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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 사진첩/수도권 산행

부용산~형제봉~청계산

 

눈만 뜨면 엄마의 젖 무덤에서 젖 꼭지를 찾는 아이처럼, 휴일이 가까워지면 거의 본능적으로

산악서적을 뒤지고 인터넷 검색에 골몰하기를 십 수년..내게 있어서 휴일에 산행 나들이는

이제 자연스럽게 통과의례가 돼버렸다. 하지만, 원칙이 있으면 언제나 예외 또한 존재하는

법, 어제는 모처럼 모든 산행스케줄을 접고 아이들과 함께 선영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왔다. 

 

교통체증으로 답답했지만 막상 다녀오니 이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었다. 그 덕에 어머니의 품처

럼 마냥 포근하기만 한 고향  땅의 기운을 얻어 오늘 이렇게 힘차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산행 일시 : 2009. 9. 13(일)

산행 코스 : 양수역~부용산~형제봉~청계산~형제봉~국수역

산행 시간 : 약 5시간

함께 한 사람 : 내가 좋아하는 건장한 사람들

 

사당사거리에서 아침 7시 30분경에 출발한 승합차는 부용산 산행 들머리인 용담2리에

우리를 하차시켜 주고 국수역으로 향하였다. ▼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길라잡이를 따라 부용산 입구로 걸었다. ▼

 

 

안개가 몹시 짙은 어두운 날씨 탓이었을까? 길가에는 노란 달맞이 꽃이 미처 꽃입을 다물지 못하고

활짝 채로 우리를 반겨주는 듯 했다. ▼

 

 

양평의 국수리까지 전철이 개통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종전의 교외선은 철목이 철거되고 자갈만이

남겨진 채 이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

 

 

샘터가 있는 등산 안내도 앞에서 멈춰섰다. 안내도에는 이곳에서 부용산은 무려 2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표시돼 있었다. 일행들의 산행수준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무리인듯 싶어서 부용산 정상까지

불과 40분정도 소요되는 신원리(샘골)로 방향을 틀어야 했었다. 급히 차를 수배해서 다시 오라고 연락을

취했다.▼

 

 

다시 걸어왔던 길로 원위치하여 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

 

 

차를 타고 20여분 후에 다시 부용산 들머리인 신원1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양평시내 입구에 있는 곳이다. ▼

 

 

부용산은 아직 등반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등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

 

 

신원1리 묘골이다. 묘하고 화려하게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묘골(묘곡)이라고 한다. ▼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터이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몽양 여운형 선생, 그의 `分則倒合必立'(분즉도합필립-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은 유명한 친필유목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좌파라고 하지만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중도실용’과 ‘화합과 통합"의 정신은 생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이 목숨을

걸고 추구했던 가치가 아닐까 싶다. ▼

 

 

신원2리 풀무골이다. 풀무질하여 쇠를 담그는 대장간이 있었다 하여 풀무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누군가가 묘지정리를 하면서  길을 닦아놓은 바람에 그 길을 타고 올라가다가 알바를 하고 말았다.

짙은 안개 속이라 시계거리가 짧아 애를 태우다가 겨우 겨우 등로를 찾을 수 있었다. 30여분의 알바

끝에 등로를 찾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

 

 

신원리 샘골마을이다. 맑은 샘물이 샘솟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정상적인 산행을 하였다면 부용산을 먼저 들러서 이곳으로 와야 하는데 우린 알바 덕에 이곳에서 부용산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

 

 

부인당 정상이다. 부인당(婦人當)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고려시대에 어느 왕비가

시집 간 첫날밤에 왕 앞에서 방귀를 뀌자, 왕이 크게 노해 왕비를 이곳으로 귀양보냈다고 한다.

쫓겨난 왕비는 이미 아들을 잉태한 몸이었고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왕자를 낳았다.

 

총명한 왕자는 어른이 된 후 어미의 사정을 알고 도성으로 올라 가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

먹을 수 있는 오이씨를 사라"면서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이 소년을 부르자 소년은

 " 이 오이씨는 밤 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않아야 아침에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은 잘못을깨닫고 왕비를 불렀다. 하지만 왕비는 궁궐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다가 죽었고

그 무덤을 부인당이라 부르고 있다. 부용산 정상에는 무덤들이 많다. 그러나 어느 무덤이 전설 속

왕비의 무덤인지는 알 길이 없다.

 

 

높이 365.9m의 부용산 정상이다. 근처에 오늘 오르게 될 청계산과 형제봉이 있다.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같다고 하여

부용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 탓에 두물머리는 고사하고 불과 몇미터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

 

 

정상부근에서 간단히 목을 추스리고 다시 형제봉을 향하여 걸었다.

임도가 나타났다. 부용산에서 청계산으로 하는 길은 임도를 따라 한 참을 걸어야 한다. ▼

 

 

드디어 해발 507미터의 형제봉에 올랐다. 부용산에서 출발한지 딱 한 시간만에

형제봉에 온 것이다. 이곳으로 오는 코스는 급경사가 계속되는 난코스였다.

제법 힘이 드는 산길이었다. 일행에서 이탈하여 올라오는 시간 내내 깊은 사색에

잠겨 나 홀로 걸어오다싶이 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뚝 뚝, 땀방울이 떨어졌다.

과연 떨어지는 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

 

 

형제봉 정상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소나무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막걸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

 

 

역시 정상에 있는 길라잡이이다. 우린 청계산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 ▼

 

 

해발 658m의 청계산 정상이다. 양평군 서쪽에 위치한 양서면과 서종면 경계에

솟은 청계산은 한강을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가르는 용문산 산줄기 끝자락에 솟

구친 산이다. 정상에 서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발아래 펼쳐지고 두물머리인 양수

리 일대가 잡힐듯 내려다 보인다고 하지만 오늘은 여엉 아니다. ▼

 

 

오늘이라고 특별히 정상에 올라온 느낌이 별다른 것일 수는 없었지만 여럿이서

함께 한 산행이었고, 다소 힘든 산행이었던 만큼 뿌듯한 성취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

 

 

우린 다시 형제봉을 거쳐 국수역 방향으로 가야 한다. ▼

 

 

국수역까지는 4,590m를 남겨두고 있었다. ▼

 

 

오늘 산행 날머리이다. 넓다란 주차장이 있어 좋다. ▼

 

 

이곳에는 하산하는 산객들을 위하여 간이 음식점도 있었다. ▼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가볍게 부는 바람에도 가냘픈 허리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

 

 

국수역의 모습이다. 양평에도 이제 전철시대가 열림에 따라 주변의 명산들을 찾아

산행객들이 부쩍 늘어날 태세이다. ▼

 

 

국수역 앞에 있는 양평의 마을들이 보인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일요일 오후라서 아무래도 귀경차량으로 정체가 예상됐다. 우린 서둘러서

뒷풀이 장소인 팔당호 주변의 "옛골 장작구이" 집으로 이동했다. ▼

 

 

예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음식점의 경관이 좋았다. ▼

 

 

 

해질 무렵의 한강의 모습이다. 귀경길에 올림픽도로의 차 안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강변의 고층 아파트들이 파리 근교의 라데팡스를 방불게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