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의 창의문...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태종 13년(1413년)에는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는
커다란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높이 342미터의 북악산 정상... 그러나 이 산을 오르기까지에는 무려 수십년을 기다려야만 했었다.
우리 민족의 정기가서린 북악, 그리고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곳에서 우리 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상 표지석이 북악산 대신, 백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이채롭다.
산행 일시 : 2008. 1. 19(토요일) 산행 코스 : 홍련사 쉼터=>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 산행 시간 : 약 2시간 가는 방법(대중교통) : 범계역=>한성대입구(6번출구)=>1111번 지선버스(종점)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되어 한양 천도계획을 명하고 태조4년에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성곽은 북악산(342미터),낙산(125미터), 남산(262미터)인왕산(338미터)를 잇는 총 길이59,500자(약 18.2킬로미터)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을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이곳 북악산은 북한군의 공중위협으로 부터 청와대를 방호하기 위하여 1979년 10월 15일 부터 북악통제대 및 발칸진지를 설치 운용한 자리이며 2000년 9월 9일 부터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이곳 북악산을 우리가 살고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영원한 쉼터로 가꾸기 위해 옛모습으로 복원하다. 민족과 함께 영원히 살아 숨쉬길 기원하며.....
북악에서 바라 본 주변경관... 북한산의 모습과 인왕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 스카이 웨이가 펼쳐지고 있다.
북악산 청운대... 얼핏 북악의 정상처럼 보이나 아직 정상은 더 올라야 한다.
청운대와 청와대... 옛부터 북악에는 푸른 빛이 서렸나 보다.
북악산 청운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북한산을 뒤로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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