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세상살이가 힘들고 울적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고,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여행이 좋다고 한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군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 역시 여행, 그것이 무척 가고 싶었다.
불과 두어 달 전에 다녀 온 해외여행이었지만 마음 속으로 새로운 여행지를 결정해 놓으면
그 순간부터 어서 빨리 떠나고 싶었고 내 속은 문드러졌다. 밤잠을 설쳐가며 괴로워했다.
그저 얼굴만 붉히고 깊은 밤 이불 안에서 발차기만 열심히 했다.
그렇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기자. 되게 오래 살것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도
못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
나자. 여행을 통하여 구름을 사랑하던 헤세를, 별을 기리던 생텍쥐페리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
해하여 보도록 하자.
이번 여행은 몽골 여행이다. 그것도 40여년 지기인 팔일회 회원들과의 뜻깊은 여행이다. 사랑
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 그럼 몽골이라
는 나라로 훌쩍 떠나 어색한 시.공간에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삶에 잔잔히 녹아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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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제주항공 7C 5203 여객기는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지 약 3시간여 만에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되었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첫 여행일정이 시작되었다.
몽골땅에서 첫번째 들린 것은 슈퍼마켓이었다. 현지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용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행은 이것 저것 다양한 식품들을 구입하였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른
아침에 조식을 하였기에 시장끼가 느껴졌고 뿐만아니라 오늘 중식은 일정에 없다고 하니 위장
이 없다싶이 한 내겐 끼니를 때울 기회가 왔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물론 우리 일행은 이곳 수퍼마켓에서 빵과 음료로 중식을 해결하였다.♥

수퍼마켓에서 중식을 해결하고 목적지인 징기스칸 마동상으로 향했다. 포장 도로인지 비포장
도로인지 모를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도로 양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은
대자연이 주는 신비함과 아름다움그 자체였다. ▼

뿐만 아니었다. 초원 곳곳에는 수 많은 양떼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볼 듯한 정경이었다. 덕분에 우린 불편한 도로사정 따위는 이미 잊
고 있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징기스칸 마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40미터 높이의 웅장한 징기스칸 조각상,
첫눈에 "어마어마 하다."는 말 외엔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말의 꼬리를 따라 올
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지만 때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따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있어서 우린 좁디좁은 통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야 했다. ▼

전설에 따르면 징기스칸이 이곳에서 금빛 채찍을 발견했기 때문에 조각상을 설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징기스칸 마동상은 세계에서 말을 형상으로 한 조형물 중 가장 크다고
한다.▼

마조각상 내부에는 몽골제국 이전의 훈 제국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을 비롯해
카페와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몽골의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자~ 그럼 몽골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징기스칸이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징기스칸은 몽골제국의 초대 카간이다. 몽골초원의 허허벌판 위에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제국을 건국했으며,
13세기 구대륙을 제패하여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여러 의미로 크게 바꾸었다. 이후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를 개창한 이후 칭기즈 칸에게 태조라는 묘호를 올렸다.
칭호인 칭기즈 칸은 1206년부터 칭하기 시작했다.
태무진 보다 세력이 더 컸던 의형제 자무카는 내심 칸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주르킨 씨족 등의
강력한 지지로 태무진이 칭기즈란 칭호를 받고 칸이 되었다. 이후 자무카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하여
멋대로 "온 세상의 왕"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구르 칸에 올라 칭기즈칸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상당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진압되었고 자무카는 패주하는 도중 부하의 배반으로
칭기즈 칸에게 붙잡혀 사형 당한다.




징키스칸 마동상 관람을 마치고 오늘 최종 목적지인 유목마을로 가는 길에는 "어워"라는
이름의 돌무지가 있었다. 몽골의 샤머니즘을 보여주는 우리의 서낭당과 같은 의미가 있
는 장소이다.
기왕 서낭당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서낭당에 대해 살펴보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 보기로 하자. 서낭당, 성황당, 국수당, 국시당, 서낭당 등은 모두 우리의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사당이라는 뜻으로 같은 의미이다.
보통 서낭당이라고 할때 사당은 당집이라 하고 돌무더기나 서낭나무만을 일컬어 서낭당
이라 부를 때도 있고 아예 당집은 없이 서낭당 돌무더기나 오방천이 걸쳐져 있는 당산나무
(서낭나무)만 있는 경우도 있다.
호젓한 길목, 외로운 고갯길에 이르면 의례히 서낭당이 나타난다. 비와 바람에 시달린 장
승의 얼굴은 싸늘한 돌무더기에 발등을 묶고 그냥 묵묵하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고 쓴 먹글씨도 세월따라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곤 한다.
영험하다는 나이 많은 신목(神木)에 금빛 새끼줄과 장식을 달아 돌을 쌓는다. 또한 사당을
지어서 신의 영역임을 표시하고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조성된 일종의 토
템(Totem)이다. 또한 서낭당의 나무를 베면 저주를 받는다는 다소 오싹한 얘기도 있다.
내 어릴적 외갓집 가는 길에도 서낭당이 있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가끔씩 외할머니를
찾아갈 때면 이곳 서낭당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어린 나는 단순 호기심에서 한 번 쳐다
보고 지나치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예외 없이 서낭당 옆에 있는 돌무덤에 정성스레
돌을 하나씩 쌓으시며 치성(致誠)을 드리시곤 했다.
이국 땅에서 만난 돌무덤, 이 돌무덤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차피
기도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산이다. 이성과 지성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기도
의 힘이 필요하다.
삶의 길목에서 나를 꿋꿋하게 받쳐준 힘, 기도는 역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돌무
지를 돌며 여행의 안녕을 빌어본다. 마음 속으로는 물론 유일신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을 경배하면서다.
이 세상에서 행동하고 나서 결코 후회없는 세 가지는 기도와, 여행 그리고 샤워라고 하는
데 그 말이 역시 진리처럼 느껴진다.▼

돌무지 바로 앞에 독수리 두마리가 발을 묶인 채로 앉아있다. 관광객들에게 3불을 받고
날개를 활짝 편채 관광객 손끝에 내려앉아 사진을 찍는다. 아무리 돈벌이가 어렵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마음껏 창공을 날아다녀야 할 독수리가 못된 인간군상을 만나 맨날 그 자리에 앉아 인
간의 돈벌이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측은지심과 함께 전율이 느껴진다. ▼

차창가 너머로 멀리 평화스런 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 눈에 봐도 우리의 강남 같은
몽골에서는 제법 부티나는 마을 같았다.▼

아래 사진은 "톨강"이라고 한다. 톨강은 끝없이 이어지는 몽골의 젖줄이자 생명수라
불리는 몽골의 가장 긴 강이라고 한다. 몽골 땅에 내려 모처럼 맑고 풍요로운 물을 만
나니 내 몸의 이곳저곳에서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고 간단히 와인을 곁들여 몽골의 첫밤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회포를 풀어본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해서 홧팅~!!▼

우리 일행이 첫날밤을 묶게 될 유목민 마을이다. 우린 이곳 게르에서 역사적인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특히 오늘 밤 자정을 지나 12시 30분경에는 별이 빛나는 밤을 맞이한다. 우
리나라와는 달리 이곳 몽골에는 태양은 일찍 지지만 밤 9시30분이 지나야 비로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따라서 12시30분이 돼서야 별을 맞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때가 되기를 기다려 불빛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별을 보는 일, 이 얼
마만인가?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별을 잊고 산다. 아예 별이 보고싶거나 별 이야
기가 그리울 때가 없는 것이다. 어쩜 삶에 지친 회색도시의 삶속에서 별타령은 한낱 사치
에 불과하다. 그래서 흔히들 이런 삶을 별 볼일 없는 삶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별의 별 일들이 많듯이 밤하늘에도 별의 별 별들이 다 있다. 일반적으로 그냥
별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모두 같은 별은 아니라고 한다. 별중에는 스스로 빛
을 내는 별들이 있는데 이들을 항성이라 한다. 밤하늘에서 보는 대부분의 천체가 항성이
다. 태양도 물론 항성이다.
지구를 비롯해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
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별이 없었다면 밤하늘은 얼마나 밋밋했을까? 별이 있다고 하더
라도 이야기가 없었다면 우리의 밤은 얼마나 심심했을까? 이 세상에 밤하늘의 별을 사
랑하지 않은 시인이 있을까?
어릴적 나는 매일 밤 별을 보고 성장했다. 어둠이 아직 다 물들지 않았는데도 성급하게
자기 모습부터 드러내던 밝은 별 하나에 매료되었다. 어둠이 밤하늘을 다 삼켜버렸는데
도 그 별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별은 금성이었다. 벌러덩 덕석 위
에 누워 올려다 보던 빼곡한 별숲에서 느낀 압도적인 감흥과 가슴겨움의 순간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고 불빛이 사그라든 후 드디어 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몽골 땅에서 만나는
별,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과 슬픈 것들이 있고 그 둘이 같이 합쳐 별이 된다고 한다. 하
늘을 가로질러 가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별들이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복받쳐 오르는 슬픔이 눈물이 되어 내 얼굴에 흘러내리고 내 가슴
은 형언할 수 없는 비애로 찢어지고 있었다. 나는 흐느끼며 울고 싶었다. 왜 별들을 보면
감정이 축축해지며 옛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별과 인간의 감정과는 또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 그러나 많은 시인들은 그 축축해지는 시상을 노래했을 뿐 그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 듯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문학적 영감을 손이 미처 따
라가지 못할 것 같아서 머릿속 작은 기억 용량에 저장해 두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 더듬
더듬 그날의 기억을 반추해 보며 끼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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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마을의 전경이다. 싸울 일이 없는 사람들만 모여사는 마을, 어린이가 태어나고
늙은 이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계절의 순환처럼 균형있게 이루어지는 곳, 이곳 유목민들은 수
천년 이어져 오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

여행 둘째날이다. 첫 순서로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곳을 지나 야리야발 사원에 이르는
코스이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이곳은 야생화의 천국 답게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야리야발 사원의 안내판이다. 야리야발 사원은 테를지의 라마 불교사원으로
부처님이 타고 다니셨다고 전해지는 코끼리를 형상화한 사원이다. 몽골의 몇
남지않은 사원으로 1988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야리야발 사원을 빠져나와 거북바위 앞으로 왔다. 거북바위는 거북 모양의 기암괴석이다.
몽골인들이 예로부터 수호신으로 여기던 거북이 형상의 바위로 머리가 테를지 국립공원
을 향하고 있어서 이곳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이어서 마상쇼를 즐기는 시간이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마상쇼가 아닌가 싶다. 그야말
로 마상쇼를 즐기는 순간만큼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처럼 즐겁고 유익했다.▼











몽골은 동북아시아 내륙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울란바토르이며 러시아와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인구 350만여명, 면적 1,564천 평방킬로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이다. 다행히도 몽골은 공산국가에서 민주국가체제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은 게르 체험의 일환으로 실제로 게르 안에서 한컷 땡겼다.▼



우리 일행이 7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묵었던 SUNJIN GRAND HOTEL의 모습이다.▼

예정에 없던 코스로 이 태준 열사의 기념관에 왔다. 이태준 열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인물같으나 1914년부터 1921년까지 몽골 국민들의 의료와 보건을 위해 힘
쓰시다 순국하신 열사이다.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울 정도로 당시 몽골인들에게 근대적인 의술을 펼치셨으며 오늘
날 한국-몽골 양국의 친선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건물 사이로 산 정상에 뽀족하게 설치된 시설물이 자이승 전망대이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울란바토르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
으로 둘러싸인 울란바토르의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곳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시설물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밑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자
이승 기념탑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며 전쟁 영웅과 전사자를 기리기 위하
여 세워졌다고 한다.▼

이어서 대형불상공원에 이르렀다. 대형불상공원은 4~5층 높이 정도로 세워져 있는
대형 불상이 위치한 공원을 말한다.▼

아래 사진은 간등사(간단 사원)에 위치한 불상의 모습이다. 간단사원은 온전한 기쁨을 주
는 위대한 장소라는 뜻의 사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간단사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원으로
17세기에 설립되어 1930년도에 있었던 긴 종교적인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아,
현재까지 몽골에서 유일하게 사원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현재 대략 150명의 수도사
(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종교적인 식전은 연중 내내 일반에 공개되어 볼거리를 제공
하고 있다.▼

드디어 몽골인의 자존심, 징기스칸 광장에 왔다. 징기스칸 광장은 울란바토르 중심부에
있는 광장으로 중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한 Damdiny Sukhbaatar를 기념하여 1921년
시내 중심지에 만들어진 광장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약속과 만남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여러가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종합청사, 역사박물관, 중앙우체국, 외무부, 울란바토르 호텔,
국립 오페라 하우스, 몽골국립대학교 등이 균형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어서 시내 어디
든 가고 싶은 곳을 쉽게 갈 수 있다.▼

몽골, 그 중에서도 울란바토르 징기스칸 광장의 한 낮의 날씨는 가히 살인적인
무더위였다. 그나마 우리나라와는 달리 습도가 낮아 후덥지근하지는 않았지만
강한 자외선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든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쨍쨍 내리쬐던 하루 해가 서쪽으로 기
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강에서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 몽골
에선 적어도 낮시간만 더울 뿐 해가 지고나면 초가을 날씨가 초원지대에선 초
겨울의 날씨가 펼쳐진다. 물론 몽골에서 열대야 현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몽골 정부종합청사 건물이다. 건물 중앙부 하단에 징기스칸 동상이 보인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전통민속공연장에 왔다. 몽골 노래는 장조민가와 일반민요로
분류한다. 장조민가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몽골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민가이며 결혼
식이나 축제 시작시 연주하며 자연계의 변화현상, 사물과 사물의 관계, 사람의 내면의 소중
한 생각 등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몽골춤은 왕과 왕비의 위엄과 특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방문한 관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맞이하는 춤이라고 하며 이 연주에서 천년의 위대한 천재 징기스칸의 즉위식
을 보여주며 13세기 왕자와 왕비의 용감한 결의를 표현한다고 한다.▼

몽골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이다. 주로 과일과 음식류 등을 많이 파는 우리나라 재래시장
과는 달리 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의류 잡화 등 다양한 품목 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몽골백화점이다. 몽골백화점은 몽골 유일의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9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총 5층 건물로 마트, 의류, 잡화, 화장품, 가전제품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으며
5층의 기념품 코너에서는 여행 선물을 판매하고 있다.▼

<에필로그>
길을 떠나면 누구나 바람을 만나고 물을 만나고 산을 만난다. 나 역시 이번 몽골 여행을 통하여
광활한 초원을 만났고, 멋진 산을 만났고 이국의 새로운 바람을 느꼈다. 피곤한 문명의 소용돌이
에서 빠져나와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린 청정한 자연의 품에 안겨보기도 했다.
내게 몽골은 자연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신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음을 도드라지게 하는
풍경은 얼마전부터 보기 힘들어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문득 흐렸던 마음 때문에 서로를
더 멀게 느껴 끝끝내 소통하지 못할 뻔했던 내 생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오르게 하였다.
대학친구들 모임인 팔일회, 우리들의 있음은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닌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이번 여행을 통하여 또 한번 명증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더 없이 푸른 하늘도, 회
색빛 높게 떠 흘러가는 쪽빛 구름도, 창가에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우리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 늘 즐겨 듣던 음악도 함께 듣고 싶다. 그래서 사랑은 여행이라고 한다. 사랑을
하자.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인간적으로 우리 사랑하자. 인간의 모든 여행은 사랑을 여행하는 것이다. 사람도 사랑을 떠났
다가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사랑하자. 우리 사랑하자. 사랑하고 있을 때만 우리는 비로
소 우리이며 아름다운 우리라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눈을 맞추기만 해도 눈속으로 번저들 설렘과 환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 친구들, 바로 여러분들이 그렇다. 다음 여행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친구들이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진한 우정을 나누었으면 무척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동남아 여행이 시시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시시한게 싫다고 시시
하지 않는 걸 찾아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시한가 말이다. 우린 동남
아도 좋고 머나 먼 대륙의 여행도 좋다. 사랑만 있다면 지구 끝 어디라도 좋다.
여행기간 내내 함께 해주신 친구들 고맙고 비록 이번 여행엔 여러가지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
한 친구들께도 고마움의 뜻을 전해드리며 아울러, 팔일회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궂은 일을 도맡
아 해 오신 사무총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