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

어머님을 뵙고 와서....

 

 

(1)

오늘(5월 14일)은 소위 "49제"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를 뵈러 가는 날이다. 정확히 말해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는 날은 5월 18일이었지만 어차피 유교적 의미의

"49제"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평일을 피해서 미리 앞당겨 토요일에 행사를

기로 하였다.

 

다시 말해, "49제"라는 의미 보다는 온 가족들이 어머님 묘소에 한데 모여 어머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이른 아침에 식구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주말

나들이 길은 언제나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하리 만큼 정체가 심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무려 5시간 여만에야 어머님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님께서 이승을 떠나신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들이 한데 모인 것이다. 정성스레

준비해 간 음식을 상석(床席)위에 차려놓고 추도예배를 드렸다. 이 추도예배는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이나 다름없었다. 교회 권사의 직분을 갖기도

하셨던 어머님께서는 평소에도 늘 내가 교회에 나가기를 바라셨고 그리하여 제사를

모시는 것 보다는 추도예배를 원하셨던 것이다.

 

어머님의 바램이 그러할진데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에 나가게 되면 일요산행은 꿈도 못꾼다. 물론 교회 다녀와서도  주변산 정도는

오를 수 있겠지만 지방 산행의 꿈은 접어두어야 한다. 많은 궁리끝에 내린 결론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벌써 4차례나 다녀왔다.

 

따라서 이제 우리 집에선  자연스럽게 추도예배로 제사라는 의식을 대신하게 되었다.

간단히 묘소에서 추도예배를 드렸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족들을 배려하여 오늘

만큼은 어머님께 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로 하였다. 행사가 끝난 후에

우리 가족들은 나무 그늘 밑으로 모여, 준비해 간 불고기를 구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었다.

 

 

(2)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홀로 조용히 다녀 올 곳이 있었

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때 그 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빈 집으로 남아 있다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쓸쓸했다. 폐허가

된 그 집터에 앉아 있노라니  흐릿한 유년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지만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시 옛길을 거닐어 어머님의 묘소로 갔다. 평화와 적막이 동시에 흐르는 한가운데

에서 난 조용히 어머니 이름을 불러 보았다. 우리 어머니...장하신 정 소녀 여사님~!

대대로 봉사와 희생의 삶을 강요 당해 온  우리 어머니, 그러나 예쁜 이름처럼 한점

티없이 맑고 청순한 삶을 이어 오신 내 어머니....

 

어머니 묘소에서 더 머물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어머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

지만 식구들의 성화에 귀경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귀경길은 의외로 정체지역이

별로 없었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 후,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거실장의 서랍을 열어 보게 되었다.

 

아~! 그곳에서 나는 문득 어머니의 포근하고도 섬세한 체취를 느껴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바로 내 어릴 적에 한학자이셨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내게 직접 전수시켜

주신 한서(漢書)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한서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책들은 좀이 먹고 낡아지면서 하나 하나 사라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는 어머님께서 고향집을 떠나오시면서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

친척아저씨께 모든 책들을 기증하므로써 할아버지의 작품들은 내게 전해진 게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그 시절에 내가 익혔던 책들 중 일부가

어머님의 정성으로 다시 내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3)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매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익혀 왔다. 동네 형님들이나 아저씨뻘 되시는 분들과 함께 서당에서 정식으로

수업을 받아온 것이다. 온돌방의 맨바닥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율동에 맞춰

글을 읽는 정경(情景)은 지금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이처럼 한문은 주로 소리내어 읽는 성독(聲讀)을 해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한다. 당시에는 요즘 책 읽듯이 눈으로 읽는 묵독(默讀)을 하는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독서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훌륭하신 훈장님을 할아버지로 둔

덕에 남들 보다 빨리 한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그때 터득했던 하나

하나의 글귀들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오늘의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이라 확신한다.

 

그 당시 내가 익혔던 책들은 추구(推句)와 학어집(學語集), 그리고 명심보감까지

였었다. 그러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자연스레 한학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소학 이상의 한학을

터득하지 못한 것이 뭇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추구(推句)란 글자 그대로 싯구에서 가려 뽑아 놓은 책을 말한다. 한학(漢學)의

초보자들에게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아름다운 5언의 시를 추려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 당시에는 자구 하나 하나의 의미를 터득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한 글자라도 더 많이 익힐가에만 몰두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 돌아가신 어머님의 정성으로 할아버니께서 친필로 작성해서 제작하신 그것을

통하여 내가 직접 교육을 받았던 바로 그 책이 오늘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기에 그 시절의

기억을 반추해 보면서 책의 일부 내용을 음미해 본다. 참고로 아래의 한서들은 지금

으로부터 40 여년 전에 내가 직접 익혔던 책의 진본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백일 천년경..강산 일화병..(밝게 빛나는 해는 천년의 거울이요, 강산은 만고의 병풍이라)

세사 금삼척..생애 주일배..(세상일은 석자 거문고에 실어 보내고,인생은 한잔 술로 달래리)

서정 강상월..동각 설중매..(서쪽 정자에는 강위로 달이 뜨고, 동쪽 누각엔 눈 속에 매화가

                                                    피었구나)

월위 대장군..성작 백만사..(달은 대장군이 되고, 별은 백만 군사를 만들었도다.)

 

저렇게나 오묘한 뜻이 담겨있는 저렇게나 맛깔스러운 문구들을 왜 당시에는 터득하지

못했을까? 변명같지만 그 주된 이유는 아마도 철이 덜 든 나이탓이리라.

 

 

 

 

 

 

(4)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주일(主日)을 맞이했다.

집사람과 11시의 3부 예배를 보고 귀가했다. 어제 주말 산행을 못한 터라

몸이 찌뿌듯했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부랴부랴 등산장비를 꾸려서 삼성산으로

향했다.

 

시간상으로 오후 2시가 다 됐기에 바로 집 뒤에 있는 모락산을 오를까도 생각했

지만 두어 시간 산행으로는 내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삼성산을 택한 것이다. 삼성초등학교 옆의 산길을 들머리로 삼아 걷기로

하였다.

 

초록의 물결들이 끊임없이 출렁대는 산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갔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땀이 쏟아져 내리니 마음이 통쾌하고 후련했다.

맑고 향기로운 바람을 타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산길을 걸으니 행복의 힘이 솟는듯

했다. 아~! 문득 문득 푸른 계절에 우뚝 서 계셨던 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아래 사진은 학우봉의 모습이다.▼

 

 

 

학우봉에서 내려다 본 경인교대 캠퍼스이다.▼

 

 

 

삼성산 정상이다.▼

 

 

 

삼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통신대이다.▼

 

 

 

통신대에서 본 연주대의 모습이다.▼

 

 

 

삼막사(三幕寺)이다. 삼막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 17년

(677년)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 도선국사가

불상을 모셔 관음사로 부르다가 사찰이 융성해지며 도량의 짜임이 중국 소주의 삼

막사를 닮아 삼막사로 불리었다고 한다. ▼

 

 

 

'자유 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례 과제물  (0) 2016.10.12
어머님의 첫 기일을 맞이하며...  (0) 2012.03.17
별 헤는 밤..  (0) 2010.08.13
등산 용어  (0) 2010.02.11
행동하는 양심, 끝내 쓰러지다.  (0) 200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