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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 사진첩/영남권 산행

금정산

 

 

지난 십 수년 동안 쉼 없이 거침없이 걸어왔던 산길은 전혀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아 잠시  그 발길을 멈춰야 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세속을 아주 떠날 수는 없는 일.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아니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번 하계휴가를 포기한다해도 전혀 섭섭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어르신께서 여름 휴가를 떠나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 분의 일정에 맞춰 휴가를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마음에 품고 있었던

부산의 금정산행을 오르기로 결심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였다. 이 얼마만에 떠나는 산행인가?

지난 6월 말경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하고 그로부터 약 1개월 여만에 찾는

지방산행이니 당연히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난생 처음 걸어

보는 금정산의 산길이었으니 말이다.

 

   

산행 일시 : 2010. 7. 29(목)

산행  코스 : 양산(외송 정류소)~금륜사~장군봉~고당봉~북문.동문.남문~철학로(백양산)

산행 시간 : 약 8시간

 

 

오후 2시 56분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광명 고속전철역으로 왔다. 혹시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바람에 무려 50 여분이나 미리 도착했었다. ▼ 

 

 

 

김해에 거주하는 큰 누나댁에서 1박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양산으로 향했다. 어차피 산행은

종주산행이 의미가 크는 법이니 말이다. 양산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외송 정류소까지

와서 물어 물어 산행 들머리를 찾았다. ▼

 

 

금륜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산길은 무성한 잡초로 우거져 있었다. 별로 걷고 싶지않은

길이었다. 산길에는 날파리들이 윙윙거리며 달려들고 있었고,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탓에 독사의

습격에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아마 등산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길인듯 했다. ▼

 

 

오늘은 안개비가 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벌써 온 몸은 땀으로 젖어들었고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도 등산객이라고는 찾아볼수가 없는 외로운 산길이었다. 산행 시작 1시간

여만에 금륜사에 이르렀다. ▼

 

 

사찰을 살펴볼까도 싶었지만 인적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로 하였다. 말이 사찰이지 무당집같은

분위기였다. ▼

 

 

금정산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길이었다.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이 보이질 않았다. ▼

 

 

약 두어시간의 사투끝에 산 정상 언저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거리상으로는 금륜사에서

불과 500m 올라 온 셈이다. ▼

 

 

산길은 안개가 짙게 깔려 불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제대로 된 길라잡이도 

없었다. 혹시 장군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느 바위 봉우리를 한 컷 땡겨보았다. ▼

 

 

능선길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한 참을 가다보니 제법 훌륭한 철제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길라잡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외롭고 힘든 산길 가장자리에는 황홀스런 원추리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원추리 꽃을 바라보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새로운 용기가 생겨났다. ▼

 

 

해발 778m의 창덕봉이었다. 그 밑에 있는 바위 조각에는 "거북이 처럼..."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거북이 처럼 쉬지않고 뚜벅 뚜벅 걸어서 이곳 창덕봉에 이르렀다는 뜻일 게다.▼

 

 

해발 734.5m의 장군봉이었다. 그러고 보니 창덕봉에 앞서 처음 맞이했던 암봉은 장군봉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발 700 여 미터의 산이 이렇게 힘들지는 정말 몰랐다. 아무리 습도가

많은 무더운 날씨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산행기억을 더듬어 봐도 고작 700여 미터의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힘들어 했던 기억은 별로 없었다.

 

무슨 이유일까? 정답은 이러할 듯 싶었다. 우선 한여름의 날씨 탓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두번째는 만 한달만에 산다운 산을 오른 탓일 게고, 마지막 세번째는 이곳은 다름아닌

바다를 끼고 있는 어찌보면 섬 산행과도 같은 곳으로 어느 육지산행과는 그 성격이 판이한

높이를 지닌 산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육지의 산은 해발과 표고의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평창의 계방산은

산의 높이는 무려 1577m이나 산행들머리인 운두령은 1089m로 해발과 표고의 차이가 불과

400 여 m에  불과하다. 하지만 섬에 위치한 산의 경우는 해발의 높이와 표고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그만큼 힘든 것이다. ▼

 

 

장군봉을 지나면서 길을 잃었다. 소위 알바를 한 셈이다. 길이 여러군데 있었지만 이정표가 없어서

누구라도 초행길이면 알바를 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더구나 불과 지척도 구별할 수 없는 운무짙은

산길이었으니 말이다. 무려 20여분을 헤매 돌았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듯 돌고 돌았다. 한 참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조금 전에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고 또 다른 길을 찾아 걸어봐도 그 길이 그 길

이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사람이라고는 단 한사람도 만날 수 없었으니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길을 잃으면 오늘 산행을 포기할 심산으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반가운 이정표가

나타났다. 휴우~! 이제 살았다. ▼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오랜 세월 굳세게 버티고 있는 노송을 보았다. 나도 저 소나무처럼 굳건했으면

좋겠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했으면 좋겠다.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으로는 강한 힘을 유지

했으면 좋겠다. ▼

 

 

산길 가장자리에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많이 봤던 글귀였다. 반가웠다. 다정스러웠다. 그 반가움에 그 다정스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

 

 

 

 

장군봉을 떠나와 한 참을 걷다보니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은 1.1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곳부터는

행정구역이 부산광역시인듯 제법 길라잡이도 잘 갖춰져 있었다. ▼

 

 

이제 금정산 정상은 700m를 남겨두고 있었다.▼

 

 

금정산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서 딱 한사람의 등반객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웠다. 그 분께서

이곳 금정산에는 특이한 소나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금송이라고 한다. 이 금송은 그 잎이 정확히

다섯개의 잎으로 돼있다고 한다. 아래 소나무가 바로 금송이다. ▼

 

 

고당봉은 금샘과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목재계단을 타고 오르면 바로 고당봉이다. ▼

 

 

 드디어 해발 801m의 고당봉이었다. 이곳이 바로 금정산의 주봉인 것이다. 고당봉은 정상 부분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늘에서 천신인 고모 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는 바, 이는 고대의 신선사상에 기초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정상 부근에는 고모당이라는 기도처가 있다.

 

금정산 10여봉 중 최고봉이며 그 가슴께에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이 있고 남쪽의 산허리 쯤에는

고담샘이 있다.▼

 

 

고당봉에서 조금 전에 만난 그 분께 부탁해서 증명사진을 촬영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촬영한 인물사진인 셈이다. ▼

 

 

고당봉을 내려서 이제 북문으로 향해야 하였다.▼

 

 

 이곳 금정산장에 들러 금정산 생막걸리와 생두부를 시켜 먹었다. 물론 큰 누나가 정성드려 싸 준

찰밥도 함께 먹었다. ▼

 

 

" 금정산아 너는 무등산의 영원한 벗이어라!"  동서화합을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땅의 그 잘난 정치인들 덕에 너무도 골이 깊은 영호남의 화합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에서 저 글귀를 남겼을 것이다. ▼

 

 

이제 산길은 평탄했다. 산 길이라기 보다는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29)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17km, 높이는 1.5~3m이고, 면적은 약 8.2km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이다.

 

처음에 산성을 쌓은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에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아래 사진은 북문이다. ▼

 

 

금정산성 북문에 대한 안내판이다. ▼

 

 

아래 사진은 산성의 모습이다. ▼

 

 

산성을 따라 한 참을 걷다보면 해발 640m의 의상봉을 만난다. ▼ 

 

 

 

 

제4망루의 표지판이다.

 

 

망루란 아마도 경계근무(망을 보는 일)를 하는 장소를 말하는 듯 싶다. 요즘 말로는 초소일듯 싶었다.

 

 

아래 사진은 부채봉의 모습이다. 심한 운무탓에 잘 보이지가 않는다.

 

 

 

 

금정산성 동문의 안내판이다.

 

 

금정산성 동문의 모습이다. ▼

 

 

이제 발길은 남문으로 향해야 한다.

 

 

비가 오락 가락해서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다리도 아프고 한마디로 심신이 고달펐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하산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언제 다시 찾아 올지도 모르는 이 길을

더 걷기로 하였다.

 

 

금정산성 남문의 안내판이다.

 

 

금정산성 남문의 모습이다. ▼

 

 

 남문에서 바로 하산하면 금강공원에 이른다. 그런데 자꾸자꾸 미련을 갖고 걷다보니

백양산 철학로가 지척이었다. 철학로~! 문득 고풍스러운 옛 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낭만주의의 중심지 하이델베르그의 철학로가 생각났다. 헤겔, 야스퍼스, 괴테 등 언제

들어도 낯설지 않은 세계적인 유수의 철학자들이 바로 이 길을 걸으면서 심오한 철학적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부산 백양산의 철학로는 ?

 

 

이곳이 낙동정맥의 한 구간이라는 안내판이다.

 

 

철학로로 향하는 길이다. 한 여름의 폭염을 뚫고 무려 8시간을 걸어왔다.

더 이상 다리가 아파 진행할 수가 없었다. 땀에 싯겨 사타구니가 쓰려

왔다. 오늘 산행은 여기에서 그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

 

 

하산 길에 내려다 본 부산 시가지의 모습이다. 오늘 산행내내 짙은 운무에 휩싸여

불과 몇 미터 앞도 내다볼 수 없었는데 막상 하산하려하니 날씨가 게이는 듯 했다.

야속했다. 날씨가 원망스러웠다. 모처럼 큰 마음 먹고 시도해 본 산행이었는데....

산길을 걸으면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부산 앞 바다도 그리고 싱그러움을 안고 출렁이는

파도의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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