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미처 예측 못했던 재앙이 바뀌어서 복이 된다는 뜻이다.
그랬을까? 이번 무박대간 길을 떠나기 전에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청의 일기
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랬었다.
나의 간절한 바램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혀 예측치 못한 추위와 눈이 나를 기다
리고 있을지는 꿈에도 상상못했다.
밤 11시에 안양을 출발한 버스가 목적지인 피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두시경이었다.
창밖의 날씨가 궁금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으나 강풍을 동반한 눈발이 휘몰아치
고 있었다. 체감온도가 족히 영하 15도는 됐으리라.
때문에 우린 밖에 나갈 엄두도 못내고 버스 안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산행준비를 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던 나는 당황스
럽지 않을 수 없었다.
등산복은 당연히 여름복장이었고 아이젠이나 스펫치는 잘 손질해서 집안 어느 구석엔가
보관해 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왔는데 산행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
은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말이 있듯이 겨울용 자켓대신 방풍과 방수가
뛰어나는 레인코트를 착용하고 산 길에 나섰다.
산행 일시 : 2009. 4. 25~26(토요 무박)
산행 코스 : 피재~매봉산~비단봉~금대봉~은대봉~함백산~수리봉~화방재
산행 시간 : 약 9시간
안내 산악회 : 안양 산죽회
오늘 산행 구간은 산불강조기간을 맞아 통제구간이라서 형편상 화방재에서 출발하는
북진형태가 아니고 피재(삼수령)에서 출발하여 화방재로 향하는 남진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삼수령(피재)표지판의 모습이다.▼
삼수령의 표지석이다. 이 표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이 고개의
이름은 큰 피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길은 태백시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3대강이 발원하고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상징하는 삼수령(三水領)
이기도 하다.
태백에서 분출하는 낙동강은 남으로 흘러 영남곡창의 질펀한 풍요를 접지하고 공업
입국의 공도(工都)들을 자리잡게 했다. 한강 역시 동북서로 물길을 만들면서 한민족
의 수부(首府)를 일깨우고 부국의 기틀인 경인지역을 일으켜 새웠다.
오십천도 동으로 흘러 동해안시대를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의미는 삼강의
발원인 태백을 찾는 사람에게 삼수령의 상쾌한 휴식을 삼가 권하며 이 비를 세운다.
- 1992.09. 25 태백시장
풍력발전소 단지 ▼
삼수령에서 신작로를 타고 10분쯤 걸었을까, 이제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
해발 1308미터의 매봉산 정상. 사실 매봉산은 백두대간길에서 약간 비껴나가
있으나 불과 몇 분 거리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여기에서 매
봉산의 유래를 살펴보자.
옛날 어느 땐가 강릉 일대에 해일이 일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만 앉을 수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수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봉우리의 이름이 매봉산이 된 것
이다.
매봉산의 원래 이름은 천의봉이라고 한다. '하늘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이는 하늘
에서 떨어진 빗물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흘러들도록 물줄기를 만들어 주는
산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두대간 상에 있는 매봉산은 또 하나의 산줄기를 흘려보낸다. 지리산에서부
터 매봉산까지 이어온 백두대간 산줄기와 달리 매봉산은 부산 몰운대까지 산줄기
를 흘려보낸다.
바로 낙동정맥이다. 지리산에서 매봉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산줄기와 매봉산에서
몰운대에 이르는 낙동정맥 산줄기 사이에 낙동강이 흐르고 영남지방이 자리하고 있다.
두 산줄기가 만들어 준 터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몸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강줄기와 산줄기를 품어 흐르게 하는 것은 하늘이라는 옛 사람들의 고백이 '천의봉'
이라는 이름으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매봉산 주변에는 풍력 발전단지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오늘도 그랬었다. 거센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
몰아치는 이곳은 백두대간길이면서도 제대로 된 등반로가 없다.
어느 싯점에서는 고랭지 채소밭의 한 가운데를 질러서 거닐어야 한다. 때문에
이 지점은 대간꾼들이 알바하기 쉬운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더구나 칠흑같은
어둠 속을 뚫고 지나야 하기 때문에 애로점이 많은 곳이다.
우리 일행도 예외없이 무려 1시간 30분여를 알바를 하고 말았다. 강추위를 피해
어서 이 지역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 그 길고도
지루한 시간을 아무런 의미없이 헛돌고 말았으니 실로 애통할 노릇이었다.
아래 사진은 매서운 칼바람이 일고 있는 풍력 발전기의 모습이다.▼
고냉지 채소밭을 거닐며....▼
1시간 30분 여의 알바 끝에 겨우 겨우 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날이 밝아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도 매봉산 정상석이 있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정상석 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웅장했다.▼
알바를 끝내고 1시간여 동안 달려오다 보니 어느 듯 해발 1281미터의 비단봉
정상이었다.아직 어두워서 주변의 절경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이곳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곳이어서 "비단봉"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산길은 계속되었다. 추위에 지치고 지루한 산길이었지만 간간이 만나는
길라잡이가 있어 조금은 덜 외로웠다.▼
금대봉과 은대봉,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때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세울때 조성된 금탑. 은탑으로부터 금대봉. 은대봉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
다. 사진은 해발 1418미터의 금대봉 정상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야생화 군락지인 금대봉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인 동시에 식물유전
자 보호구역이다.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가 서식하고, 꼬리치레 도룡뇽의 집단 서식
지도 있는 곳이다. 또한 모데미풀, 한계령풀, 대성쓴풀, 가시오갈피 등 희귀식물도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강풍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길은 힘들고 지루했지만 4월의 마지막 주에
내린 눈으로 인해 우리는 힘든 만큼 멋진 백설산행을 할 수 있었다. ▼
금대봉에서...▼
지친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때 아닌 눈이 내린 산길은 마냥 행복했었다.▼
해발 1268미터의 백두대간 두문동재(싸리재),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대간길도
정상적인 루트는 화방재가 들머리였었으나 산불감시 통제소인 이곳 싸리재의 통
과시간을 이른 새벽으로 하여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볼까 하는 생각에서 피재를
들머리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측치 못한 1시간 30분여의 알바 덕에 이곳 통과시간이 그만큼 늦어져
결과적으로는 화방재를 들머리로 하는 것이나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
렇게 폭설이 내린 산에서 산불이 발생할 확률은 제로였지만 그래도 통제소에는
감시원이 나와 있었다.
통 사정을 해봤지만 되돌아오는 말은 똑 같았다. 그냥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정말 딱하고
분한 노릇이었다. 어떻게 온 길인데 다시 되돌아가라니...ㅠ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북녘 땅 개풍군의 지명이라고 한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개풍군지'는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
신 48인이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이들을 출사 시키려고 회유하던 조선의 태조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
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이곳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그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
는 현대인들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생명을 버리면서 까지 자신의 신
념과 믿음과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고귀한 정신이 살아 있는 땅이다.
'백두대간 두문동재'라는 표지석이 충절의 땅 두문동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긴급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결론은 감시초소의
눈초리를 피해 입산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등반로를 이탈하여 어렵게 어렵
게 대간길을 찾아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
두문동재에서 은대봉으로 향하는 길목 주변에는 고사목들이 많았다. 저마다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구하는 듯 원망하는 듯 절규하는 듯했다. 두문동에서 죽은 이들의
넋이었을까. 참으로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땅이다.
드디어 해발 1442미터의 은대봉 정상에 올랐다. 낙동강의 첫 물방울은 바로 은대
봉의 너덜샘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즉, 은대봉의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샘이다.
또한 은대봉의 은대샘에서 태백시 화전동 쪽으로 흘러내리는 황지천이 있는데 너덜
샘은 황지보다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샘이 아닌 발원지로 부르고 있다. 황지의 옛 이름은
'하늘 못'인 '천황'(天潢)이었으며 따라서 하늘의 연못으로부터 낙동강이 흐른 것이다.▼
오늘의 고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눈에 희미해 진 길라잡이가 외롭게 버티고
서 있었다. ▼
대간 길은 계속되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고 눈이 쌓여 쉬는 것도 마땅찮아
쉼 없이 계속 거닐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듯 함백산 근처에 다다른 듯 싶었다.▼
함백산 정상 가까이 주목 앞에서....▼
늘 후미에서 유유자적하며 주변 절경을 즐기는 멤버들....▼
드디어 해발 1573미터의 함백산 정상이다. 함백산(咸白山)은 오대산(五臺山, 1563m),
설악산(雪嶽山,1708m), 태백산(太白山, 1567m) 등과 함께 태백산령에 속하는 고봉이다.
'함백'(咸白)은 '태백'(太白)과 마찬가지로 '크게 밝다'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함백산도 태백산과 같이 신령한 산이 틀림없을 것이다.▼
함백산 하산 길에서 만난 산뜻한 길라잡이 ▼
백두대간 등산로 clena- up 운동, 물론 이 운동도 좋지만 제발이지 백두대간
길을 열어놓자는 운동이 일었으면 좋겠다. 우리 민족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언제까지 붙들어 매고 있을 것인가? ▼
해발 1330미터의 만항재! 우리나라에서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만항재는 정선, 태백,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석탄을 나르던 고개였다. 야생화 탐방로에 이르렀다. ▼
모든 산꾼들은 야생화 천국을 이룬 이 산을 지나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분명 산길을 지나며 삶의 고단함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날아갈 듯 날씬하게 만들어진 만항재 표지석이 시대의 변천을 말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만항재가 위치하고 있는 재 넘어는 영월군 상동읍이다. ▼
만항재를 지나 수리봉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야생화, 꽃이 피어난 지 얼마
되지않아 하얀 눈이 내렸다. 그러나 질긴 새 생명은 쌓인 눈을 뚫고 저렇게 아름
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
해발 1214미터의 수리봉의 모습이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화방재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은 1시간 30분 여의
알바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너무 추워 쉬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 알바 덕택에 철 지난 백설산행의 묘미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은 지난 회 대간산행의 날머리였던 화방재의 모습이다.▼
'백두대간 사진첩 > 늦은목이~백두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봉령~함몰지~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0) | 2009.07.26 |
---|---|
댓재~두타산~청옥산~고적대~상월산~백봉령 (0) | 2009.06.29 |
피재~푯대봉~덕항산~환선봉~자암재~황장산~댓재 (0) | 2009.05.25 |
도래기재~구룡산~신선봉~깃대배기~태백산~화방재 (0) | 2009.03.19 |
늦은목~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0) | 2009.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