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우회에서 역사문화탐방의 일환으로 여주의 영릉을 찾았다. 우리 한글로 쓰는
영릉을 한자로 구별하면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말해, 영릉(英陵)은 조선
4대왕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을 말하며 영릉(寧陵)은 조선 17대왕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을 말한다.
공교롭게도 여주에는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이 공존하고 있었다. 영릉과 그 주변에
얼킨 얘기들은 아래 사진들로 대신하고자 하며 대신에 기왕 컴앞에 앉은 김에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톡으로 받은 아름다운 글이 있어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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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연"
저는 예순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저는 한 대학교의 의대교수인데요, 이제 내년이면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게 되네요. 제가 사람답게 살고 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사연을 얘기하고 싶습
니다. 저는 깡시골에서 태어나서 아주 어릴때부터 장작 땔 나무를 해오고 집안 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저희 집은 아주 가난했고 부모님은 여자애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집
안일 보다는 공부에 흥미가 많았어요. 몰래 학교창문으로 들여다 보며 한글을 익히고 산수를
공부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부모님한테 잡혀와서 혼쭐이 나기도 했습니다.
계집애가 공부해서 뭐할 거냐며 살림이나 잘 배우라고 하셨죠. 그런 제 삶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젊은 여선생님이 오시고 부터 였습니다. 시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에 부임하신 선
생님은 제가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쑥을 뜯다 말고 누가 놓고 간 책을 읽는 걸 보시고 저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순정아, 지금 당장은 이게 너한테 쓸모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 올거야.
네가 노력하는 만큼 네 인생의 기회도 넓어질 거고.."
그 선생님도 공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됐다
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밤마다 몰래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 댁에 가서 국어, 산수, 도덕, 사회
자연.. 이런 것들을 배웠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과정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가 어느 날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댁에 가려교 막 집을 나섰을 때였죠. 엄마는 아
버지께 말하지 말라고 싹싹 비는 저를 보며 한숨을 쉬시고는
"들키지 않고 끝까지 할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 자식이 좋아하는 거 부모도 못 시켜주는데
그걸 다해 주신다는데 어떻게 안된다고 하겠냐? 기왕 할거면 내 몫까지 다 하거라." 라며 몰래 다
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공부가 계속되면서 저는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에
가고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공부할 시간도 많아야 하고 문
제집도 살 게 많았습니다. 그저 막막하게 생각하고 걱정을 하자, 선생님은 엄마를 만나셨습니다.
"순정이는 정말 똑똑해요, 누구보다 이해력도 빠르고 머리도 좋고 굉장히 성실하죠. 이런 애가
공부를 안하면 누가 하겠어요? 부디 어머니께서 순정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말에 엄마는 한동안 고민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저를 밀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아빠 몰
래 집안 일 하는 시간을 빼 주셨고 문제집 살 돈도 주셨습니다. 그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뒤에서 조용히 제 앞날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그런 엄마와 선생님께 보답하고자 하루 열 시간씩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풀수 있는
문제들이 많아지더라구요. 한번은 선생님이 갖다 주신 유명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는데 제가 거
기서 딱 두 문제만 틀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부 잘하는 고3들도 어려워하는 시험이라고 하셨습
니다.
선생님은
"그거 봐, 너는 이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이게 공부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거기다 넌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힘까지 있잖아.."
"선생님., 제가 정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시험 성적을 보고도 모르겠어? 너는 이미 전국 수준이라고.." 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힘을 얻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
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엄마와 선생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엄마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훔치셨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는 어디 여자애가 혼자 서울에 올라 가냐며 펄펄 뛰셨습니다.
그리고 쓸데 없는데에 시간을 낭비했다며 제 책들을 다 버리셨습니다.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아버
지를 원망하며 가출을 결심했습니다.
"오빠들은 아버지가 다 밀어줘도 못간 대학, 나는 갔는데 왜 나보고는 안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밀어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저는 몰래 짐을 싸서 새벽에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뜻밖에 선생님이 나와 계
신 것이었습니다.
"순정아, 이렇게 가면 안돼.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집을 나가니?
나가더라도 떳떳하게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야지 지금 네가 이렇게 무작정 서울에 가면
어디서 받아 줄 거 같아? 지금 그러지 말고 돌아가자. 안 그러면 네가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다
헛수고가 되는 거야."
저는 결국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가출하려고 했던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건지 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
지께
"이건 제가 순정이한테 주는 대학 합격선물입니다. 서울에서 1등만 한다고 하는 애들도 떨어지는 의
대에 합격했잖아요. 이만한 선물은 충분히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정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
닐 수 있게 해주세요. 분명히 아버님께 효도하는 딸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몇 번이고 되풀이 한 간곡한 설득 덕에 결국 아버지는 저를 서울에 보내기로 하셨습니다. 저
는 선생님께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며 펑펑 울자,
선생님은 "네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휼륭한 의사가 돼서 갚으면 돼." 라며 제 어깨를 토닥
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러겠다고 굳게 약속했고 대학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학년 때 다들 해본다는 그 흔한 미팅도 한 번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과 몰려다니며 놀지도 않았고 오
직 공부하고 학생과외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
니다.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 가지고 시내 중학교로 갔더니 선생님이 그만 두셨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 결핵에 걸려서 수업시간에 피를 토했고 그 이후로 학교를 그만 두시
고 요양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또한 선생님은 제 앞으로 편지를 남겨놓으셨습니다. 편지를 서울로 보
내지 않은 건 제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 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순정아, 너는 언젠가 꼭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선생님은 그렇게 믿어.
그러니 건강 유의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없어."
저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학교 선생님마다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어디로 떠나
셨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안하고 떠나셨다는 거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찾으려고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
야 했습니다. 저는 자취방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결심했습니다.
"그래,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게 열심히 살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벌자. 그게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야."
저는 그때 이후 정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잠 한 숨 안자고 며칠씩 공부하다가 입원도 해보았
고 너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온통 짓무른 적도 있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일주
일치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넣어 놧다가 하나씩 꺼내 녹여서 먹었습니다.
반찬은 시골에서 보내 준 김치 한 가지였구요. 어려운 의학용어들은 다양한 연상법을 이용해 달달 외
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택에 저는 인턴 후 봤던 시험도 레지던트 4년 후 봤던 내과 전
문의 시험도 모두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고 마음 속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학병원에서 계속 일
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정말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살아계시면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늘 제 마음 한쪽에 계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었고 선생님을 대한
다고 생각하고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의학논문들을 읽고 연구자료도 수없이 검토했
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새 환자들이 제일 신뢰하는 의사로 저를 꼽게 되었고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
다 마음 속으로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예요"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딸을 낳는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지만 선생님이 만약 보셨다면 참 기뻐하셨겠지 그
런 생각도 했습니다. 선생님을 떠올리며 딸 이름을 선생님과 같은 선희라고 지었습니다. 물론 선생님
처럼 마음 넓고 예쁜 사람이 되길 바래서 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새 그 딸이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딸도 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며 의대에
가서 인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나 만나는 사람 있는데 엄마도 한 번 같이 봤으면 좋겠어."
"그래?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야? "
"응, 내가 지금까지 엄마한테 내 남친 소개한 적 없잖아. 이 오빠는 진짜 내 인연인 거 같아."
딸은 부끄러운 듯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저는 그렇게 까지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딸 얘기를
들어보니 마음은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 같은데 크게 욕심도 없고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 그날 벌어서
그 날 쓰고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제 사위는 좀 더 야망이 크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인물이길
바랐는데 완전 정반대인 타입인 것 같아서 만나기도 전에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그걸 참 좋게 본것 같았어요.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제가 보지도 않고 싫다고 할 수는
없어서 저는 일단 그 청년을 만나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위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아주 선한 인상
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 사위라니 부족함 없다고들 하시겠지만 전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 평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만 가르칠 생각인가?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하고 유학을 갈 계획은 없고? 라고 하자 사위는
"네 저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뭐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데에는 저희 큰 어머니 영향이 큽니다. 아프셔서 두 번 교직을 쉬셨지만 큰어머니가 용기
를 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이 큰어머
니한테 인사하러 올때면 큰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굉장히 바른 청년 같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인 거 같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만만치만은 않을텐데
자네가 그러는 걸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라고 물었고
사위는
"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외국유학도 다녀오고 더 좋은 직장을 갖길 바라셨지만
요즘처럼 교사되기 힘든 때에 당당히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물론 제 생각도 많이 지지해 주셨구요." 라며 쑥스럽다는 듯 웃더군요.
"엄마, 왜 자꾸 그런 질문만 해? 꼭 오빠가 교사인 게 마음에 안드는 것처럼.
나는 오빠 같은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오빠가 하는 거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구.
그리고 학생들한테도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 교사가 천직이야.
타고 났으니까."라며 딸이 옆에서 지원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졌다니 할 말은 없겠죠. 제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 남편
은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저였죠. 솔직히 제 딸은 더 근사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보내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런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 딸을 믿고 맡길 수 있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그 청년의 마음가짐 하나만 보고 딸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
고 결혼식 준비는 원만하게 진행되어 양가 부모의 상견례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인
한정식 식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환자 진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것도 있었지만 중요
한 자리인 만큼 먼저 가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식당에 들어서자 젊은 직원이 나와서 예약을 했냐고 묻더군요. 저는 상견례 예약을 했다
고 말했고 직원은 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직원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카운
터에서
"감사합니다. 다시 뵐 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는 고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목소리여서 카운터 쪽으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저 보다
열 살은 많으신 여자분께서 우아하게 머리를 올리시고 앉아서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꾸 어디서 본 것만 같아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저를 본 여자분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물으시더니 한 참 동안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저도 한 참을 바라봤구요. 아무래도 낯이 익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억양,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 예전에 제가 알던 유 선희 선생님과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눈매라던가 얼굴형 콧날이 선생님과 흡사했습니다.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유선희 선생님 아닌가요?" 라고 하자 그 분도 "너 순정이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리 둘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상견례라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했던 화장이
다 무너지는데도 아랑곳 없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찾았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요. 선생님 정말 보고싶었어요.
너무 그리웠어요. 한시도 잊지 않았어요. "
저는 통곡을 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시며 제 손을 잡으셨습
니다.
"순정아, 너 정말 순정이가 맞구나. 나도 널 잊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내가 아파서
어쩔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단다.그래도 네가 정말 잘 산거
같아서 기쁘구나."
"저는 언제고 살아있을 때 선생님을 다시 뵙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났나 봅니다."
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저를 끌어 안으셨어요.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저는 상견례 얘기를 했죠. 선생님은 예약자 이름을 보더니 놀라시며
"니가 선희 엄마였니? 라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제 딸을 아시냐고 했고 선생님은
바로 제 사위의 큰어머니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는 벌써 니 딸 보았지. 정우가 꼭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몇 번이나 봤는걸.
너무 예쁘고 총명하고 이상하게 정이 가더라니 네 딸이어서 그랬나보다."라며 놀라셨어요.
저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사위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 선생님이라니. 저는 사돈 분들과 사위
와 딸을 만나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야기 했고 그 분들과 사위도 다 놀라더라구요. 당연히 제 딸도 놀
랐구요. 무엇보다 제가 딸 이름을 선생님 이름을 따서 붙였다니까 사위는 훔칫하더군요. 처음에 제
딸한테 눈이 간 게 큰 어머니 이름하고 같아서였답니다.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는지 하늘은 계속 우리를 잊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가 이렇게 엮어서
저와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상견례가 끝나고 저와 선생님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은 처음 요양을 마치시고 다시 교사를 하시며 결혼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
나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학교 일로 너무 무리를 해서 다시 나빠졌는데 그때도 폐가 문제가 됐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교사를
그만 두셨고 집에서 지내시다가 가끔씩 남편이 경영하는 한정식 식당에 나와서 카운터를 봐주고 있
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간 날이 시 조카 상견례여서 제 딸도 보고 저희 부부도 볼겸 나오셨다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순환기 내과 교수라고 하자,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저는 꼭 해낼 줄 알았다고 자기 일
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그래서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많이 마르신 것 같은데 불편하신 덴 없으시고요?" 라고 물었
더니 다시 몸이 안좋아진 것 같아서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그 의사가 워낙 그 계통에 유명한 교수라서
그런지 두달도 넘게 기다려야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호흡기 쪽의 내로라
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싹 돌렸습니다.
그리고 대학병원 내에 인맥을 총동원해서 선생님이 VIP 병실에 입원할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난 일반 병실도 괜찮은데 이런 데는 어색해."
"선생님, 이거 제가 은혜 갚는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선생님께 보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알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검사 결과 선생님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암의 소견
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몸이 많이 약해지셔서 수술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워낙 초기였고 표적 항암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바로 제가 주치의가 돼서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우시면서
"내가 순정이 덕분에 살게 됐구나. 고맙다." 라며 계속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저는 그러지 마시라면서 꼭 건강하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선생님의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
고 아이들의 겷혼식 날짜도 잡았습니다. 저는 해외의 최신 논문들을 전부 찾아보고 미국 유명한 대학 병
원에서 임상 진행중인 효과 좋은 신약이 있는지도 계속 알아보며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제가 있는 대학에서 연구 중인 치료제도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암의 전이도 막아내고 완전히
뿌리 뽑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저를 보며 이런 좋은 의사를 만날 줄 몰랐다고 좋아하셨구요. 저도 너
무 기뻤습니다. 제가 공부한 것으로 선생님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순간은 정말 힘들게 공부했
던 날들에 대한 후회가 눈꼽 만큼도 없었습니다.
부모님 만큼이나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선생님을 치료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 결혼식 날이 왔습니다. 선생님도 그 동안의
치료로 많이 좋아지셔서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결혼식장에 오셨습니다. 사위는 저를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90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가까이 가서 사위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자네를 잘못 알아보고 이런 저런 실례를 많이 했지?
미안하네. 내가 어느 새 올챙이적을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잘 된 것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었나 보네. 자네가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큰 어머니, 유선희 선생님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셨는데 자네는 더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만들게."
"아닙니다. 장모님, 저는 섭섭하게 느낀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희가 좀 훌륭한가요. 아까우신 게 당연하지요.
선희는 저 한테 정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거 잊지않고 눌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와 선희의 결혼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사위의 말에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구요. 결혼식이 진행되고 딸과 사위가 우리 부부와 사돈 부부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생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선생님, 시골에서 나물이나 캐고 땔감이나 주워 오던 저를 오직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공부시켜 주시고 문제집도 사 주시고 대학교 첫 등록금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제 사돈 큰 어른이 되어 주셔서 정말 너무 영광입니다. 제 딸도 사위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사돈 내외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 계셨어요. 눈시울을 붉히시더라구요. 다들 박수가 터졌고 그
가운데 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딸과 사위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 사돈은 제게 다가와
저를 안아 주더군요. 행복한 딸의 결혼식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너무 미안했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하셨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십니다. 이제 제가 은퇴하고
나면 같이 여행이나 다니자고 하시네요. 저도 그럴 날 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선생님
의 은혜 보답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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