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란 단순히 우리가 생활하는 장소를 잠시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풍경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행을 통하여 무엇보다 자연과 풍경을 온
전히 이해할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연과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앙상한 나무에 새순이 돋고, 봄꽃의 꽃망
울이 터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고 순수한 산악공기를 느긋하고 기분좋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힘든 산행 중 잠시 여유를 갖고 양지 바른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도 근
사한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오리나무숲과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함께 이 초원에 친숙
하고 그것을 잘아는 자만이 자연과 풍경을 완전하게 백배는 더 깊고 고상하게 즐길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명산을 찾아 산행만 하
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널리 만연된 오류다.산행은 꼭 명산일 필요는 없다. 조국의 산
봉우리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비록 무명의 봉우리들도 수 없이 많지만 그 봉우리들마저도 각기 특색이 있고 나름대로 매력이 있
다. 이름 모를 산봉우리들, 아니 이름조차 없는 산봉우리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
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봉우리들이 우리가 한번 두번 사이에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이다.
그 봉우리들을 찾아 오늘도 나는 정맥마루금 걷기에 나선다. 여기서 나는 자연과 풍경을 온전히
느끼고 체험하고자 한다. 아직 나는 늙었다고까지 말하기는 다소 민망하지만 더 이상 젊어질 수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 삶이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에도 있지
않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
에서 산행은 내가 목 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인 것이다.
해발 466고지이다. 산봉우리의 당당한 이름이 없어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해발 538m의 묵방산 정상이다.▼
배남재이다. 이곳은 사진을 정면으로 봤을 때 빗물이 왼편으로 흐르면 섬진강으로 모이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동진강으로 모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수재(령)인 셈이다.▼
해발 388m의 성옥산 정상이다.▼
마루금은 잠시 마을로 내려서고 마을에서 다시 새로운 산으로 그 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나 온 산길을 되돌아 보았다. 분명 시간상으로는 얼마 걷지 않은 듯싶은데 뒤돌아보면 저처럼
아득한 거리를 걸어 온 것이다. 우리네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잠깐의 시간 같아도 되
돌아보면 우린 너무 먼 거리를 헛되이 지나쳐 오고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해발 442m의 왕자산 정상이다. 오늘 호남정맥 마루금에서 만나는 마지막 산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야말로 악천고투의 연속이었다. 어제 이어 연속 산행의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
보다 날씨가 더웠다.
거기에다가 이곳 정읍시에서는 우리 민족의 등줄이나 다름없는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방치
하다싶이 하여 가시덤불을 해치우며 걸어야 했다. 같은 정맥마루금을 관리하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의 밴치마킹이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지난 날의 폭풍으로 수 많은 크나 큰 나무들이 산길로 넘어져 방치되고 있어 산행하는데 적
잖이 애를 태워야 했다. 왜 하필 나무들은 산길로만 넘어지는 것일까? 너무나 뻔한 우문이
지만 그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오늘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무거웠으리라. 그만큼 부대낀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고생고생 끝에 날머리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참으로 힘든 산행을 했다.▼
'정맥 사진첩 > 호남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구간(불재~치마산~지주산~오봉산~운암삼거리) (0) | 2017.02.20 |
---|---|
제1구간(모래재~주화산~만덕산~관음봉~상회마을) (0) | 2016.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