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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산행(여행)기 모음

선운산, 산에 취해 복분자에 취해...

 

 

 이 나이에도 여행길에 오르는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기만 했다. 하물며 가고싶은 산을 찾아

나서는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오늘은 산사랑회의 정기산행으로 선운산을 찾는 날이다. 과연

매머드급 동호회답게 전국적으로 100여명의 많은 회원들이 이곳 선운산에 운집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475 유사이래,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곳에 모인 행사도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산행 게시판을 통해 어줍잖은 글이나마 자주 올렸던 탓일까? 아니면 기억

하기 쉬운 아이디 덕을 톡톡히 봤었을까? 크린88이 누구냐며 반겨주신 회원님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해발 336미터의 선운산!! 산의 높이가 말해주듯 밋밋한 야산에 불과했지만 호남의
내금강답

게 산으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다. 지난 한 주일동안 속세에서 취한 술과 허영과 자

만을 땀과 함께 토해내면서 가볍게 수리봉을 통과한다.

 간밤에 내린 빗물이 계곡수가 되어 제법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시원한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조태

일 시인의 '산에서' 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잠시 이 시를 통해 무너져 가는 내 젊음에 대한

아쉬움을 다독거려본다.

나는 늘 홀로였다./싸움은 많았지만 승리는 늘 남의 것이고
남는 패배는 늘 내 것이었다./배낭을 벗어 바위 곁에 놓고 신발을 벗는다.
양말을 벗는다. /좔좔 흐르는 물에 죄 많은 손발을 씻어내자./시리도록, 시리도록 씻어내자.

 가볍게 중식을 마치고 낙조대를 오른다. 빨간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는 낙조대, 그러나 오늘은 연무가 뿌옇게 끼어 맑은 날의 조망은 끝내줬을 것이라는 상상만

하여보고 아쉬움을 접어야 했다.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직 절벽의 천마봉을 올라본다. 사람이 일일이 도구를 이용하여 다듬어

놓은 듯이 가지런한 직벽은 한 폭의 벽화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하산 길이다.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이어지는 길다란 길은  그야말로 피안의 길이었다. 산사의 그윽한 독경소리와 연초록 빛 새생명들의

아우성소리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장사송, 여덟 개의 큰 가지가
8도의 화합을 호소하는 듯 했고 겨울 꽃인지

봄꽃인지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선운사 뒤 언덕의 곱게 물든 동백을 바라보며 미당 서정주 님의

시 한편을 음미해 본다.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오늘은 하얀 눈이 내리고 꽃비가 내렸다. 흐드러지게
널려있는 벚꽃들의 향연에 내 마음을 맡기고

수만 마디의 하고싶은 말들을 참는다. 이 고장의 전통음식인 풍천 장어와 복분자 술이 생각나서

식당을 찾았다. 후한 인심으로 소문난 호남지역의 업소들도 일단 관광지로 탈바꿈되고 나서는 더 이

상 헛소문에 불과했었다.

 신체의 어딘가에 좋다는 복분자술을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귀경길 내내 마시고 또 마셨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기에 복분자의 성능테스트는 일단 미해결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200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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