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렇다. 나는 오늘도 탐욕을 버리고 무욕의 교훈을 얻으려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에 올랐다.
금새라도 휘몰아치는 강풍에 몸둥아리가 내동이쳐질듯.....
그렇게 그렇게 난생 처음 느겨보는 모진 광풍이었지만
조금도 피함이 없이 강풍을 맞이했다.
관음사 코스 8.7km...
백록담을 둘러본 뒤, 바로 저 길을 따라 하산하는 길에
나는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으니...
산길에서는 늘 겸손하라는 산 선배의 조언을 잠시 망각했던
것일까?
세차게 몰아치는 강풍을 어서 피하고 싶은 마음에 내리 달려
내려오다가 그만 앞으로 나자빠지고 말았으니....ㅠㅠ
이 일을 어쩌나?
이마가 벗겨지고 콧잔등이 패이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으니......
더구나 미주여행 일정이 1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산 행 일 : 2005.10.22(토)
함께한 사람 : 형창우, 민광식,김학선,이용국,장희송,문명하,
김차현..
산은 곧 거대한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법정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굳이 법정스님께서 설파하신 산의 의미를 충분히터득하지 못했더라도 산은 언제나
그 넓고도 포근한 가슴으로 우리 인간들을 포용해주곤 한다. 그렇다. 이같이 산이 가
져다주는 매력에 폭삭 빠져조국의 산하를 찾아 헤매 돈지 20여년.... 이제는 산이
곧 내 삶의 커다란 의미로 자리매김하여 버린 지 오래이다.
2005.10.21(금).19:00, 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에는 이른바 크루즈 여행이라는 이름
으로 남한의 최고봉인한라산을 찾는 많은 산꾼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해 온 한라산 선박여행, 장장 13~4시간을 배안에서 머물려면 먹는 것에서부터
생활하는데 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선창가 주변 안락한 곳에 터를 잡고일행 9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준비해 간 술과 음식을들면서 배안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달래보지만 시
간은 좀처럼흐르지 않는다.
소주와 양주를 곁들여서 제법 많은 양을 마셨지만 망망대해를 누비는 선박여행의
정취 때문인지 취기를 느끼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듯 했다. 선상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쇼를 관람하면서육지에서 보다 두 배 이상 값비싼 호프를 시켜 마셨다.
나뿐이 아니고 일행 모두 소주와 양주를 곁들여 마셨던 터라속이 탔기 때문에 시원
한 호프가 마냥 끌리는 모양이었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였던가, 오늘은 마침
금요일이어서 선상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망망대해!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가 한복판에서 벌이는 장엄한 불꽃잔치, 그것은
바로 황홀 ...그 자체였었다. 모두들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환호성을 연발
하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 같았던 선박에서의밤 시간도
어느 새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날이 밝았고 우리를 태운 거대한 선박이 제주항에닻을 내린 시간은 아침
9시, 예정시간 보다 한 시간 늦게도착하였다고 한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백록담에 오르기위해서는 진달래 대피소 통과시간이 늦어도 12시 30분
이내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둘러 선두 차에 탑승한 우리 일행은 버스가성판악에 도착하자마자,
선두권을 유지하며 곧장 한라산을향하여 내달리기 시작하였다.간밤에 마셨던
여러 종류의 술들이 땀으로 용해되어 쉴 사이 없이 시야를 가리곤 하였지만 흡사
산악구보를연상케 하는 우리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두 시간도 채 못된 시간에 진달래 대피소에도착하여 간단
히 요기를 하고 거침없이 주봉을 향하여 치달았지만 좁은 등산로를 가득 매운
산군들의 긴 행렬 덕에산행속도가 그만 최저속도로 꺾이고 말았다.
해발 1,800 미터 지점에 오르고부터는 어찌나 강풍이 휘몰아치는지 육중한 내
몸이 금새라도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느낌을 받았다. 등산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뛰엄 뛰엄설치해 놓은 나무계단을 따라 힘들게, 힘들게 정상에 올랐다.
내 삶의 여정에 있어서 과연 이처럼 모질고 세찬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을까.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려 기념촬영마저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때문에 백록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짧을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물 한 줄기 없이 이름값도 제대로 못하는 백록담에올랐지만 그동안 세
차례씩이나 정상등정을 시도한 끝에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소회는
확실히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하산 길이다. 하산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음사 코스이다.
바람. 바람. 바람... “어서 빨리 거친 바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이런 심산으로 일행들을 독려하며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3분쯤이나 되었
을까, 결국 나는 일생일대의 최대 대형 사고를 유발하고 만다. 내리달리는 가
속도에다 무거운 배낭에 육중한 나의 몸은 마치 고목나무 쓰러지듯 무려 세 계단
을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깨달았을 때는 콧등 언저리에 비쳐지는 붉은 핏덩
이를 보고 통증보다 더 큰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뒤에 따라오던 직원이
상처부위를 보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별거 아닌 것처럼 애써 태연한 척하였
지만 나는 상처가 심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우선 지혈부터 시켜놓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어서 빨리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싶었고 어서 빨리 치료하여얼굴의 흉터를 미리 막아보고자 갈망하는 마
음이 앞섰기때문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성판악을 출발, 관음사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의 산행 소요시간은 총 6시간에 불과하였다.
산행 예상시간 8시간 보다 무려 2시간이나 빠른 시간에 하산하였기에 우리 일
행을 제주항으로 이동시킬 관광버스는 아직 도착하지않았다. 한가로이 관광버스
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터라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제주시내의 모 약국에 들
러 상담과 치료를 원했으나 상처 주위를 살펴 본 약사는 상처가 너무 깊다며
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거울로 들여다 본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흉측했었다.이마 부위에는 그다지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상처부위가예상보다 넓었으며 안경테에 패인 콧잔등은
우려했던 대로깊 게 패였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응급조치를 받았다.
치료를 맡았던 의사는 흉터를 우려하는 나의 질문에 요새는 약이 워낙 좋아 잘만
치료하면 흉터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 가닥 위안을 준다. 이렇게 우왕좌
왕 하는 사이, 승선할 시간이 임박해 왔다. 한라산을 오를 때 제주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놓았던 생선회를 인수 받으며 값을 치르려했지만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회 값으로 거둬들인 공통경비를 고스란히 절약할 수 있었다.
인천 연안부두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였다.같은 일행을 생각해서라도 언제까
지나 상처에 대한 공포감으로 사로잡혀 있은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상처로 얼
룩진 마음을 다독거려가며 일행과 어울려 회도 먹어보고술도 마셔보지만 상처에
대한 걱정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흉측스런 얼굴로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출근 할 만의 하나라도 술에 만취되어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게 된다면 그 알량한 나의 체면은또 어떻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11월 2일에 출발하는 미주여행 일정에과연 합류할
수 있을까였다. 또다시 선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걱정스런 마음으로
귀가하였지만 집사람은 속이 상한 눈치는 역력했지만 정성스레 치료를 해
줬다. 이렇게 해서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선박을 이용한 한라산 산행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피로 얼룩진 산행이되고 말았다.
※ 10.22일 한라산 산행이후 한참 뒤에 정리해 본 산행기이지만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이마에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감촉같이 사라졌고
깊게 패인 콧잔등의 상처도 완치되어 가고있다. 물론 아무 탈 없이 미주
여행에도 합류하여 잘 다녀왔다.
돌이켜보면, 그 날 사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었다. 첫째는 날씨가
그리 고르지 못했던 날에 그것도 현재의 시력과맞지 않은 선그라스를
착용했었던 것이었고,
둘째는 산 앞에서는 늘 겸손 하라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고급경사
계단 길을 뛰었던 것이 문제였었다.
깊게 패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흉터가 발붙일 틈을 주지 않게곱고도 건
강한 피부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100대 명산 선정사유>
남한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 3대 영산의 하나로 산마루에는 분화구인
백록담이 있고 1,800여종의 식물과 울창한 자연림 등 고산식물의 보고
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남한의 최고
봉으로서 백록담, 탐라계곡, 안덕계곡, 왕관릉, 성판암, 천지연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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