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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자작 글 모음

불효자는 웁니다...

 

어제는 비가 오고 눈이 내렸습니다.
한줄기 매서운 북서풍을 동반한 비보다는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더욱 슬펐습니다.
조용히 차곡차곡 쌓이는 눈보다는

바람에 흩날리며 땅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눈이 항상 더 슬펐습니다.

아버지,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 찢어지는 후회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니
이제 또다시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나 봅니다.

아버지, 기억나시나요?
우리 집 살림밑천이라고 아버지께서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던
소를 팔려고 저와 함께 사오 십리 길을 걸어
우시장에 가셨던 일,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련하신 몫돈은 도회지로 유학 나온

저희들에게 여지없이 쓰여지고 말았습지요......

아버지,
아버님께서 그때 아무리 태연하신 척 하셨어도

저는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피붙이처럼 소중하게 여기신 소를 팔고 얼마나

허탈해 하셨는지를.....

 

내리쬐는 햇볕에 그을릴 대로 그을리신

아버지의 얼굴과 깊게 패이신 얼굴의

주름살을 바라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담에 커서 반드시 부모님을 행복하게 모셔

드려야겠다고 말입니다.

아버지,
그러나, 그러나....
저는 제 스스로 한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자식된 입장에서

도저히 하여서는

안될 패륜행위를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새삼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렇게라도 독백을 해야

제 마음이 편할 듯 싶었습니다.

아버지, 노년에 고혈압으로 고생 고생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늘
"며느리가 지어 준 밥 한 그릇 얻어먹고 죽었으면
더 이상 원이 없겠다"라고 그러셨다 들었습니다.

 

제 위로 누나 둘을 낳으시고 아들놈 하나가 간절하여

지극 정성의 공을 드리셨다는 우리 아버님,

너무 많은 연세이셨지만 드디어 아들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아버지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맏며느리를
보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축 없이는 거동이 어려우셨던 터라,

주위사람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버지께서는 지탱하시기조차 어려운 몸을 이끌고

굳이 예식장으로 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한사코 반대했습니다만,
결국 아버님께서는 오시고 말았습니다.

"늘그막에 태어난 아들자식의 혼례식이

얼마나 보고싶으셨으면 저리도 무리를 하셨을까?" 라고

생각했어야 백 번 옳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만 자식으로써 해선 안될 한마디를

퉁명스럽게 내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어쩌실려고 이러셨어요? 시골집에 그냥 계시면
저희들이 어련히 찾아뵐까 봐서요....."

말의 겉모습만 보면 아버지의 병환을 우려하는

효성 어린 마음에서 드린 말씀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그 보다는 예식장에 오신 여러 하객들께

일그러진 아버님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을 앞세운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였습니다.

아버지, 저의 배은망덕하고 패륜적인 언행을

보시면서 얼마나 실망하셨으며

얼마나 서운하셨습니까? 그

그때 그 일로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후회를 하고

아버님을 행복하게 모셔드리려 몇번이고

다짐했습니다만, 아버님께서는 그 이듬해,

당신의 손주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효성스런 자식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부모님의 무덤에 차마 칼을 들이댈 수 없어

산소에 자란 풀들을 손으로 직접 뜯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매년 남에게

아버지의 산소관리를 맡기고
오직 나만의 편의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데, 저는 역시 나이만 먹었지

아직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 봅니다.

아버지,

그렇다고 너무 걱정 마시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의 손주들과 함께 자주 찾아뵙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약주도 올리고

제 손으로 직접 시원하게 이발도 해 드릴게요,
그리고 아버님을 여의시고

홀로 살아오신 어머님께도 아버님께 다하지
못한 효성을 모두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