고
말았다.
소녀는 깜짝 놀라 중심을 잃고는 넘어져 길가에 있는 돌에 머리를 부딪혀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소녀는 죽어서 자기가 기르던 젖소로 변하였고 자기를 찌른 길가의 엉겅퀴를 자기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고 모두 뜯어 먹으면서 돌아다녔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전설이 아닐 수 없다. ▼
전망대에 올라섰다. 만복대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걸어 온 산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듯 싶었다.
나의 지나 온 삶의 여정도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스님들의 엎어놓은 밥 그릇을 닮았다는 바래봉과 8명의 장수를 보내 지키게 한 곳이라는 팔랑치로
진행하는 길라잡이의 모습이 보인다. ▼
걸음을 재촉하여 큰 고리봉(해발1305m)에 오르니 아스라하기만 했던 지나 온 길이 선명했다. 멀리
천왕봉도 보이고 반야봉도 보였다. 그 뒤에 자리한 토끼봉도 보이고 서부 지리산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만복대도 보였다. 노고단도 보였고 지리산 태극종주의 날머리인 덕두산도 보였다. ▼
우리가 진행해야 할 방향은 고기삼거리이다. ▼
큰고리봉을 지나왔다. 우리가 진행할 방향은 역시 고기삼거리이다. ▼
백두대간분수령은 고리봉에서 북서쪽으로 휘어져 운봉까지 급하게 이어진다. 고기리에 내려서면 문득 눈앞에
평원이 펼쳐지며 백두대간 분수령은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우린 이제 왼편 운봉고원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고기삼거리이다. 일단 이곳에서 지친 몸을 달래가며 뒷풀이를 했었다. 지리산의 백두대간은 천왕봉에서
제석봉~칠선봉~삼도봉~노고단~만복대~고리봉을 돌아 고기삼거리까지 약 40km에 이른다.▼
고기삼거리에서 대간 길은 갑자기 끊겨졌다. 그리고 난데 없이 도로가 나타났다. 60번 지방도로가
나타 난 것이다. 끊겨진 대간길을 이어가기 위하여 우린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 길도
엄연히 대간 길이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기준으로 길을 낸 것이다. 60번 도로를 기준으로 섬진강과
낙동강이 나뉜다.백두대간의 마루금으로 차들이 지나는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길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기 위하여 길은 분명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이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라는 것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두대간을 다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도로 곁에 조그만 보행로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단 한 사람이 백두대간을 간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배려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백두대간은 이 땅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랑이고 긍지이고 정신이기 때문이다. ▼
오늘 대간산행의 최종 날머리인 주촌리이다. 다음 산행은 주촌리를 이어 수정봉으로 향해야 한다.
뒷풀이 때 한 잔 마신 술때문에 얼굴이며 스타일이 별로다. 할 수 없이 흑백 처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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