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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 사진첩/강원권 산행

대암산(강원 양구군)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목표란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이 목표라는 것은 처음 설정

했을 때에 마음이 설레이고, 기대에 벅차 가슴이 부풀게 되지만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허전해지고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지는 것을 보면 분명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게 있어서 100대 명산 산행, 물론 처음부터 명산 종주를 염두에 두고 산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산이 좋아 하나, 둘 오르다 보니 100산에 근접하게 되어 마지막 몇 개의 산을 남겨놓고

다소 욕심을 내서 스퍼트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찌했든 오늘 대암산을 끝으로 내 생애에 또 하나

의 작은 목표를 이루게 된 것임은 분명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꿈을 먹고, 추억을 머금고 산다고 한다. 지금 내 나이, 분명 사람이 그리

지고 사람이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나이 임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사람대신 자연속에 동화되어 미친듯이 빗속을 뚫고 산길을 걷고 싶어

진다. 더구나 100산에서 달랑 하나 남은 대암산을 오르는 날 비가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거리며 "강행할까, 다음 기회로 미룰까?"를 반복해 가며

고심한 것이 사실이지만 결론은 "그래, 가기로 하자."였다. 이번 대암산의 산행 결정에 결정

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이 따로 있다. 내게 무척 고마운 사람이다. 폭풍우를 뚫고 강행한 산행,

기꺼이 동참해 준 그 산친구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물론 그 친구가 동행을 자처하지 않았었다면 애시당초에 오늘 대암산 산행은 물건너 갔겠지만

어쩌다가 나 홀로 산행을 추진하기라도 했더라면 애를 태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닐 뻔 했었다.

무릇 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악천우 속에서 산행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로 보이겠

지만 그렇더라도 대암산이 명산임을 감안하면 대암산은 의외로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산이었다.

 

멀리 강원도 땅 오지에 이렇게 인기척마저 없는 조용한 산을 그것도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날에

자칫 외롭고도 두려움으로 가득할 산행을 편안하고 행복한 산행으로 전환시켜 주고 귀경해서는

100대 명산 마무리 축하파티까지 주선해 준 산벗에게 다시한번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면서

비록 작은 영광이나마 그와 함께 그 맛을 느끼고자 한다.

 

 

 

산행 일시 : 2011. 6. 25(토)

산행 코스 : 생태탐방로~솔봉~후곡약수터

산행 시간 : 약 4시간

 

 

대암산 산행들머리인 생태탐방로 입구이다. 양구읍에서 이곳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오늘 이곳 양구지방의 일기예보에 의하면 정오까지는 5~9mm 정도의 비가 내리고

정오를 넘어서부터는 50mm의 호우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지금 시각이 10시

40분이나 아직까지는 잔뜩 흐린 하늘에 산 전체가 운무로 가득했다. ▼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 대암산 생태탐방로 안내표지판에 쓰여진 글귀이다.

마음이 끌리는 솔깃한 글귀였다. 부질없는 욕심이지만 정말 그러고 싶었다. 일상의 지극히 사소한

것 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아쉬움이 되어 버리는 나이, 이제 나는 꿈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꿈을 만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진심으로 사랑을 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그런 나이로 진정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대암산에 오르는 산길은 약간 가파른 오름길의 연속이었지만 편안하기만 했다.

아직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어서빨리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명산답게 깔끔한 길라잡이가 마음에 들었다.▼

 

 

 

호랑이 조형물 앞에 멈춰섰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숨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오 규원 님의   "한 잎의 여자" 중에서...

 

등로옆에는 제법 큰 물푸레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나무는 나무줄기가 단단하고 질겨서

회초리로 사용하기에 적격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참으로 많은 시인들이 물푸레나무를 노래

했었다. ▼

 

 

 

운치있는 소나무 가지위에 걸터앉은 두마리의 독수리와도 함께 했다.▼

 

 

 

지금까지 잘도 참아 주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했다. 사나운 바람을 동반한 빗줄기가 강하게

내리쏟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 일을....이 일을 어쩌란 말이냐? 나는 그만 모자를 어딘가에

놔두고 온 것이다. 새벽부터 구질구질 비가 내린 탓에 택시에.. 버스에.. 또 택시에...몇 번을

갈아타는 사이 어딘가에 내 애지중지하던 등산모를 내려놓고 온 것이다. ▼

 

 

 

갈림길이었다. 솔봉은 아직 1.4km를 더 진행해야 한다. 비가 내릴 것에 대비해서

우의도 준비했었지만 우의는 왠만하면 입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우의를 입게 되면

몸이 더워져서 땀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비를 맞고 젖으나 땀에 젖으나 몸이

젖긴 매일반이라는 생각에서다. ▼

 

 

 

또 다시 갈림길이었다. 우리는 솔봉을 오른 다음 다시 이곳으로 와서 후곡약수터 방향으로

하산하게 되어있었다. 우의 대신 우산을 썼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옷은 이미 젖어들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비에 젖은 풀잎을 스치며 걷다보니 아래 바지는 물론이고 등산화까지

젖기 시작했다. 모자가 없는 내 머리는 이미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생쥐꼴"

그 자체였다. ㅠ

 

 

 

사진에서는 대암산 정상으로 표시됐지만 사실 이곳은 1,129m의 대암산 중간 봉우리이며,

현재는 이곳까지만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나, 향후 군부대등과 협의를 거쳐 대암산 정상

(1,304m)까지 등산로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암산(1,304m)은 태백산맥의 준령으로서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 그리고 인제군 서화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산으로 남한에서 고층습원인 용늪이 소재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는 통제

구역인 정상에 오르려면 이곳 마을에 거주하는  가이드를 섭외해서 함께 오르면 가능하다고

한다. 가이드 비용은 100,000원이라고 한다. 산악회 산행때는 고려해 볼만 하겠다.▼

 

 

 

아래 안내표지판은 이곳에 오기 전에 사무실에서 특별제작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100대 명산의 하나인 대암산의 증표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이곳까지 와서

저런 증표하나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겠는가? 부디 저 표지판이 산을 좋아

하는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증표로 오래도록 활용되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대암산 산행은 이곳 솔봉까지이다.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아쉬웠다.새벽같이

일어나 먼길 마다않고 이곳까지 왔는데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이렇게 바라만

봐야하다니...내 나라 내 땅 내 산천을 마음대로 걸어 볼 수 없다니.. ....

 

하지만 천연보호구역(용늪)으로 지정된 그곳을 무방비 상태로 일반 산꾼들에게 개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단지 정상에 못 올라 허기진 어느 산객의 지나친 욕심 탓이리라...

 

 

 

녹녹한 숲길을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산길 가장자리에 연리지가 있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걸을 때에 종종 눈에 띄였던 연리지, 서로 다른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다가 다른 나뭇가지와 엉켜 서로 맞닿은 채 살아간다고 해서

연리지라고 부른다.

 

연리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오랜 시간 마음과 사랑이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동화되고 겉모습까지 닮아

가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둘이지만 한 몸처럼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사람

들은 사랑의 나무라고 부른다. ▼ 

 

 

 

몸은 젖을대로 젖어있었고 머리는 생쥐머리였지만 그래도 아쉬움에 지나 온 산길을

뒤돌아 보았다. ▼

 

 

 

갈림길이었다. 옹녀폭포가 지근거리에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옹녀폭포에

다녀오고도 싶었으나  솔직히 말해 몸이 너무 젖어 있었기에  어서 빨리 하산

하고 싶은 마음에 옹녀폭포를 눈으로 보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그 대신 폭포에 얽힌 사연만 훔쳐듣기로 하였다.

 

옛적에 옹녀와 변강쇠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정분을 나누었는데

이를 보고 크게 노한 산신령의 지팡이에 얻어맞아 옹녀는 이곳에 엎어져 바위가

 되었고, 변강쇠는 이곳에서 50m 지접 아래에 굴러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었으며 이 바위를 옹녀의 엉덩이라 하여 옹녀폭포라 부르고 있다.▼

 

 

 

후곡약수터는 아직 2.5km를 남겨두고 있었다.▼ 

 

 

 

양구군 후곡리 대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후곡약수터는 1880년, 조선 말엽에 발견되었다.

철분과 불소가 풍부하고 탄산가스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위장병에 특효이며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

 

 

 

비 내리는 날의 대암산 산행, 오늘 이 산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100대 명산 산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음인가?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분명 보람있고 영광된 일이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목표가 설정

될때까지는 허전하다. 상실감이 든다.

 

이제 그 허전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상실감을 매꿔가기 위해서라도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해 놓지 않으면 안된다. 대암산은 보기 드문 전형적인 육산이었다. 육산은 흙이

많은 산이라는 뜻이다.  흙 한 줌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흙 한 줌속에서 열매가 열리고

흙 한 줌속에서 푸르름이 피어나고, 흙 한 줌속에서 사랑이 꽃 피운다.

 

비를 흠뻑 맞고 생쥐꼴이 되서도 새 생명을 잉태시켜주고 그것들이 쑥쑥 자라게 해주는

원동력인 흙을 마음껏 밟아 볼수 있었던 산행, 좋은 친구와 하루종일 정감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산행으로도 대암산 산행은 의미있는 산행이었다. 이제 우린 귀경하기

위하여 양구터미널로 다시 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도 함께 불고 있었다.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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