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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 사진첩/일반 사진첩

거문도(하편)

 

 

오늘 남부지방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른 아침에 본 거문도의 날씨는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내 생에 있어서 이 얼마만인가?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다니..

매일 아침 7시 기상시간을 못 지키고 이불 속에서 몸부림을

치곤 했던 내가 감히 산책길에 나서다니....역시 여행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는 것만 같았다.

 

 

 

 

 

 

 

 

길라잡이의 안내에 따라 우린 막끝까지 왔다. 그러나 막상 달려 온

막끝은 쌀쌀하고 황량하기만 했었다.

 

 

 

 

 

 

 

 

 

 

 

 

 

 

 

거문도 초등학교의 모습이다.▼

 

 

<뭍으로 빠져 나오는 길...)

산책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했다. 밥맛이 꿀맛이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몇 숟갈밖에

먹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은 새벽운동 덕인지 밥 한 그릇을 다 때려치웠다. 집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뽀라도 해줄 일이었다. 오늘은 일정상 뭍으로 나가는 날이다. 아침 10시

경에 떠나는 배라고 들었는데 예약과정상 어디에선가 착오가 있는 듯 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아직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지만 하늘이 검은 잿빛이고 보면 언제

쏟아질지 모를 일이었다. 뿐만아니다.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었다. 기상 상태가 악화

되면 배가 못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나는 오늘 뭍으로 가야만 했었다. 바로 내일 내장산으로 직원들 연수를

떠나기 때문이다.

 

다행히 회장님 이하 집행부의 발빠른 순발력 덕에 뭍으로의 상륙이 불투명한 여객선

대신, 해경의 협조하에 낚싯배를 얻어타게 된 것이다. 퍽이나 다행스런 조치였다.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낚싯배라고는 평생 단 한 차례도 타 보지 못한 내겐 과분한

영광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 배가 출발하고 조금 지나 우린 들뜬 기분에 배 안에서

축배를 마시기도 했었다.

 

거문도를 출발한지 30분이나 지났을까, 배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배는 점점 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배 밖을

주시해 봤다. 산더미 만한 검푸른 파도가 밀려왔고 우리가 탄 작디 작은 배는 그

파도를 뚫고 질주하고 있었다.

 

성난 파도가 밀려오는 망망대해, 망망대해에서의 일엽편주, 그 일엽편주 안에 있는

사람들.. 겁이 났다. 무서웠다. 비위가 약한 회원들은 벌써부터 헛구역질과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노인과 바다"에서 괴물 상어를 만난 그 노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 노인은 비록 공포의 상어는 만났을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집더미 만한 성난

파도는 만나지 않았었다.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마 내 생에 이렇게 절절한 기도도 몇번 없었으리라.

하지만, 기돗발은 쉽게 먹히지 않았다. 무서운 파도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이젠 체념의 단계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도록 하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내 운명은 필시 주님의 일이리라."

 

아~! 스님께서 말씀하셨던가?  " 비워야 채워진다고.."

마음을 비우고 체념해버리니 마음이 평안했다. 조금전의 급박한 마음에서 풀려나

내 자신이 생(生)이라는 커다란 파도를 타고 아슬아슬 노니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눈을 둥그레 뜨고 배안의 사람들을 살펴봤다. 나 자신마저도 주체하지 못한 내가

이젠 오히려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딱 한 사람, 미동도 없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여유있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분, 그는 바로 우리의 회장님이셨다.

 

오랜 세월 바다를 벗삼아 바다낚시에 단련된 덕택이었으리라. 그리고 또 한 사람,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실 분..우리의 선장님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 분은 우리를 뭍으로 안전하게 보내주기 위해 지금 억센

파도와 씨름하며 손에 멍이 들도록 조그만 낚싯배의 핸들을 돌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도가 잔잔해졌다. 조금 전에 펼쳐졌던 성난 파도의

모습과 지금 나타 난 평화스런 바다..그 상극의 조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그러나 그 말보다는 오히려 이 말이

낫지 않을까?  인간은 "고생한 만큼 더 빛난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마을도 보였다. 배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였다. 두어 시간의 사투끝에 드디어 우린 뭍으로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해냈다. 결국 살아서 돌아 온 것이다. 마음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젠

축배를 드는 일만 남았다.

 

한 마디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작은 배 안에서 그나마 작은 행복을 추구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장님과 하로동선님의 바닷물이 넘나드는 낚싯배의 꽁무니에서

벌여야 했던 처절한 인내 덕이었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바로 아래 배가 우리를 뭍으로 싣고 나온 낚싯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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