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찌는 듯한 무더위가 예고돼 있었다. 여름 산은 무더위에 유난히 맥을 못추는 내겐
큰 고역이었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토록 무더운 여름날에도 산길을 걷게 만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인즉, 내가 산행을 해서는 안될 이유는 고작 두 어개에 불과했
고 산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셀수 없이 많았다. 그 이유를 이곳에서 일일이 밝힐 수는 없
지만 이것이 바로 나를 한 여름에도 산길을 걷게 만드는 이유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상경해서 그 남루한 시골 촌뜨기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보다 더 말끔
하고 강건하고 영민한 도회인의 삶을 배워나가겠다고 했던 적이 바로 엇그제 같은데 벌써
60줄의 나이에 접어들어 "귀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생무상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진부한 인생론일랑 이쯤에서 접어두고 산길에 충실하기로 하자, 오늘 걷는
산길은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지는 구간을 잠시 걷다가 소금강 계곡으로 하산하게 되어있
다. 4년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던 진고개에서 노인봉에 이르는 구간을 말이다.
산행 일시 : 2014. 7. 5(토)
산행 코스 : 진고개~ 노인봉~ 낙영폭포~ 만물상~ 백운대~ 금강상~ 소금강계곡
산행 시간 : 약 6시간
진고개였다. 중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의 들머리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산길에서 달맞이 꽃을 만납니다. 달맞이 꽃은 꽃말 그대로 말 없는 사랑입니다,
오랜 기다림입니다. 산길에서 맞는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부십니다.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란 달맞이 꽃이 애잔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달맞이꽃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사
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달맞이꽃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까이 들여다 보자
함초롬히 핀 달맞이꽃은 내 가슴에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
노인봉(老人峰, 1338m)에 올랐다. 노인봉은 대간길에서 조금벗어나 있다. 노인봉은
오대산국립공원의 권역에 속해 있다.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유명한 소금강계곡을 산자락에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 화강암 봉우리가 솟아 있어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백발노인처럼 보
여 노인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정면으로 보이는 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길이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노인봉 대피소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려는 순간,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세운 육중한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였다.
"백두대간을 보전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곳은 오대산 국립공원의 출입금지 지역
입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핵심 생태축으로서 사람의 간섭에 예민한 야생 동식물의 보고이
자 마지막 서식처입니다. 이곳만은 자연에 양보합시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 과연 국토 사랑의 올바른 방법일까요? 이곳만은 자연에게 양보합시다."
조금 전 매봉에서 본 출입금지 안내판 보다는 한결 표현이 점잖아 보였지만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백두대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인 것처럼 써놓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씁쓸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자연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일텐데도
말이다.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는 사람들치고 출입금지지역을 만들어 놓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
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백두대간 마루금 종주기 중에서
드디어 소금강 계곡에 접어들었다. 소금강 계곡은 이십오리가 넘는 구절양장에 폭포와 소,
암반이 절경을 이루며 동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소금강계곡은 짙은 숲속을 흐르는 맑
은 계류와 불쏙불쏙 솟은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오대산 줄기인 황병산을 주봉으로 우측은
노인봉, 좌측은 매봉이 자리하며 마치 학이 날개를 편듯한 형국이라 해서 청학산이라고도
불린다.▼
소금강은 율곡 이이(李珥,1536~1584)와 인연이 깊다. 선조2년(1569년)율곡은
외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관직을 그만두고 강릉에 와서 1년간 머물때 오대산 일원
을 둘러보고 "유청학산기"를 남겼다.
소금강이란 이름도 당시에 율곡이 지은 것인데 소금강의 금강사 앞 영춘대엔 율
곡이 직접 썼다는 小金剛이란 글씨가 새겨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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