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4일.
한국축구가 대망의 16강을 향한 포르투갈과의
예선 마지막 일전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지구를 닮은
둥근 축구공 하나가 하루종일 내 뇌리를 지배했었기에
일각(一刻이 삼추와 같은 지루한 마음으로 퇴근시간을
맞았다. 그러나 아직 2시간 30분이라는 긴긴 시간을
더 기다려 내야했기에 가까운 호프집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건국이래 민족 최대의 축제한마당이라 할 수 있는
월드컵의 열기를 화제로 몇 잔을 연거푸 마시다 보니
어느 새, 경기시간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집에 가서 마음 편히 시청할 심산으로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벌써 귀가 길 좌석버스의 라디오에서는 타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듯 아나운서의 상기된 목소리가
차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여기는 월드컵 16강을 향한 우리 한국과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결전이 치러 질 인천의 문학경기장입니다.
우리 선수들 오늘이야말로 어머니의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승리를....조국에 승리를 온 민족에 바칠 것을
부탁드립니다.
정겹고 낯익은 목소리, 그리고 국민적 희망을 불러
일으켜줬던 이 목소리는 가난에 짓눌려왔던 국민들에게
분명 장엄한 카타르시스가 되기에 충분했었고
이 목소리를 듣노라면 누구라도 애국자가 되고 말았었다.
임택근 아나운서와 더불어 감성적인 목소리 하나로
60년대를 풍미했던 이광재 아나운서, 그가 꼭 32년 만에
70세의 나이로 고국에 돌아와 지금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임택근 아나운서 역시
월드컵중계방송을 위하여 귀국했다고 한다.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킹스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TV가 없던 시절, 중계방송이 있는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트랜지스터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많은 가슴들을 조여야 했던가?
오늘 나는 그 시절의 감회에 젖어 그가 전하는 중계방송을
잠시 들어보는 행운을 잡았다. 그러나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는 선명한 화질, 웅장한 음향 , 슬로비디오,
반복재생기능, 컴퓨터에 의한 그래픽영상 등 현대식
첨단시설을 갖춘 TV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복잡할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중계방송에 있어서는
보는 것은 선명한 TV로 보되, TV 볼룸을 최대한 낮추고
듣는 것만큼은 라디오방송에 의존해 보는 것도 색다른
관전 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날의 경기결과는
우리나라의 1:0 승리로 끝났었다. 지금까지 잘 싸워준
태극전사들..22일의 스페인전에서도 선전을 기대해 본다.
'나의 문학세계 > 자작 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오년 한 해를 보내면서... (0) | 2009.05.24 |
---|---|
글을 쓴다는 것... (0) | 2009.05.24 |
해도 너무합니다. (0) | 2009.05.24 |
불효자는 웁니다... (0) | 2009.05.24 |
허무한 마음... (0) | 2009.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