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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산행(여행)기 모음

가을비 내리는 월악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급기야 상사병으로 죽어 뱀이 되고 말았다.
사량도에 얽힌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실체도 파헤쳐

볼 겸해서 시도했던 사량도의
꿈은 가을비 몇 줄기에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하는 수 없이 월악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나, 서울역에서 관광버스에 몸을

맡길 때까지만 해도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에는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마구 쏟아 붓기

시작했다.

강행할 것인가, 가까운 수안보에서 온천욕이나 즐기다가

귀경하고 말 것인가,
우린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우중산행의 묘미 또한

산꾼들의 빼놓을 수 없는 멋이기에 그대로 강행키로

결론 내렸다.

깊은 산자락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자욱한 안개를 보고 필시

비는 그치고 말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단해 보지만 덕주사

모퉁이를 돌아 마애불까지 오르는 동안에도 속절없이

내리는 가을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모자를 눌러쓰고 방수용 자켓을 걸쳤던 터라 몸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었다. 빗방울인지, 땀방울인지 얼굴 가득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연신 훔쳐내며 오르고
또 올랐다. 산행 때마다 나를 괴롭혀 온 안경을 이미 벗어

던졌기에 주위의 경관은 살펴 볼 엄두도 못 내고 좁은 시야로

그저 앞만 보고 올랐다.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네 짧은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도 힘든 일이 있으면

쉬운 일도 있고, 슬픈 일이 있는가하면 기쁜 일도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이 산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 있으면

쾌청한 날은 더 많을 것이다.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내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험준한 암벽사이로 길게 놓여진 몇 개의 철제사다리를

오르다보니 어느새 960고지에 이를 수 있었다.

때맞춰서 그렇게나 애간장을 태우던 비도 그쳐줬다.
시원한 얼음물을 몇 컵 들이켰다. 가슴이 콱 트이고

날아갈 듯이 몸이 가벼워졌다.
다시 정상을 향하여 몸을 움직인다.

산 중턱 여기저기에는 언제부터였는지 곱고도 화려하게

물든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반가운 미소로 산꾼들을 반기고

있었고, 만고의 풍상을 견디고 자라 온 잣나무
숲 사이로 시절도 없이 울어대는 산새 소리가 오늘처럼

처연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제2의 금강산, 혹은 동양의 알프스라고 불러지는

월악의 암릉들은 역시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힘과 멋이 있었다. 요소 요소에 줄을 잇고

버티고 있는 철제 사다리들을 밟고 또 밟아 주봉인 영봉을

어렵게 정복하였다.

 

암벽높이 150미터, 무려 4㎞의 둘레로 

이루어졌다는 거대한 암반위로 해발 1,094미터의 신령스런

봉우리는 아직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렇게 버티고 서 있었다.

날씨 탓으로 선명할 수야 없었지만 만수봉, 주흘산,

치악산 등이 연출하는 산맥의 파노라마가 희미하게나마

포착되었고, 월악산을 휘감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충주호가 한 소녀를 사랑했었던 지난날의 그리움을

잉태시켜주기에 충분했었다.

정상근처의 넓적한 공터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점심을

챙기고 하산 길에 나섰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하산 길 역시 장난이 아니었지만

지친 육신을 달래 줄 정갈한 계곡수가 있어 좋았다.

'비가 온다고 해서 밥마저 굶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릴 적 내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그렇다 비가 내려도 산행은 계속돼야 한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산들이 저렇게 많은데........

 

20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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