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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모락산 통신

잠자는 내 영혼을 일깨워 준 글쓰기..

 

 

 

 36년여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21월에 공로연수 길에 올랐으니 사실상

공직을 떠난 지도 벌써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사회 첫발을 내딛을 때만 하

여도 오직 공직생활밖엔 사회경험이라곤 조금도 없었던 내가 잘 적응해 낼 수 있

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까지는 통제라는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무엇인

가에 얽매이는 듯 하는 생활을 해왔던 터라 사회에 진출하면 적어도 그 점에 있어

서는 통제라는 굴레 대신 삶이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 또

한 사실이었다.

 

그랬었다. 이러한 두려움과 기대 속에 나의 퇴직 후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퇴직 후

의 삶이 보다 보람차고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굳이 정글의 법칙이니 적자생존

이니 하는 살벌한 문구 따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누가 뭐래도 긍정적인 사고로

잘 짜여 진 스케줄에 따라 알차게 생활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흔히들 지금 이전 시대를 “70세 시대라고 하며 지금부터의 시대를 “100세 시대

라고 부른다. 따라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오면 예전엔 길어야 10년 정도를 살았었지

만 이젠 무려 40년이나 더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100세 시대에 그 긴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만 아름답고도 알찬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은 넘쳐흐르는데 할 일은 없고 그렇다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의미 없이 살다가

허무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말 것인가? 이것이 바로 퇴직 후 삶의 40년 설계가 절대

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나는 재직시절부터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의 예상퍼즐을 준비해왔었는데 그 적중률은 상당히 높았다.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이들은 이미 취업이 된 상태였기에 우리 부부의 생활비

외에는 별도의 비용지출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이는 연금과 그간 안사람이 허리띠를

조여 가며 여축한 돈을 잘 활용하다보니 풍족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궁핍함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활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그간 바쁜 공직생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그러나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문예창작 활동이 그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늘 문학 소년을 꿈꾸어왔었기에 글쓰

기는 이미 단순한 취미의 차원을 넘어 그 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문학적 감수성은 나날이 닳아 없어졌고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던 내 자신이 이미 아버지의 세월을 뛰어넘어 할아버지가 되어있었으니

그 나이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올 법도 했다. 이럴 때 딱 어울

리는 말이 시쳇말로 이 나이가 어때서?”이다.

 

그렇다.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60세 초반일 뿐인 이 나이가 도대체 어떻다는 얘긴가?

어쭙잖게도 나는 재직 중에 이미 등단도 하였고 산문집도 출판한 경험을 지녔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글을 쓰도록 하자. 지난날의 슬픔과 고통을

꺼내 한편의 글을 자아내도록 하자.

 

이렇게 해서 퇴직 후 글쓰기는 시작됐다. 매주 금요일에는 경인교육대학교 문예창작교실

에서 소설가나 문학평론가 등 저명하신 분들을 초빙하여 문예창작에 관한 수업도 받고 월

간 문예지 국보문학에서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안양의 시

립도서관을 찾아 양서들을 골라 읽는다.

 

역시 좋은 책들은 마음만 청춘인 내게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

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말뿐이 아니고 실제로 나는 지금 주체하기 힘들만큼 행복하다.

은 책을 골라 읽고, 쓰고 싶은 글을 마음 편히 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 읽기 못지않게 글감이 필요했다. 그런데 글감은 자연을 만나

고 자연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그래서 스스로 자()와 그럴 연()이라는 두 글

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스스로 그러한 것"이 바로 자연(自然)인 것이다.

 

나는 매주 주말이면 산을 찾고 틈틈이 여행도 즐긴다. 산행과 여행은 젊을 적부터 변하지 않

은 나의 고질적 버릇이었다. 그 버릇이 오늘 날 내게 좋은 글감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곳에서의 아침 맞기를 좋아

한다.

 

가슴은 늘 뛰고 있으며 설렘이 충만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좋은 책들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

로 훌륭한 글감을 공급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제 퇴직 후 나의 글쓰기는 나 스스로도 거스를 수 없는 위치에 까지 와 있다. 앞으로도 꾸준

히 계속될 글쓰기를 통해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내 작은 글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들에 대하여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소외계층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부드러운 글이 되

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비록 글쓰기에 전념하고 그 글쓰기를 통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희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주며 우리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내 삶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10년 동안 접었었던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집사람과 함께였다.

일 매일 부부애를 과시하며 연습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며, 한 달에 한 차례정

도는 옛 동료들과 함께 천안상록CC에 라운딩을 다녀오곤 한다.

 

또한 취미생활로 주 2회 정도 통기타수업을 받고 있다. 이렇듯 바쁘다보니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훌쩍 지나가버린다. 시쳇말로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

다고 불평할 계제는 조금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내 영혼을 반짝거리게 해주

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마냥 이렇게 행복에 겨워있을 때에도 국가적으로 어려웠던 지난 시절 함께 일하

고 함께 뛰었던 동료 선.후배들의 부음을 자주 듣는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그때 그 시절의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이 가득한데 아무리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히 슬프

고 안타깝기만 하다.

 

또 한 가지, 요즘 들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세인들의 화두로 떠오른 공무원 연금개

혁에 관한 얘기다. 이해당사자의 한사람으로서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제

연금개혁에 대한 공감대만큼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서로서로 한발자국씩 양보하여 어서

빨리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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