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기차여행, 이제 경춘선 열차는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새롭게 경춘선 전철시대가 열렸다. 작년 연말 경춘선 복선 전철시대가 열리면서
최대의 수혜자는 물론 전철역 역세권 인근의 부동산 소유주나 서울 근처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이겠지만 그 분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65세이상 어르신들이 최대 수혜자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다음 수혜자는 누구일까? 그야 두 말할 것도 없이 등산객들일 것이다.
상봉역에서 춘천역까지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수 많은 산들이 길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은 이미 거의 모든 산의 산길을 걸어었다.
그러나 산은 절대로 한번만 가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나
이기에 멋진 겨울산을 상품으로 내걸고 수 많은 산악회에서 유혹하곤 했었지만
오늘은 기꺼이 경춘선 복선전철의 영향권에 있는 산을 찾기로 하였다. 앞으로도
수 없이 신세를 지게 될 경춘전철, 이제 그 품속으로 빨려가보기로 한다.
산행 일시 : 2011. 1. 29(토)
산행 코스 : 대성리역~민박촌~운두산~깃대봉~청평역
산행 시간 : 약 6시간
누 구 랑 : 좋은 벗이랑....
어젯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운두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마석에서 하차하여 수동리 가는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수동면
사무소와 원적사를 지나 산에 오르는 방법이 있었고,
두번째는 대성리역에서 하차하여 민박촌을 지나 산에 오르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우린 마석에서 내려 다시 환승하는 것이 귀찮다고 판단
하여 조금 더 많이 걷는 한이 있더라도 두번째 방법인 대성리역에 내려
곧바로 산에 오르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사진은 경춘선 전철 대성리역이다.▼
대성리역에 하차하여 일단 길을 건너기로 하였다. 몇몇 가게에 들러 운두산 가는
들머리를 묻자, 모두 다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안내표지판도 없었다. 답답했다. 하지만,
산의 지형을 살펴보고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들머리를 찾아나섰다.▼
여기 저기 한 참을 헤매다가 몇 분의 산객들이 오르는 좁은 등산로를 발견했다.
이 곳이 운두산을 오르는 등산로인지 조차도 확인 할 길이 없이 무작정 다른 분들의
꽁무니만 보고 오른 것이다.▼
능선길을 따라 계속 걸어나갔다. 무려 1시간 30분 여를 걸었을까? 그 동안에
단 한개의 길라잡이도 구경할 수 없었는데 산뜻한 길라잡이가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반가웠다. 고마웠다. 이 길이 과연 맞는 것인지.. 산길은 터벅터벅 걷고
있었지만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참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산길이었는데 저 길라
잡이 하나가 우리의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주고 있었다.
은두봉 정상2.6km, 청평면 원대성리3.2km..이제 보니 은두봉의 산행들머리는
원대성리에서 올라오면 편한 길일것 같았다. ▼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저 하찮은 길라잡이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연속해서 길라잡이가 나타났다.제기랄,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길라잡이가 비교적 산길이 명확한 곳에서 연속 나타날 것은 "또 뭐람?
우린 백두대간 마루금을 걷듯 단 한차례의 휴식도 없이 계속 길을 걸어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가 너무 춥고 주변에 눈이 많이 쌓여있어 쉴만한 장소를
물색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두시간 여를 걸어왔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와서
적당한 장소에서 행동식을 먹었다. 그리고 조금 오르니 해발 696m의
운두산 정상이 나타났다. 길라잡이의 표기는 은두봉이라 했고 정상석은
보는 바와 같이 운두산이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분명한 설명이 필요
할 것 같았다. ▼
얼굴과 안경이 얼었다가는 땀에 젖고 땀에 젖었다가는 다시 얼고...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다 보니 몰골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인증 샷은
필수 요소이기에...▼
이제 하산길은 어디로? 방향은 크게 세가지였다. 지금 올라 온 원대성리 방향,
그리고 축령산과 깃대봉 방향이다. 아무리 봐도 그냥 곧바로 하산하는 길은 원점
회귀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산꾼으로서는 절대 금기시 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설사
백번양보해서 그 길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거리가 무려 5.8km에 이르는 결코
만만찮은 코스였기에 그 길을 포기하고 깃대봉 정상을 경유해서 청평역 방향으로
하산키기로 하였다.▼
겨울 숲 사이로 아스라히 청평땜의 모습이 보였지만, 북한강의 유유히 흐르는
물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꽁꽁 얼어붙은 얼음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운두산에서 깃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물론 러쎌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만큼 힘이 들었다. 그러나 우린 마구 달렸다. 낙엽이 쌓인 길위에
다시 눈이 쌓여있으니 산길의 컨디션은 좋을 리가 없었다. 산길을 달리다가 몇 차례
엉덩방아도 찧어야 했었다. 어느 사이,깃대봉은 이제 1.6km를 남겨두고 있었다. ▼
깃대봉 정상 오르는 길 막바지에 추위가 엄습했다. 스틱을 잡은 손의 손까락이 몹시
시려왔다. 장갑을 뺀채 손까락 마사지를 하고 다시 장갑을 끼고 스틱을 잡았다.
깃대봉정상은 이제 900m 남았다. ▼
드디어 해발 644m의 깃대봉 정상이다. 알려진 대로 깃대봉은 가평군에만
깃대봉이 2개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청평휴게소 뒷산인 깃대봉과 대금산
뒤의 가평군 두밀리의 깃대봉(910m)이 그것이다. ▼
이제 이곳에서 청평역까지는 4.6km를 더 가야한다. 아무리 급해도
우린 이곳에서 뜨거운 커피한잔에 추위를 달래는 여유를 가졌다. ▼
햇볕은 있었지만 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안면에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방풍자켓의 모자까지 눌러썼다. ▼
축령산이 잎을 떨군 앙상한 나목사이로 그 모습을 내밀고 있었다. ▼
달렸다. 산길을 마구 달렸다.추위를 피해서...허기를 달래기
위해서....아직도 청평역은 2.1km나 남겨두고 있다.▼
청평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휴게 시설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하산에 성공했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그러고 보니 산길을 마구
달리면서 무릎보호대도 착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다 걷고보니
이제 긴장감이 사라진 것일까? 산길에서는 늘 차분하고 겸허하라 했는데...
어느 식당 앞에서 청평 전철역의 위치를 물었는데 마치 정육점을 겸한 식당이었다.
정육점 식당은 아무래도 일반 식당과는 고기 맛이 뭐가 달라도 다를 것 같아서
그냥 그곳에서 생고기를 안주삼아 몇 잔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정신없이 몇잔의 술을 들이키고 뜨거운 방에서 꽁꽁 얼었던 몸을 녹이다 보니 어느 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전철시간에 맞춰 전철역으로 향하였다. 청평역은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이렇게 해서, 경춘선 전철시대를 맞아 내 첫발은 운두산을 딛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