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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산행(여행)기 모음

팔봉산과의 하루

 

 

 각해 보면 나는 산과의 인연이 각별했었나 보다. 예나 제나 산은 늘 나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었던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모양이다. 유년시절에는 산간벽촌에서 삶의 한 방식으로 내 키보다
더 큰 지게를 짊어지고 종횡무진 산을 누볐으며
 지금은 사는 것이 한결 여유로와 단순히 취미생활차원

에서 산을 찾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산과의 인연을 계속 맺고 있다.

 

 다시 말해, 옛날에는 고달픈 삶의 연장선상에서 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산을 올랐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완성된 내 삶의 위치에서 조금은 사치스러운 산행을 즐기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산은

계속해서 올라야 할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아! 옛날이여, 기억저편으로 사라져간 그 날

들은 과연 실제로 있었던 날들이었을까?

산등성이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는 수목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찬란하고 싱그러웠을 테지만 지금

맞이하는 그것들은 유독 가까이 오는 것만 같고 그 찬란하고 싱그러운 의미를 알 것만 같으니 가까이

오는 것이 두렵고 뭔가를 안다는 것이 점점 무서워진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허둥대던 그 시절이 사

무치도록 그리워진다.

한적한 주말, 배낭하나 달랑 매고 예외 없이
산을 찾았다. 오늘 찾은 산은 해발 309미터의 작고도

아담한 홍천의 팔봉산이다. 우애 좋은 8형제가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 있듯이 나지막한 여덟 봉우

리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산이지만, 그러나 매서운 바위가 높은 암벽을 이루고 있어 네발로 올라야

하는 산이다.


작은 고추가 맵듯이 그야말로 옹골찬 산이다.
흔히들 팔봉산은 등반객들을 세번 놀라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 오늘도 팔봉산은 나를 세 번 이상씩 놀라게
해줄 것이 분명하다. 1봉으로 향하는 초입은 제법

가파른 길이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1봉을 지나 2봉에 안착했다.

 

2봉 정상에는 정월 대보름이면 李氏, 金氏,洪氏 등 이른바 삼부인의 神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소원

을 빈다는 삼부인당이 있는 곳이다. 굽이굽이 감도는 홍천강의 맑은 물줄기가 한낮에 밝게 떠오른 태양의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심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며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저 만큼에서는 삼악산, 용문산,

화악산 등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맥의 파노라마가 황홀함으로 내게 머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떠나자는 일행을 독려하여
4봉의 해산굴 앞에서 멈춰 섰다. 해산굴, 태고의 신비를

안고 천연적으로 형성된 굴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낀다는 이 굴은 많이 통과할수록 무병장수 한

다고 하니 열 번 정도는 족히 통과했을 내 경우는 얼마나 무병장수 할지 두고 볼이다.

이어지는 5,6,7봉은 밋밋한 편이다. ' 8봉의 하산길이
대단히 위험하므로 노약자나 부녀자는 7봉과 8봉

사이에서 곧바로 하산하라'는 위험경고판 앞에서 머뭇거리는 일행을 달래여 마지막 봉우리인 8봉을 올랐

다. 삐죽삐죽 솟구친 암벽사이로 만고의 풍상을 견뎌내며 곱게 자란 소나무를 바라보고 하산 길에 접어든다.

경고문처럼 역시 하산 길은 위험하다. 산과의 한바탕
격렬한 전투를 치르듯 로프에 온몸을 맡기고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내려와야 한다. 막상 강 위로 내려오고 보면 하산에 성공한 듯 싶지만 아직 산행은 끝나

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강가에 설치돼 있는 로프와 받침 줄, 흔들 다리로 이어지는 유격훈련장과 같은 재

미난 코스를 통과하여야만 비로소 산행이 끝나는 것이다.

홍천의 팔봉산은 충남 서산의 팔봉산과 매우 흡사하다. 팔봉산, 두산 모두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산이며,

시시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산이다. 그러나 거기엔 아기자기하고 산으로써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초보산행으로도, 가족산행으로도 적격인 팔봉산을 감히 추천해주고 싶다.

 

 

                             20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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