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 그 중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가 없는 나는
어딘가를 향하여 떠나고 싶었다. 지극히 불확실한 삶의 여정 속 한가운데서 매주
산을 찾아 나서지만 역시 산이 그립다. 매일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역시 사람이 그립다.
산이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오늘도 이렇게 빈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은 멀리
강원도 땅, 영월로 나섰다. 100대 명산의 하나인 태화산을 찾아 나선 것이다.
수 년 동안을 쉼 없이 그렇게나 많은 조국의 산하를 종횡무진 누벼 왔지만 아직 나는
100대 명산에도 이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100대 명산에는 7개산(대암산,연화산,응봉산,장안산,적상산,천성산,
태화산)이 미달이다. 해서, 이제 부터는 가급적이면 금년 안으로 이 산들을 모두 올라
볼 생각이다. 그 생각의 일환으로 맨 처음 시도한 산이 오늘 오르게 되는 태화산인 것
이다.
다행히도 영월은 내가 거주하는 안양에서 직통으로 연결하는 시외버스가 있었다.
아침 6시 30분발 리무진 버스에 탑승하여 두어시간만인 9시경에 영월에 도착했었다.
미리 준비한 스케줄에 따라 택시를 잡아 타고 10여 분만에 팔괴리의 오그라니길에
도착하였다.
산행 일시 : 2011. 5. 5(목)
산행 코스 : 팔괴교~태화산성~태화산 정상~큰골갈림길~고씨동굴
산행 시간 : 약 6시간
영월에서 택시를 타고 이곳 오그라니길에서 하차하였다. "오그라니", 길이름이
이색적이었다. 무엇인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름인 것 같았다. 정겨운
이름이었다.▼
오랜만에 소를 이용해서 밭을 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름하여 쟁기질이었다.
한 사람은 앞에서 소를 이끌어주고 또 한사람은 뒤에서 소를 몰아 밭갈이를
하는 것이었다. 실로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태화산 등산로 입구였다. 일단 봉정사 사찰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태화산 그 정상은 4.8km였다. ▼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된비알 구간으로 몹시 가파른 길이었다. 한 참을 올라 온 것
같은데 아직 태화산정상은 3.1km나 남겨두고 있었다. 길라잡이 밑동에 "영월군민"
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시 말해 영월군민들이 설치했다는 뜻일 게다. 공(功)은 자신이
과(過誤)는 남에게 돌리는 요즘의 세태에서 눈여겨 볼만했다.▼
산성 삼거리였다. 일단 150m 거리에 있는 태화산성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
태화산성터이다. 태화산성은 고구려시대에 쌓았던 토성으로 영월읍을 두루 굽어
볼수 있는 보기좋은 위치에 있다. 석성과 토성이 혼합된 양식으로 쌓은 사령탑으로
적정을 감시하고 그 상황을 우군에게 연락을 하던 곳으로 볼 수 있다.
옛날 아들과 딸을 가진 어머니가 성(城)쌓는 내기를 시켜서 먼저 쌓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였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의 돌성을 쌓게 하고 딸은 태화산의
흙성을 쌓게 하였는데 어머니가 보니 딸이 먼저 완성할 것 같아 흙성을 무너뜨렸
는데 딸이 그만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으나 태화산성은 무너졌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남아선호 사상이나 남존여비 사상은 쉽게
못 말리는 일이었다. ▼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온 몸이 나른했다. 나른한 산길은 힘이 더 드는 법이다.
더구나 산길은 계속 오르막 길의 연속이었다. 내리막 길이나 능선길이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산성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산성터에 앉아 영월읍내를 바라보았다.
봄날에 봄날 같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내 등을 밀어주었다. 힘들게 걸어 온
산길이 있었기에 이처럼 달콤한 휴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여정도 따지고 보면 잠시 쉬며 느끼는 이 흐뭇함이나 편안함 때문에 그 힘든 시절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
고씨굴은 3.36km, 태화산 정상은 2.34km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정표에서 보는 것처럼 큰골로 하산하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고씨굴을
날머리로 삼으려면 태화산 정상을 찍고 다시 이곳으로 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왕복거리는 무려 4.68km였다. 큰골로 하산한다면 너무 단조로울 것 같았다.
한 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천연기념물 제219호인 고씨굴을 외면할 수 없어 다소
힘이 들더라도 태화산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애시당초에 고씨굴을 날머리로 생각
했다면 산행 들머리는 당연히 팔괴리 오그라니길이 아니라 큰골을 들머리로 잡아야
했었다. 훗날 이곳 태화산을 찾는 산객들이 참고했으면 한다. ▼
산길은 쓸쓸했다. 외로웠다. 도대체가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리웠다. 사람이 진저리 쳐지도록 그리웠다. 소위 100대 명산이라는 산이
이렇게 인적이 뜸하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산길이 호젓해서 좋았다. 다행이었다.
그만큼 사색의 시간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리라.
전망대에 이르렀다. 마대산을 에워싼 남한강의 깊고도 맑은 물이 U자형으로
흐르며 내 마음의 잔잔한 그리움처럼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때는 바야흐로 5월의 초순이었다. 하지만, 남녘에는 벌써 계절적 특징을 무시하고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남녘보다야 훨씬 더딘 속도이
지만 춥기로 말하면 어느 지방 못지않은 강원도의 영월땅에도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봄이 찾아오는 완연한 저 길을 누구라서 차마 손짓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봄기운도 따스한 태화산의 하늘은 더 없이 푸르렀고, 명산을 둘러싸고 도도히 흐르는
남한강 강물 역시 깊고도 푸르렀다. ▼
태화산 정상은 이제 600m의 거리로 좁혀졌다. ▼
태화산 정상 근처에는 잘 다듬어 진 목재테크가 설치돼 있어서 산꾼들의
발걸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었다. ▼
태화산 정상에 오르기 전에 큰 골로 하산하는 길이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정상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삼태산이 나오는 모양이다. 삼태산 10km, 내친김에 걸어볼까도 생각
했지만 오늘 산행 날머리는 정반대 방향인 고씨굴이기 때문에 그 뜻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걸어 온 산길은 다소 지루하고 힘든 산길이었지만 뒤늦게나마 완연한 봄기운에
취한 태화산은 돋아나는 새 생명, 피어나는 새 잎들로 연초록 빛 새 생명들의 아우성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 없이 멋있는 산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해발 1027m의 태화산 정상이었다. 태화산은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으로
강원도 영월군 남면과 하동면,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한강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4억년의 신비를 지닌 고씨동굴을 품에 안고
있으며 부드러운 능선길은 사계절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준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산객들이 외면하는 것일까?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일까? 갖가지 억측을 해보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컨데 그것은 접근성이 좋지않고 홍보가 덜 된 탓이 아닐까 감히 말해 본다.
아무튼 오늘 태화산을 종주하는 동안 단 다섯분의 산객들을 만났을 뿐이다.▼
태화산 정상을 밟고 고씨굴을 향해 걸어 나갔다. 산길은 능선길이라서
비교적 순탄한 길이었다. 고씨굴은 2.7km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하산 길은 급경사 구간이었다. ▼
급경사가 심한 구간이라서 산행 속도가 나지 않았다. 등산화 안에서 엄지 발가락이
앞으로 밀려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런 속도라면 시간당 1km도 채 진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기이한 소나무가 있었다. 잠시 멈춰 섰다.▼
뻑적지근한 다리를 이끌고 한 참을 내려오니 전망테크가 설치돼 있었다.
가까이에서 느껴 본 남한강의 물줄기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버리는 듯 했다. 태화산
산행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철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고씨동굴 입구로 내려섰다. ▼
고씨굴이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시간 관계상 고씨굴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영월 고씨굴은 원래 노리곡동굴이었으나 임진왜란때 고씨 일가가 난을 피했다
하여 고씨굴이라 하였다.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됐으며
1974년 5월 15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이 동굴이 형성된 지질연대는 고생대의 대석회암통에 속하는 지층으로 약 4~5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주굴의 길이는 약 950m, 지굴의 길이는 약
2,438m로 고씨굴의 총 연장은 3,388m이며 이 중에서 약 675m구간만 개방되어
공개되고 있다. ▼
고씨굴 앞의 고씨굴교이다. 남한강 위로 놓인 이 다리를 건너야만 고씨굴을 관람할 수 있다.▼
고씨굴 매표소이다. 고씨굴을 산행 들머리로 삼으면 반드시 입장료(1인/3,000원)를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고씨굴을 날머리로 삼으면 입장료 걱정은 뚝해도 된다. 향후 태화산을 찾는
산객들께서는 참고해 주기 바란다. 고씨굴을 관리하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100대 명산 선정사유>
경관이 아름답고 고구려 시대에 쌓았던 토성인 태화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고,
고씨동굴(高氏洞窟 : 천연기념물 제219호) 등이 소재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
여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