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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자작 글 모음

어머님은 떠나셨습니다.

 

 

(1)

지난 3월 30일, 사무실에 출근하여 10여분쯤 됐을 무렵에 어머님이 잠시

머무르고 계신 요양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양원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족들에게 전화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기에 다소 불길한 예감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께서 갑자기 호흡장애가 와서 지금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여두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 전화를 끊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가는 도중에

병원에 먼저 도착한 집사람으로부터 이미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너무 허망한 일이었다. 실로 억장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신지 꼭 24일 만에 상상도 못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

나고 만 것이다. 어머님께서 갑자기 우리 집에 오시게 된 배경은 이렇다.

 

김해의 큰 누나 집에 계시던 중 머리 통증을 호소하시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백약을 써봤지만 별 효험이 없어 수십 년 전에 비슷한 증상으로

진료를 받고 완쾌하신 바 있는 00대 부속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다하시기에

급히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2) 

우리 집에 오신 다음날 바로 병원에 진료예약을 하고 MRI 촬영과 신경과

진료를 마치고 약을 처방받아 투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님께서 불면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불면현상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 오신 날부터 잠을 못 주무신 것 같았다.

 

아무리 젊은 사람들일지라도 단 하루만 밤을 지새워도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90대 노인께서 무려 3~4일을 불면에 시달리셨으니 그 고통이야 말해 뭘 하겠

는가, 어머님께서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해서는 아니 될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신 분들이 나타난다고도 하시고,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시는 등 평소

어머님답지 않은 행동들을 보이셨다.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첫째 날은 온 식구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어머님께서 진정기미를 보이시고 잠을 청하셨던 새벽녘에야 간신히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출근을 위한 기상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일어나 어머님이 계신

방을 조심조심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머님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집 사람에게

알리고 어머님을 찾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행히도 어머님은 집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셨다. 하지만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시면서 어머님은

오들오들 떨고 계셨다.

 

내용인즉, 소란을 피워 식구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으니 늦게라도 식구들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일부러 밖으로 나오셨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미뤄보아 어머님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집에 들어오셔서는 필기구를

달라고 하시더니 계속해서 뭣인가를 쓰고 또 쓰셨다. 아마 온전한 정신을 보존하기

위한 처절한 자구책 같았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 다음날로 요양원의 신세를 지셔야 했다. 어머님의 소란에 대해

단, 하루를 참아내지 못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불편을 핑계 삼아 우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고 말았다. 참으로 불효막심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이웃들의 시선이 따갑다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더 지켜보고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았는데 왜 그렇게 성급한 결단을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3)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시고 일요일에 면회를 갔다. 얼굴에 멍 자국이 있고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어머님께서는 “죽은 줄 알았던 내 자식과 내 며느리가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하시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직 완전한 컨디션을 회복했다고

보긴 힘들어도 어머님은 그런대로 맑은 정신을 보존하고 계셨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 어머님은 영원히 불귀의 몸이 되고

말았다. 장구한 세월을 고생고생 하시면서 자식들을 위해 그만큼 헌신하셨으면

이제 편히 쉬시면서 사실 때도 됐건만 내 어머님은 그렇게 떠나시고 말았다.

어찌 보면 힘들고 복잡하고 편치 못한 우리가 사는 이 세상보다는 피안에 이르는

길이 훨씬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당신의 빨래를 며느리나 딸 등 다른

사람에게 일체 맡기지 않으시고 손수 처리하셨던 정갈하신 우리 어머니, 젊은

시절에 가난이라는 한을 품고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고향 앞산의 황토밭과 굽이

굽이 고샅길에 한 많은 삶의 발자취를 남기셨다.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내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겨주셨다. 큰 아들인 너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셨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한 말씀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고, 또 죽을

때는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게 깨끗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거듭거듭

하셨다. 물론 막내아이의 입영 걱정도 잊지 않으셨다.

   

 

 

 

 

 

 

 

(4)

십 수 년 전 윤달이 든 어느 해였다. 어머님께서는 친히 당신이 입으실 수의를 준비

하셨다. 자식들의 걱정을 한 가지라도 덜어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입관을

하기 전에 수의를 입혀드렸다. "나야 너희들만 잘 되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느냐.."

살아생전에 나직이 속삭이시던 그 한마디가 오늘 어머님이 이 세상을 떠나 바로

그 옷을 입으신 날, 내 가슴을 울리고 말았다.

 

입관을 하면서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굴 한쪽에 새파란 멍 자국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나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어머님께서는 잠시 정신을 잃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란을 피우며 불편을

준데 대한 자책감으로 당신의 얼굴을 마구 자학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어머님의 속 뜰은 깊고도 넓으셨으며 그렇게도 어머님의 자존심은 강하기만 하셨다.

 

수 만 송이의 국화꽃 향기와 함께 어머님을 저 세상으로 편히 보내드린 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토록 투명하고 쾌적한 하늘 아래서 당신의 아들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 앞에서 그저 서성거리기만 해도 내 영혼은 맑았고, 세상 사는데

거칠게 없는 것 같았는데 이제 나는 이 허허로움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내게 뉘라서 당당한 삶의 좌표를

제시해 줄 것인가? 하지만, 어머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너무 답답해 할 일만은 아니다. 어머님은 이 세상을 떠나고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어머님은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신다.

 

자식이 부모님을 여의면 죄인이라고 한다. 살아계실 때, 제대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보면 틀림없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죄인이

분명했다. 평소에는 일간지의 "부음"을 보지 못한다. 남의 이야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님이 이 세상을 하직하시던 날, 나도 그 죄인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이다.▼

 

 

(5)

진한 솔잎 색깔로 변해버린 계곡에 그리고, 그 계곡을 쓰다듬던 맑은 물소리가 묻어

나오는 곳, 평화로운 고향땅 그곳에 어머님은 영원히 계신다. 그곳에서 말없이 우리

들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어머님의 영혼이 내 손바닥에 무늬로

남아있다. 나는 그 무늬에서 오늘도 어머님의 체온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장해온 동안, 내 몸 어느 한곳이라도 어머님의 사랑이 배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 동안 지금껏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그 흔한 말

한마디 못해 드렸다. 뒤늦게나마 절절하게 말씀드린다. 이렇게라도 해야 다음에 내가

죽어 하늘나라에서 어머님을 만난다면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다.

 

“어머님,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꽃 멀미에 시달리는 고운

계절에 꽃바람 타고 우리 곁을 떠나신 내 어머님,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님께서 영면하실 곳을 정성스레 정리하고 있다.▼

 

 

 

 

묘소를 정리하고 제를 올렸다.

 

 

 

 

 

 

 

맨 아래 우측에 있는 묘소가 어머님의 묘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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