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문학세계/모락산 통신

전화의 진화








 (1)


  내 어릴 적, 시골동네에는 30 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 중 전화기를 보유하

고 있는 집은 딱 한 가구뿐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갖고 있는 그 집 아이가 그렇

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후, 사람들의 생활이 점점 윤택해지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전화기는 거의

모든 집에서 갖게 되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버젓이 전화기가 생겼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당시로서는 막연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요원할 것만 같았던 전화기에

관한 미래의 꿈을 꿔봤다.

 

 "모든 사람들이 휴대용 무선전화를 갖는 시대가 온다면 세상은 참 편리하겠다.“

는 막연한 꿈을 말이다. 그런데 그 막연했던 꿈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꿈은 예상

보다 훨씬 빨리 찾아 왔다.

 

  처음 카폰이 나오고 곧이어 소위 삐삐라고 불리어졌던 무선 호출기가 나오고

급기야는 아무 장소에서나 자유롭게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휴대폰 시대가 열

리고 만 것이다.

 

 

 (2)

 휴대폰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던 초창기에 나는 꿈에도 그리던 휴대폰을 하나

마련했다. 내 마음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내

휴대폰이 거리에서나 차 안에서나 어디에서건 쉼 없이 울리게 하고 싶었다.

 

  나만의 전화가 있다는 것은 집이나 사무실에서 쓰는 유선전화나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중전화와는 사뭇 다른 의미가 있었다. 삶의 여정 중에서 사

는 것이 유난히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 때는 어김없이 혼자였으며, 혼자였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휴대폰을 갖지 않고서는 안 될 이유였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

음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나의 휴대폰은 여기저기에서 그 장엄한 신호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신호음을

매개로 나는 많은 이들과 보다 넉넉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언젠가

서둘러서 지방에 갈 일이 있었다.

 

  미처 예비 배터리를 준비하지 못하고 서울을 떠났던 날, 이럴 때면 틀림없이

잘 못 걸려온 전화나 반갑잖은 전화가 많이 걸려오기 십상이다. 그 날도 그랬다.

나와 아무 관계도 없이 귀찮기만 하는 스팸 전화를 받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통화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배터리의 남은 용량을 알리는 눈금은 하나씩

하나씩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배터리의 용량이 다 되어,

이상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누군가의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는 생각에 내 마음은 더욱 더 다급해져만 갔다.

 

  휴대폰을 꺼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꺼져있는 동안에 누군가의 전화가 올지도 모르

기 때문에 마음을 조이며 단 얼마만이라도 버텨주기를 바랬었다. 마침내 나의 바

람은 이뤄질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날도 역시 기다리던 사람의 전화는 없었다.

 

  이렇듯 휴대폰은 기다렸으나 받지 못했던 전화들이 많았고, 원하지 않는 타인들

과의 소통을 거부할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고, 받기 싫었으나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던 전화들도 많았다.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전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전화는

끊겨져 버리고 말았다. 누구일까? 온갖 궁금증에 사로잡혔지만 발신번호를 남기지

않은 전화는 결국 내 기분을 송두리째 깔아 뭉개버리고 말았다.

 

 이제부턴 아예 휴대폰을 꺼놓기로 했다. 폰이 울릴 적마다 혹여 반가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 설레게 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어딜 가든지, 늘 조마조마

해 하며 사소한 기계 따위에 얽매어버리는 내 자신이 싫었다.

 

 이젠 휴대폰 벨소리가 지겹도록 싫다. 내 휴대폰은 더 이상 요란한 문명의 신호음을

울리지 않는다. 꺼져있지 않으면 언제나 진동상태이다. 휴대폰은 언제부턴가 내 스스로

쌓은 울타리 속에 나를 가두고 말았다.

 

 (3)

  그리고 그 후 몇 년이 지나휴대폰 보다 몇 단계 진화된 스마트폰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점령군처럼 세상을 접수해버리고 말았다지금은 바야흐로 스마트폰 

대이다. 스마트폰은 만능이다.

 

  이것은 인터넷은 물론이고 모든 전자기기를 대신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만 있으

면 부족함이 없다. 더 이상 무료하지도 않는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쳐다보고 있다. 재미있고 편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 폐해는 심각하다우선 가족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스마트 폰을 접하는 순간부터 가족 간의 대화는 끊겨버린다. 어디 그 뿐인가? 스마트

폰은 소음공해를 유발하고,


 이를 사용하면서 야외활동, 독서량 등이 현격히 줄어든다.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억력 감퇴를 초래한다.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보다는 한낱 기계 정도로 취급

버린.

 

  요즘 스몸비(Smombi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는 스마트폰(Smart phone)

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말한다. 물론 초

등학교 등하굣길도 예외 없이 스몸비가 넘쳐난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스쿨존을 걷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는 어린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주

지 말자는 켐페인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또래들로부터 소외된 아이가 될 것 같은 두려움과 괴롭힘의 대상

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주었는데 그 폐해가 너무 심각해서 지금

은 스마트폰을 사주지 말자는 켐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켐페인에 참여한 한 엄마는 딸의 생일 날 보낸 편지에서 스마트폰을 선물하는 순간

너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하였다고 한다. 무엇을 잃는다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삶속에서 단 한번뿐인 어린 시절 부모와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모든 문명의 창조물들이 그러하듯 스마트폰 역시 동전의 앞뒤처럼 양면성을 지녔다.

그것은 다양한 정보의 바다인 동시에, 쓰레기의 바다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범행

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범행을 예방해주고, 범인을 검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처음 유선전화기로 시작,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여기까지 온 만능의 스마트폰, 이 다음

은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만큼 두려울 뿐이다.


'나의 문학세계 > 모락산 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나무  (0) 2021.02.14
잠자는 내 영혼을 일깨워 준 글쓰기..  (0) 2015.08.30
이 나이가 어때서...  (0) 2015.08.30
행복에 관한 단상  (0) 2015.01.29
흑백 색깔논리에 대한 단상  (0) 2015.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