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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사진첩/늦은목이~백두산

피재~푯대봉~덕항산~환선봉~자암재~황장산~댓재

 

 토요일 아침, 오늘 산행일정은 낮 산행이 아니고 야간 무박산행이라서 모처럼 늦잠을

잘 요량으로 7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계속 누워있었다. 그런데 TV를 보던 집사람이

황급히 깨는 바람에 눈을 떴었다.

 

 그리고는 눈 앞에 나타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한 동안 넋을 잃고 말았

다. 어떻게 이런 일이....낮시간 내내 속속 들어오는 뉴스 속보에 나의 눈과 귀는 시종

떠날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예정된 백두대간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밤 10시 30분 경 침울한 마음으로

베낭을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섰다.

 

 

산행 일시 : 2009. 5. 23~24(토요 무박)

산행 코스 : 피재=>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환선봉=>자암재=>큰재=>

                    황장산=>댓재

산행 시간 : 약 8시간 30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새벽 2시 30분, 오늘 산행 들머리인 피재(삼수령)에 도착했다.바로 한달전에

이곳 피재에 도착했을 때에는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몹시 추운 날

씨였었다.

 

강원도 산간 날씨가 그러하듯이 오늘 날씨도 쌀쌀하기는 했었지만 그때에 비

하면 무척 양호한 날씨였다. 교통표지판의 왼편으로는 지난 달에 다녀왔던 천의

봉(매봉산)방향이고, 오늘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오른편인 덕항산 방향이다. ▼

 

 

삼수령은 한강,낙동강,오십천 등 삼강(三江)의 발원지이다. 고갯마루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을 이루어 황해로 들어가고, 동쪽으로 흐르면 삼척의

젖줄 오십천을 이루어 동해로 들어가고,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을 이루어 남해로

흐른다.

 

그러니 삼수령은 이 세 강의 발원지이며 분수령(分水嶺)인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장비를 점검한 다음, 산행태세를 갖추고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포장도로 길을 10여분 거닐다가 본격적으로 백두대간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새목이재(鳥項, 850m)를 지나 건의령(한의령)에 도착했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이 삼척 육백산 기슭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의 일이다.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

다고 맹서하면서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으며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

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는 의미로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태백의 깊고 장대한 산줄기에 남아 있는 두문동이나 건의령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

이 걷는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푯대봉 삼거리이다. ▼

 

 

해발 1009미터의 푯대봉이다. 엄격히 말하면 푯대봉은 대간 길에서 약간 비껴

있지만 불과 100미터의 거리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듯 사위가 약간 어둡다.▼

 

 

푯대봉을 지나 구부시령으로 향했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기이한 나무를 발견했다.

마치 맹독을 가진 코브라의 형체를 닮은 듯 했다. ▼

 

 

 구부시령은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

으면 죽고 또 죽고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

 

 

구부시령(九夫侍嶺)을 지나니 덕항산(德項山, 1072.5m)이었다. 원래 이름은

'덕메기(산)'이었다고 한다. "저 너머에 화전하기 좋은 더기(고원)가 있는 뫼"

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것이 '덕목이'로 변하고 덕항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름이다.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덕항산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

 

 

백두대간 덕항산의 정상 표지석이다. ▼

 

 

덕항산 정상에 있는 길라잡이의 모습이다. ▼

 

 

피재에서 이곳 덕항산 까지는 7시간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우리는 4시간 여만에

도착했다. 참으로 대단한 준족들이다. 앞으로 가야 할 황장산까지는 4시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얼마만에 주파할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스럽기만 하다. ▼

 

 

덕항산을 지나 해발 1080미터의 환선봉(지각산)에 도착했다. 바로 환선봉

아래에는 그 유명한 환선굴이 있다.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 고을인 삼척지역

에서 발견된 동굴은 모두 54개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덕항산 동쪽 기슭의 대이리 동굴 중 가장 빼어난 미학을 자랑하는 관

음굴..삼척을 동굴의 왕국으로 등극하하게 하는데 역할을 한 환선굴은 가장

규모가 크다. ▼

 

 

환선봉을 지각산이라고도 부른다. 환선굴까지의 거리는 3.3킬로미터이다. ▼

 

 

환선봉(幻仙峰, 1081m)을 지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일기예보에는

강원도는 물론이고 전국 어디에도 비소식이 없었다.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급히

배낭 덮개를 찾았지만 어디에서 빠졌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레인코트로 베낭을 감싸고 몸은 내리는 비에 그냥 젖기로 했다. 아무래도

하늘마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 한 모양이다. 추적추적 서글피 내리는 비

에 나도 젖고 자암재도 젖었었다.▼

 

 

하염 없이 내리는 빗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자암재에서 한 참을 지나니 고냉지

채소밭에 이르렀다. 옛날 화전민들의 삶이 그랬듯이 지금 역시 해발 1000고지가 넘

는 이곳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나는 너무나 편한 삶

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고지대 비탈길이라서 차마 밭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채소밭은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만큼이나 오늘따라 운무가 가득하여 어둡게 보이고 있었다.▼

 

 

민들레 홀씨되어...고냉지 채소밭만이 아니었다. 해발 1000고지에는 나물을 담아

팔기위해 저렇게 민들레도 재배하고 있었다. ▼

 

 

큰재에 들어서니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숲속의 나무와 풀들이 이미

빗물을 머금고 있었기에 등산 컨디션은 별로 좋지가 않았었다. 아직도 황장산

까지는 4.4킬로미터가 남았다.▼

 

 

비에 젖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에 젖은 육신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젖은

상태로 계속 걸음을 걷다보니 기능성 등산팬티도 어쩔 수 없었던지 사타구니 주변이 

몹시 쓰라렸다.

 

큰재를 출발한지 한 시간 여만에 황장산에 도달했다.▼

 

 

이제 오늘 산행 날머리인 댓재까지는 불과 0.6킬로미터만 남겨두었다. ▼

 

 

드디어 댓재에 도착했다. 10여시간은 족히 소요되리라는 예측을 무색하게 하고

우리는 8시간 30분만에 산행을 마쳤다. ▼

 

 

댓재 휴게소에 있는 동물형상의 기이한 바위의 모습이다. ▼

 

 

다음 달에 진행하게 될 두타산 등산로 입구 표지판이다. ▼

 

 

댓재 표지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