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꽃샘추위로 한발 물러서는가 싶더니 또 다른 빛깔의 꽃을 피우며
전방위적으로 달려든다. 봄 기운은 빛깔이며 향기이자, 입맛이며 촉감이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잠들어버리면 그 자리에 진달래가 핀다.
돌무더기에서, 바위 틈에서 피를 토하듯 피어나는 진달래꽃, 그 꽃을 생각하고 눈을 감으면 그리
움이 문득 나를 이끈다. 그리고 고질병인 역마살이 나를 주체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 이 좋은
계절에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삶이 늘 그러하듯이 갈수 있을 때 가고 볼수 있을 때 봐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열린 오감으로 마중을 나가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기자. 되게 오래 살 것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도 못할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할때 가고싶은 곳으로 여행하자.
따뜻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 쪽빛 바다, 생각만으로 따뜻하다. 이번엔 코끝이 간지러운 바람이
불어온다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다. 이번 여행은 아주 특별한 여행이다. 흉허물 없이
살을 부비고 함께 자랐던 사남매가 떠나는 가족여행이기에 독특하고 아주 특별한 여행인 것이다.
힘들게 살았던 어릴 적, 힘이 들면 들수록 우리 가족은 가족애가 더욱 빛났었다.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곤 했었던 시골 고향땅, 그 외딴 마을에 어느날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우리 사남
매 다같이 모여 만들던 눈사람. 비록 눈,코,입은 제각각이지만 즐거운 작품하나 만들고 싶은 마음
만은 하나였을 것이다.
문득 문득 옛시절 고향길이 떠오른다. 고향길은 언제 걸어도 한결같이 정다운 길이다. 그 길을
오가며 미래를 다졌던 기억들. 학교로 가는 길도 그 길이었고 할아버지 따라 매서운 저수지 바람
을 쐬면서 사창장에 가는 길도 그 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바람이 전하는 향기를 따라 정겨운 고샅길을 걷다보면 어느 새 그림처럼 빛나는
가족들의 웃음이 별빛처럼 내려와 나를 반기곤 했으며 눈을 감아 꾸던 꿈이 행복이 되었었다.
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의 그런 훈훈한 추억들이 모여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 가족은 따스한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태어나 평생 16만
킬로미터를 걷는다고 한다. 그 길이가 무려 지구의 세바퀴이다. 이 16만 킬로미터 보다 더 넒은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지금 그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가슴 터지
도록 좋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3월 26일(화) 15시에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미팅이 있었다. 동생과 큰 누나는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을 거쳐 다시 이곳으로 왔으며 작은 누나는 대전에서 곧바로 리무진을 타고 이곳으로
왔다. 나 역시 평촌에서 리무진 버스를 이용하여 손쉽게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모두가 건강한 모습같아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인천공항은 4년여 만에 발을 딛어보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킬리만자로 트레킹 이후 첫
해외나들이인 셈이다. 그동안에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구촌에는 코로나 19라는 전대미
문의 전염병이 창궐하여 온 인류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이 발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위암이라는 몹쓸병이 찾아와 한 동안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으며 가족
에게도 적잖은 근심과 걱정으로 불안에 떨게 했었다. 그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자유를
만끽하게 됐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가볍게 화물을 정리하고 만 5시간 여의 비행끝에 현지시간으로 자정무렵에 코타키나발루 공항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숙소에 도착하니 너무 늦
은 시각이라 잠을 청하기 바빴다.
아래 사진은 우리가 여행기간 동안 줄곧 머무르게 될 수트라하버 더 퍼시픽호텔의 모습이다.▼
호텔 정원의 아름다운 숲을 보면서 문득 좋은 인연은 아름다운 숲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머무르다 웃으면서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숲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 숲을 가꾸고 꾸미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만남의 여정일지 모른다.
사람 냄새 짙은 삶의 숲에서 좋은 인연의 빛깔과 향기를 공유하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이 않으리라. 이런 저런
나라들로 훌쩍 떠나 어색한 시.공간에 문을 두드리고 그들의 삶에 잔잔히 녹아드는 것. 나
의 이번 여행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된 오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풍경의 이름을 아는 일이
아니라 느끼는 일이다. 어느 사이 우린 숙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끼고 있었다.▼
제셜턴 포인트이다. 영국인 최초의 상륙지로서 코타키나발루의 첫번째 선착장이라고 한다.
지금은 곳곳에 선착장이 생겨 한적한 편이며 작은 펍들과 레스토랑이 많이 모여있다. 일몰
시간의 석양이 아름답다.▼
여행 둘째날인 3월 27일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미팅시간에 맞춰
집합장소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툰구압둘라만 해양공원에서 보내는 일정이다. 해양공원으로 향하
기 위해 코타키나발루 방문환영 아취앞에서 기념사진을 한컷 촬영했다.▼
해양공원으로 떠나는 선착장의 모습이다.▼
배편으로 약 15분 여를 달려 툰구압둘라만 해양공원에 도착했다. 해양공원은 코타키나발루에서
약 5~8km 떨어진 근해에 떠있는 가야, 사피, 술룩, 마무틱, 세팡가르 등 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해양공원이라고 한다. 산호초와 열대 자연이 어울리는 해양공원에서는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잠시 머물게 될 편의시설의 모습이다.▼ 이곳에서 중식을 기다리던 중 개스폭발사고가
발생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나 자신도 무서운 폭발음과 뿜어
나오는 연기를 보고 무척 놀랐었다.
역시 후진국은 후진국이었다. 사태가 일단락 된 뒤에도 이렇다 할 사과멘트 한마디 없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덤덤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전불감증이 만연됐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식사 연료인 프로판 가스가 폭발했다는 것
이라고 한다.
우린 구명조끼, 수경 등 스노쿨링 장비를 대여 받아 해수욕과 스노쿨링을 즐겼다. 오랜만에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남매가 함께 바닷바람을 마셔가며 해수욕을 즐긴다는 자체가 감
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생을 잘 살아왔기에 "이런 날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 받을 수 없는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볼때 나는 우울
하다. 이제부터라도 지나가 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자. 즐겁게 살되,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지는 말자.
삶은 역시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 우리가 늘 불안해 하는 것은 삶 때문이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발걸음 하나하나 어머니께 다가
가고 싶다. 어머니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에도 세상은 그대로였다. 나만 흔들렸다.
이 모든 것들이 변함없는데도 나만 흔들렸다는 것은 그만큼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기 때문이
리라. 돌이켜 보면 나는 한번도 좋은 아들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몹시 후회했
고 오래도록 흐느꼇다. 엄마의 지극히 깊은 사랑, 뜨거운 감촉, 따스한 언어, 눈부신 울림,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애절하고 그립다. 함께한 시간들, 목소리, 손길, 모든 기억이 내 안에 녹
아았다. 이렇게 엄마가 보고싶은 날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나직이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 지켜봐 주세요. 우리 사남매 남은 생애, 오늘 처럼 자랑스런 사남매로 살아갈게요^^
삶이 지루하고 힘들다고 느꼈던 어린 날에 "세월 참 빠르다." 며 탄식하던 어른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듯 7학년이 돼버린 나 자신과 6학년을 훌쩍 넘겨버린 동생의 모
습을 보면서 이젠 우리가 바로 그 어른이 되어 삐쭉삐쭉한 머리카락을 애써 다듬으며 한 숨을
짓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남매가 모여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문득문득 어머니와 고향생각이 난다. 유년시절에
온 가족이 모여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 위에 벌러덩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 빼곡한
별숲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감흥과 가슴겨움이 평생을 지배하는 듯 아무때고, 어디에
서도 순간순간 생각난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는 여행, 힘들게 살아야 했던 어렸
을 적 여행이라고는 어머니 손잡고 고작 외갓집 갔던 기억만이 전부인데 먼 이국땅에서
과거를 회상해 보니 역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여행이 단순히 취미일 수만은 없다. 어찌보면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할 그 연습이 될 수도 있
을 것이다.
해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봤다. 나이는 들었는데 철은 안들은 것도 같고, 이게 "나"인것은
분명한데 내가 원하는 나는 분명 아닌 것도 같아 약간 씁쓸했다.▼
요트 선셋 투어를 위해 바다로 다시 왔다. 날씨는 어두워지지만 시원스레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
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산문이었다. 단정한 어순, 절도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어 하나 없는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았다.▼
해는 아직 기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어김없이 거대하고 웅장한 일몰행사가
시작될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요트선셋이라는 이름의 일몰행사를 기대하노라니 별의별 생각이 들
었다. 지는 것, 떨어지는 것은 역시 슬픈 일이다. 그것이 태양이든, 꽃이든, 삶이든 그 무엇이든..▼
드디어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해질녘의 저 선연한 핏빛을 보라, 온 바다를
피로 물들이는 최후, 그러나 지는 것이, 떨어지는 것이 모두 멸(滅)은 아닐 것이다. 해는 내일 다시 솟
구칠 것이고, 꽃은 이듬 해 봄에 다시 피어날테고 삶도 해가 지고 뜨는 것처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넘어섰다 일어섰다를 되풀이 하면서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쨍쨍 내리쬐던 하루 해가 바닷속으로 빠지고 나면 바다는 틀림없이
고통이 없는 시원하고 안락한 세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하니 그것들을 보고 너무 서러워 하거나 슬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요트를 타고 수평선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 같았다. 해가 넘어간 후의 하늘과 바다에 펼쳐지는 귤빛과 보라색, 자주색, 그리고 잿빛
등 무궁무진한 빛의 조화를 지켜보면서 벙어리가 되곤한다.
저녘노을이 빨갛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오늘 하루의 죽음이구나 싶었다.
아플 것도 슬플 것도 없는 담담한 죽음,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가 노을에 떠오른다.
하루 해가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넘어가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맑게 갠 날만이 아름다운 노을을 남기듯이 자기 몫의 삶을 다했을 때 그 자취는 선하고 곱다.
해는 바다로 떨어지면서 시뻘건 불기둥을 구름에 뿜어대고 있었다. 노을이 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늘을 태우고 구름을 태우고 바다를 태우고 내 마음까지 태우는 듯했다.▼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넘어간 뒤의 노을빛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것은 장엄한 침묵의 세계
였다. 삶의 끝이 그런 노을이라면 죽음도 아름다울 것같았다.
낙조의 풍경이 또렷한 영상으로 맺힌 것은 눈이 아니라 가슴이란것도 알았다. 풍경이 가슴속
으로 들어와 내면에 깊은 울림을 전할 때 비로소 풍경은 기억의 저장고에 쌓이는 법이다.▼
달은 떠오르는 달이 아름답고 해는 지는 해가 훨씬 좋다는 말이 실감났다. 지는 해를 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떠오르는 해를 보면 함성을 지를 수도 뭐라 지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늬엿늬엿 지는 해 앞에서는 차마 입을 벌릴 수 없다.
지는 해를 따라 무거운 침묵의 세계에 잠기게 된다. 대지를 밝게 비추며 이글이글 작열하던
태양이 지고 난후의 고요와 적막, 우린 절로 다음 날의 일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내일도
태양은 떠오르듯이 현세로써 우리들의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 것
이다.▼
여행 3일째인 28일(목)은 온전히 하루내내 자유일정이었다. 우린 호텔 주변의 절경들을 감상
하며 거니는 등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엔 마사지로 여독을 풀기도 했었다. 코타키나발루
여행 중 주로 많이 이용했었던 "imago" 건물의 모습이다. 우린 이곳의 한식집을 애용했었고 이
곳 마트에서 음료나 과일 등을 사다 먹곤 하였었다.▼
여행 마지막 날엔 시내관광이었다. 사진 속 건물은 사바 내 최고층 빌딩이자,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한 사바 주 청사는 저층부의 가느다란 기둥 위로 원통형 건물이 아슬아슬 세워져 있고, 72
개의 각면이 정밀한 각을 이루며 원통에 가까운 모양을 이루어 내는데, 외벽은 모두 유리로 둘
러져 있어 조형미를 더욱 뽐내며 코타 키나발루의 랜드마크로 통한다고 한다.▼
외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티모스크 사원 둘레에 해자를 파 놓아 맑고 잔잔한 수면에
모스크가 비치는 풍경으로 신비감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코타키나발루에는 주립 모
스크도 자리하는데 금박을 입힌 화려한 돔과 금빛 첨탑 등이 새하얀 외벽과 어우러져 엄
숙함과 위엄을 드러낸다.▼
싸한 맛이 나는 바다쪽으로 다가갔다. 어제의 요트 선셋 못지않게 일몰 풍경이 장관이었다.
일몰을 바라보노라면 그 아름다운 절경과는 별도로 쓸쓸한 생각이 엄습한다. 하루 해가
그 역할을 다하고 바닷속으로 빠져들듯 내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된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는데 그 시간을 무가치한 것, 헛된 것, 무의미
한 것에 쓰는 것은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써야겠다고 순간순간 마음먹게 된다.▼
반딧불투어에 앞서 둘러보는 아름다운 선셋 감상시간이다. 이 선셋감상에 이어 반딧불 투어가
시작되었지만 반딧불투어는 사진촬영이 일체 금지되어 있어 별도의 기념이 될만한 흔적을 가
져올 수 없어 다소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딧불은 어렸을 적에 수도 없이 봐왔기에 새로운 감흥은 없었지만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수 많
은 반딧불들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면서 배 안으로 몰려드는 광경들이 이채로웠으며 강변에 가
끔씩 나와있는 포악한 모습의 악어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런 말이 있다.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고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기에는 시장이 좋다."
왜 아니겠는가? 장날은 뭐니뭐니 해도 5일장이고, 시장은 당연히 재래시장이 좋다. 이곳 코타
키나발루에도 의젓이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귤, 사과, 참외, 수박 등 풍성한 여름철 과일들이 눈에 띈다. 단순히 풍성
함에 그치지 않고 가격 또한 엄청 저렴했다. 큰 사과 하나에 우리 돈으로 1,500원, 수박 역시
1통에 5,000 원 정도이다. 수박 한 통은 너무 커서 4등분 또는 6등분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귤은 씨가 있어서 그렇지 달콤한 맛은 비슷했고, 수박 역시 그런대로 먹을 만했으며 사과는
우리나라의 홍옥 수준이었다. 그런데 가격을 비교해 보면 그 차가 어마어마하다. 사과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큰 사과 한개의 값이 한때는 무려 10,000원대 였다니 단순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이번 총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파논란, 한 단 875 원이니 한 뿌리 875원이니 했었지만 결국은
고물가가 문제였다. 유난히 과일을 좋아하는 우리 아내, 생각 같아서는 양껏 사갔으면 좋았
겠지만 마음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여행에서 다녀 온 며칠은 세수를 할때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그 무엇으로 물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코타키나발루의 바다를 감쌌던 노을 같기도 했고 그곳을 적시던 태양같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어딘가로 쏴다니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관광여행이 아니라 모처럼 사남매가 한데
어울려 과거를 회상하며 오붓하게 보내는 일종의 휴양지에서 보내는 힐링여행이었다.
비록 처음 시도해 본 가족여행이었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남은 여생을 보내는데
있어서 윤활유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여행이었다. 그 동안 나 자신이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잃
어버린 시간속에서만 행복이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어쩔 수 없이 시적 감수성은 나날이 닳아 없어지고 아버
지에 관한 글을 썼던 소년은 이미 아버지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할아버지가 돼 있었다. 그리
고 지금은 외로워 한다. 그리고 여행을 갈구한다.
집을 나와 낯선 길에 서면 그리움이 싹트고 그리움이 쌓이면 글이 빚어지고 그 글들이 쌓이면
책이 된다. 그러고 보니 나의 버킷리스트 제1호인 자서전적 엣세이 "모락산 통신" 원고에 몰입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제2호 "영어회화의 수준 끌어올리기", 다행히 1년 여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이 또한 2~3년 내에는 반드시 소기의 성과가 있으리라 확신해 본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여러가지 불편이 있을 터이지만 잘 참으시고 함께 해주신 너그러운 누나들, 그리고 착한
내 동생에게 한 없는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만 줄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