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랬었는데...."
그때 나는 밤마다 별을 보았으며, 잠결에 "쏴"하고 앞산에 비 몰아오는 소리를 들었으며 글쓰기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였고, 심성이 착했으며 훌륭하진 않지만 반성과
성찰을 할줄 알기에 그렁저렁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본인은 주장한다.) 푸르른 예지와 힘있는 상상
력을 결합한 영적 촉수로 무장한 낭만주의 시절이 분명 내 인생에도 있었다.(고 본인은 주장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상경해서 그 남루한 시골 촌뜨기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보다 더 말끔하고 강건
하고 영민한 도회인의 삶을 배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젊음과 지성을 무기로 철저하게 난
독의 대상인 세상과 맞서 한 점 부족함 없고,부끄러움 없고 그래서 부러움도 없는 생활을 영위해 왔
던 것이다.(라고 본인은 주장하지만 이 역시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ㅠㅠ
과거를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우울한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만 행복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삶에 부대끼며 시적 감수성은 나날이 닳아 없어졌고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던 소년
은 자신이 이미 아버지의 세월을 뛰어넘어 할아버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외로워 한다.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신을 지나치게 소홀히 대해 왔으며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 보다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도록 노 력할 것이다. 뜬금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의 처방법은 젊음과의 소통이다.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가 급적 입은 닫고 지갑은 자주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그나마 낫살을 제대로 먹은 사람, 곱게 늙어가는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 때나 지금이나 딱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행 좋아하는 버릇이다.그 버릇땜에 그 역마살 때문에 오늘도 나는 여행길에 오른다. 사람의 일 가운데 하고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세 가 지는 "여행과 샤워,그리고 기도"라고 하잖은가, 혹여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곳과의 결별을 두려워 하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 맞기를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께 이 작은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본격적으로 여행길에 나서본다. 12일 아침 10시 5분,인천공항을 출발한 항공기가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12시 25분 경이었다. 현지 시간이 우리 시간보다 두시간 늦은 점을 감안하면 비행시간은 약 4시간 20 여분이 소요된 셈이었다. 사진은 하노이 국제공항의 외형이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낮의 하노이, 간식도 하고 무더위도 피할 겸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린 어느 쌀국수집 으로 안내되었다.▼ 중식 후에 호아키엠 호수 및 36거리 주변을 베트남 3대 명물중 하나라는 스트릿카를 타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하노이 시내의 모습이다.▼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 그러나 생각보다 교통사고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호암키엠 호수 주변의 모습이다.▼
하노이에서 약 4시간 거리인 하롱베이로 이동했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아름다운
하롱베이, 벌써부터 내 가슴은 잔잔한 설레임이 일기 시작했다. 사진은 우리가 머무르게 될 하롱베이
프라자 호텔의 모습이다.▼
호텔 조식 후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링딩팜이 은신하였던 곳으로 유명한 "하롱베이"의 그림같은
3,000 여개의 주변 섬을 선상유람하기 위하여 여객선 선착장으로 왔다.▼
이제 본격적인 선상유람이 시작됐다. 그 첫번째는 석회 동굴 탐방이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8대 절경 중의 하나인 하룡만의 3천여개의 그림같은 섬들..그 중 하나인 석회동굴은
하늘문, 용향석,용좌,폭포, 선녀목욕탕 등 다양한 형태의 자연 조각품들이 널려있었다.▼
하롱베이는 유네스코에서 1994년 하롱베이의 미학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데 이어 2000년 또다시 하롱베이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한 곳으로 "천하절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롱베이는 바다 건너 외적들이 이곳을 침략하였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폭풍우와 격랑을 일으켜 외적을 격퇴했는데 그때 내뿜은 천둥과 번개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의 기암이 되어 지금의 지형들 처럼
수 천개나 되는 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용이 내려온 곳(下龍)이라는 뜻의 하롱베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하롱베이는 바다라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잔잔한데 병풍처럼 둘러쳐진 수 천개의 섬들이 서로 방패막 역활을 하고 있어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고 한다. ▼
하롱베이, 파도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정적만 흐르는 호수같이 잔잔한 해면 위로는 코끼리 섬, 낙타섬,
원숭이섬, 거북이섬 등 이름 도 알수 없는 수 많은 섬들이 살포시 떠 있었고, 유람선을 타고 섬과 섬사
이를 오가고 있노로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또한 하롱베이는 날이 흐린 날에는 어디선가 전설 속의 용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금강산, 중국의 계림과 같이 동양 3대 절경에 속하는 곳으로 장관을 이룬 다고 한다.▼
하롱베이의 절경들을 바라보며 나의 여행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여행을 떠나서는 안될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작 두 어개에 불과했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셀수도 없이 많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오늘처럼 숨이 막혀 질식할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두 어 시간 동안 하롱베이의 절경에 빠져 배고픈 줄 모르고 있었다. 이제 선상에서 맞이하는 식사시간이었다.
몇 척의 조그만 보트들이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베트남 원주민이라고 한다. 베트남
인, 그들은 선량하고 순진무구하며 소박하고 믿음직하며 격렬한 자극도 교활한 간계도 없어 보였다.
몸은 비록 왜소해 보였지만 싱싱한 색조가 감도는 강인한 얼굴을 지니고 두뺨의 혈색은 좋고 연푸른 색 두 눈
은 강철같이 단단해 보였으며 숱이 많은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약간 굼떠 보이긴 해도 눈빛에는 힘과
순수함이 넘치고 있었다.▼
우리의 초등학교 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힘에 부치게 노를 저으면서 조그만 보트로 우리가 탑승한
선박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팔기위한 것이다. 비록 외국인이지만 안타까웠다.
마음이 짠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저 때 쯤이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마음껏 뛰놀고 응석을 부리고 있을 나이인데
도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 역시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안쓰
러워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선상에서 하롱베이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생선회와 자연 해산물로 조리한 요리를 쐬주 한 잔을 곁들여 가며
맛나게 먹었다. 다만, 우리의 생선회처럼 싱싱함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음을 솔직히 밝혀둔다.▼
다시 우리는 소이심섬으로 향했다.▼
여행은 때로는 외롭고 고독하다. 여행은 매번 새로운 그리움을 낳는다. 여행은 어느 순간 지난 날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지를 돌이켜 볼때 나는 우울하다.그러나
절대고독은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실존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니 여행을 즐기는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롱베이의 소이심 섬이다. 작고 조용한 비치를 만나게 되
니 언젠가는 조용한 정원에서 채소를 기르고 조용히 살면서 담장 너머의 일은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는 훗날 나의
계획이 뇌리 속에서 오버랩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 계획을 맘놓고 실행하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은 것만 같다.▼
바다, 푸른 물이 한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는 녹색의 파도위로 이상한 배들이 떠다니는 따뜻한
베트남의 바다. 섬들이 많고 1년 내내 여름만 있는 나라. 이 나라는 백년이 지나도 자신들만의 속도와 온도를 유지하
면서 살것만 같은데 내가 여행에서 돌아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 이야기를 들어나 줄련지.,▼
띠톱 섬에 이르렀다. 러시안인 코스모넛의 이름을 따서 불려진 티콥섬은 하룡만의 에메랄드 바다위에 자리잡은
3천여개의 바위섬들 중의 하나로 섬의 높이는 30미터이고 정상까지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하룡만이 한눈
에 보이는 전망대에 오를 수 있으며 미니 모래해변이 있어 티톱해변에서 간단한 해수욕도 즐길수 있다고 한다.▼
수백개의 직벽계단을 따라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흔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만나면 어안이 벙벙하다고 한다. 오늘 바로 이 장면들이 그렇다.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하리.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 지금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자연인이다. 오늘 이 순간은 누가 뭐래도 확실한 자연인이다. 자연인이기에 말문의 막힘과는 상관없이
나의 글발은 서슬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티톱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절경들은 어찌보면 등푸른 생선같은 풍경들이었다.그저 구워서 밥상에
올려놓은 생선이 아니라 이제 막 아침 빛을 받으며 튀어오르는 생선같은 풍경 말이다.그 선도높은
언어의 빛을 낚아채고자 그 무덥다는 상하의 나라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 지 모른다.▼
티톱전망대에서 다시 우린 바항으로 이동했다. 바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섬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섬은 수 많은 원숭이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죽음을 무릎쓰고 절벽
을 타고 내려와 사람들이 건네주는 과일들을 받아 먹으며 연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숭이들을 맥 잃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구멍이 유난히 빨간
녀석이 눈에 띄였다. 혹시 기암절벽을 타고 내려오다가 낙상한 것은 아닐지, 아니면 내 어릴 적
콧노래로 흥얼거렸던 "원숭이 *구명은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처럼 원래 빨개서 그런
건지 한 동안 원숭이 생각에 마음이 개운치가 못했다.▼
하롱베이에서 유일하게 작은 배로 갈아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바항은 가히 하롱베이의 호수라고
불리울 정도로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하노이로 이동 중에 어느 농장을 지나게 되었다. 밭작물을 손질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시 하노이에 왔다. 엄밀히 말하면 첫날 오게 된 하노이는 구시가지이고, 지금 와 있는 하노이는
우리의 강남에 해당하는 신도시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호치민 생활관과 그 집무실, 바딘광장, 한
기둥 사원 등 하노이 주석궁에 있는 호치민 유적지를 관람할 것이다.
약 30여 년 동안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구 소련에서 기증했다는 호치민의 자동차이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호안키엠 호수에 왔다. 하노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 호수는 "되돌려 준 칼의 호수"
로 유명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명의 침략을 물리친 레 타이 투 왕이 잃어버린 검을 찾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호
수에 있었는데 거대한 황금거북이가 수면으로 올라와 왕에게 검을 건네주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호수 주위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늘어져 있어 하노이의 낭만을 더해주는 곳으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호수 북쪽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는 프랑스식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 찬 외교 공관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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