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자, 산을 타는 사람이다. 보다 높이 오르기 위하여 나는 더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평범한 산꾼 중의 하나일 뿐인 내가 감히 프리드리히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의 심오한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만, 아마도 산 앞에서는 누구나 늘 겸손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갖추어
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랬었다. 오늘 산행은 청년시절에 그저 야유회의 개념으로 가볍게 소요산을 찾았다가 두어
봉우리만 오르고 쉽게 돌아 온 기억하나만 믿고 경솔하게도 ' 소요산쯤이야........' 하며
산을 올랐다가 혼 줄이 난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소요산, 당대에 특출한 글쟁이었던 서화담과 양봉래, 그리고 매월당 등이 이곳에서 자주로
소요(逍遙:산책) 하였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과연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집을 나설 때만해도 한 두 방울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던
굵은 빗줄기가 되어 일행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한 참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동두천의 시가지가 나타난다.
시가지 곳곳에는 얼마 전, 미군에 의해 비명에 간 여중생들의 참사를 애도하는 글귀들이
눈에 띄어서 일행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다행히도 소요산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는
비가 멈춰졌다.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일주문이
깨우쳤다는 자재암과 시원한 물줄기를 연신 쏟아내는 원효폭포와 옥류폭포가 우리를 반
긴다.
자재암에서 하백운대로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다. 햇볕은 없었지만 후
덥지근한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서 순식간에 온몸은 땀 투성이가 되고 만다. 흘려도, 흘려
도 끝이 없는 땀, 여름산행이 원래 그렇지만 오늘처럼 많은 땀을 흘려본 날도 별로 없었으리라.
소요산은 산세가 그다지 장쾌하고 웅대하지는 않았지만 바위 절벽과 어울려 심산유곡을
방불케 하는 형상적인 아름다움 하나만은 그 극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중백운대를 거쳐
상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은 비교적 완만하여 쉬엄쉬엄 걸으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구간
으로 삼았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의 덕분이었을까, 등반 객들의 발길이
사들끼리 세속의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상백운대
에서 나한대를 거쳐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 까지는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한 봉우
리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칼바위 능선이다.
식사장소를 놓고 옥신각신한 격론(?) 끝에 의상대 주변에서
채우기로 합의한다. 충분한 폐활량 배가운동에다가 많은 땀을 흘려냈기에 배도 고프고
체내의 수분이 턱없이 부족하던 터라 산에서 먹는 음식은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값지고
맛있기 마련이다.
오늘 역시 여성분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남김없이 해치우고 말았다. 중식으로
충분한 힘을 충전했기에 마지막 여섯 번째 봉우리인 공주봉은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모든 산들의 봉우리는 그 산세에 맞춰 다소 거친 이름으로 명명되기 마련인데
마냥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공주봉'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이제 우리는 보다 높이 오르기 위하여 내려가야만 한다. 얼마 전까지 내렸던 비 때문에
찰흙으로 엉켜진 하산 길에서 몇 분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미끄러지는 수모(?)를 당하여야
했다. 명경지수처럼 맑은 계곡 수에 속세에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내며
더욱 멋지게 전개될 다음산행을 기대해 본다.
200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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