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이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남들이 많이 가니까.." 또는 "여행 다녀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며 뻐길수 있으니까.,"가 아닐까 싶다. 제발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라지만 사실은
여행 후기랍시고 작성하는 이 글에도 요소요소에 그런 냄새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바이
다.
비슷한 얘기지만 여행자는 김빠진 호기심 때문에 내적 본질에 진정한 관심을 느낄 수 없는 여러나라를 두
루 다니기 보다는 단 몇 나라를 가더라도 새로운 세계와 만나 새로운 자연과 문화, 새로운 인간상을 천착해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또 후진국은 시시하다고 선진국만 골라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시시한게 싫다고
시시하지 않은 걸 찾아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라도 얼마나 시시한가 말이다. 선진국보다 오히
려 낙후된 후진국의 여행이 훨씬 좋다.
그 이유는 선진국은 다분히 인공적인 것이 많은 반면, 후진국은 자연친화적인 어쩌면 우리 인간 본연의 모
습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 즉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그럼 지금부터 창조의 영감에 불이 붙은 시인의 눈처럼 번쩍거리며 후진국 중의 후진국, 그러면서도
문화유산이 가득한 캄보디아로 떠나보자.
저녁시간에 하노이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약 1시간 40분 만에 씨엠립 국제공항에 이르렀다.
이제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일행이 캄보디아 일정 중
머무르게 될 SOKHARAY 호텔의 입구 모습이다.▼
호텔 내 수영장의 모습이다.▼
우리들의 숙소가 씨엠립에 위치하고 있이므로 먼저 씨엠립의 도시개요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씨엠립은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이다. 600km에 이르는 지역 내에 모두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100 여개의 사
원이 있으며, 외곽지역을 제외하고 주요 시가지는 걸어서 20분~30분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이다.
앙코르왓은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앙코르는 왕도를 뜻하고 와트는 사워을 뜻한다. 앙코르왓은 크메르의 고대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며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굉장히 웅장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
여준다. 고귀한 건축물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음을 열린 마음으로 황홀하게 들을 수 있다.▼
앙코르 월드 입장권이다.티켓에 사진이 붙어있는 것이 이채롭다. 가이드의 전언에 따르면 처음엔 사진
부착을 안했으나 중국인들이 이 입장 티켓을 사용후 반납치 않고 다른 중국인들에게 계속해서 물려준
다는 것이다. 중국인, 그들의 얄팍한 잔꾀가 우스운 정도를 넘어 몸서리쳐지기기 까지 한다.▼
38 °C를 오르내리는 온도, 이글거리는 태양 속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서 있기가 걷는 것보다, 걷는
것이 앉아있기 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암튼 움직이기만 하면 내 몸은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런 날씨 정도에는 이미
이골이 나있었는지 현지 가이드는 부지런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내 귀엔 도무지 들어오느 게 없었다.
따라서 수업태도가 극히 불량했던 나는 앙코르 유적에 관해 더이상의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기에 개괄적인 사항을 빼고는
사진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할 수 없음을 솔직히 밝혀두는 바이다.
드넓은 부지 안에 한 변이 3km인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는 앙코르 톰, 앙코르 유적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티브인 유해교반이 새겨진 난간을 따라 신들의 문인 남대문을 빠져나간다. 중앙에 있는 바이욘은 불교
에서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수미산을 상징한다. 북쪽으로 가면 라이 왕의 테라스 등 유명한 유적이 많다.
타프롬사원이다.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으로 더욱 잘 알려진 타프롬은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통행로만을 제외
하고는 전혀 복구를 하지 않은 사원이다. 크메르 왕조의 위대함에 한껏 반해버린 사이 타프롬에 들어서는 순
간 자연 앞에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덧 없고 부질 없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금세라도 건축물과 담장을 통째로 삼켜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뻗어있는 기이한 나무들, 그러나 이 나무들을
일체 베어 없애지 않고 다만 성장발육금지제만 투여한다고 하니 문화유적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꿈꾸는 캄보디아 국민들의 국민성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만들기 전에 모친을 위해 건립한 불교사원이다. 영화 "룸레이더
"촬영지로 유명하며 효심이 유난히 깊었던 자야바르만 7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통곡의 방을 만들고
이 통곡의 방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신비로운 사실은 이 통곡의 방안에서 손뼉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면 울리지
않는데 가슴을 퉁퉁치면 소리가 울려퍼진다는 사실이다.
통곡의 방, 어쩜 이 방에서 누구보다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할 사람은 나일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유년의
풋풋한 기억들이 오버랩되었다. 아, 그 풋풋하고 간절했던 기억들.. 내가 지금 이 나이에도 불안해 하는 것은
나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의 슬픈 노래들은 모두 엄마들의 인생을 닮았는지 모른다. 어머니,다시 한번 불러보는 간절한 이
름이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나날이 새로이 어머니에게 다가가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요.
아, 나는 당신의 아들이었지 결코 당신은 아니었습니다.▼
앙코르 월드 유적지 보수를 2016년 준공을 목표로 일본에게 맡긴다는 뜻의 표지판이다.▼
앙코르 톰 중심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의 미소로 더욱 잘 알려진 사원이다. 1화랑에서는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고 2화랑에서는 주로 힌두교 신화나 전설을 주제로 전개되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 욕망이 강한 사람들은 권력을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값진 것으로
여겨왔다. 캄보디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크메르 루즈 정권의 폴포트가 자행한 이른바 킬링필드는 그 규
모나 잔인성에 있어서 워낙 큰 전대미문의 충격적 사건이었기에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세계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암튼 우리는 캄보디아 국민들의 아픈 역사의 현장인 왓트마이에 왔다.작은 킬링필드라고도 불리우는 이곳은 킬
링필드 대학살 당시 씨엠립과 앙코르 유적 인근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놓은 사원이다. 킬링필드란
1975년~1979년 4년 동안 폴포트가 이끈 크메르 정권이 집권한 후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
분아래 4년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약 1/3 을 학살했다고 한다.
베트남식 공산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크메르 루즈 정권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개혁이나 사상에 반대하는 모든
지식인, 농민, 노동자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학살했다. 현재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도 심드렁하고 지긋지긋해 하는 분위기다.
다만, 다시는 킬링필드와 같은 처참한 일이 캄보디아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캄도디아 킬링필드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이다.ㅠㅠ
캄보디아 역사 그림 박물관이다.▼
크메르 루즈 정권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개혁이나 사상에 반대하는 모든 지식인,
농민, 노동자들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젊은이들을 모아 그들이 목표로 하는 사상이나 행동강령에 대해서 정신교육을 시켰다.▼
아래 사진을 세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총을 들고
감시하는 사람은 젊은 아이들이었다. 이는 크메르 루즈 정권이 젊은 아이들로 하여금 어른들을 감시
하고 때로는 처형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을 처형하면 영웅 칭호를 내리고 자신들의
부모는 특별히 보호해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이들을 유인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악랄한 정권, 그들이 자행했었던 목불인견의 현장..비록 그림이지만 소름이 쫙 돋는다.▼
동양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 호수는 씨엠립의 남쪽으로 15km 정도 가면 마치 바다라고 착각할만큼
황토빛의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톤레삽은 우기때가 되면 건기에 비해 수면이 여섯배로 볼어나며
호수 안에는 소수의 수상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우린 배를 타고 톤레삽 호수의 수상촌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선박이 어느 지점에 이르자, 우리는 그곳 선착장에서 다시 보트로 갈아타고 밀림이 우거진
강물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보트가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것으로 보아 수심이 꽤나 깊은 것 같은데도 나무들이 저렇게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자연의 힘은 대단하고도 신비스럽다는 것을 알것 같다.▼
톤레삽 호수와 수상촌의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빈민촌을 들렀다. 가이드를 중심으로 일행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모은 성금과 성품으로 이들을 돕고자 함이었지만 결과는 매우 찜찜하게 끝나
고 말았다.
준비해 간 식품들을 나누어 주는 순간, 이들이 억세게 몰려들고 성품들을 낚아채는 바람에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보자마자, 며칠간을 굶었는지 밀림 속 맹수처럼 무섭
게 달려들었다.
우린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키고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어느 임산부
를 향해 손을 내밀어 달러화를 건네줄려고 하였다. 그 순간 억세고 거친 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
달러를 낚아채느라 소란을 피우는 사이, 그 여행객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것은 아닌 듯했다. 가이드가 원망스러웠다.
옛말에 자선을 베풀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자선활동이나 불우이웃의 성금지원, 자원봉사까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하라는 뜻이다
자선은 아무도 모르게 익명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광고하듯 내비치며 하는 자선
등은 그 뜻이 아무리 좋아도 이미 자선이 아니라 생색이 되고 만 것이다. 가이드의 자선을 빙자한
모금 활동과 성금품 지원방법 등은 "과연 최선이었을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여독이었을까?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저녁을 먹고 씨엠립의 야시장에 들렀다. 물건들이 조잡스러워 구매력을 촉진시키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몸뻬 바지에
해당하는 이른바 똥바지 몇 개를 사는 것으로 이방인의 예를 갖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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