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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세계/문인으로서의 나

등단 작품(시 부문)

 

등단 작품(시 부문)

 

1. 내 어머니는...

 

가슴이 답답하고

산다는 것이 힘이 든다고 생각될 때면

끊임없이 출렁대며 재잘되는 초록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푸른 계절에 우뚝 서 계신

어머니를 불러보자...

 

너무나 멀리 흘러 가 버린

소싯(少時)적 시절...

아련한 기억의 한 켠에서 일깨워지는

어머니의 사랑은 애틋하다 못해

안타까움에 가슴팍을 짓눌러온다.

 

그렇다.  화사한 꽃과 앙증스런

어린 아기의 미소가 그러하듯이 뽀송뽀송한

이부자리같이 포근했던 어머니의 사랑은

늘 소중하기만 했었다.

 

앞산의 황토밭과 굽이굽이 고샅길은

가난이라는 한을 품고 살아 온 한 여인의

삶의 발자취였었다.

 

연약한 팔로 혼신의 힘을 모아

확독에 보리쌀을 갈던 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젖은 나무에 피어나는 연기는 또 어떤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짜내시던

그 서러운 눈물의 의미는 수북한 고봉밥으로

배불리 살아가라는 모정의 징표였으리라....

 

그러나, 어머니는 아름답기만 하셨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시는 날이면

긴 머리 곱게 틀어 올려 동백기름을 바르셨고

그 정갈함에서 묻어나오는 향기는

곱고도 순박한 여인들의 향기, 바로 그것이었다.

 

울다가 울다가 더 이상 흘릴 눈물샘 조차

말라버린 어머니의 울음은 늘 소리없는

울음뿐이었으며 그것은 철 없는 자식들에겐

한 없이 인자한 웃음으로만 비춰졌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는 여인을 내 어머니라 부를 수 있어

행복하다.

 


2. 가슴앓이

 

청량한 바람이
큰길가 은행나무에 걸쳐 앉아

머무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초록의 가슴앓이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계절이 바뀐다해도
또 다른 계절의 이름으로 가슴앓이는

계속된다.

흐르는 세월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며
코스모스 산들거리는 들녘으로

달려나가
폴짝폴짝 뛰어보고 싶다.

 

이 가을을 맞아,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시린 고통들을

달콤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높은 가을하늘을 선회하는

한 점 아름다운 구름으로
피어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들기 전에
의미 없이 허물어져 가는 소망과
그것을 바라보는 고독을 추슬러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단단히 해둬야겠다.

 

 

3. 상 흔 (傷 痕)


뿌리 뽑혀 흔들거리는
나무의 처연함을 아는가,

오랜 시간 가슴앓이 끝에
더는 힘에 부쳐, 주체하지 못하는
내 소중했던 두 그루의 나무를
스스로 뽑아냈었다.

가슴이 시리다
반백년 동안이나 내 힘없는 영혼을
지탱시켜 주었던 하얀 나무,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볼썽사나워
엉뚱한 금속 쇠붙이로 매 꿔 보지만
갈 갈이 찢기어진 빈 가슴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의 이 상처가 감기 정도나
앓고 난 것처럼 거뜬한 마음으로

여명을 향해 날개 짓 하는
새들의 맑은 울림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내 인생의 담벼락이
오늘처럼 싫은 적은 없었다.


 

 4. 코스모스

 

생생히 저려오는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소금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던
소녀의 영혼.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외롭고 척박한 땅위에
한 송이 꽃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

이유 없는 슬픔이
가슴을 짓눌러 오는 가을의 길목에서
가는 허리로 아픈 사랑을 받혀주고
작은 잎사귀로
저녁노을의 울음을 달래주던 꽃

향기도 털도 없는 것이
그저 청순한 미소 하나로
이 계절의 연인들을 향하여
사랑은 왜 하느냐는 듯이
쓸쓸히 웃음 짓던 그리움이란 이름의 꽃

낮은 산등성이로부터
간지럽게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연분홍색 소녀의 그리움은
그렇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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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시 부문)

지난 60년대, 내 유년 적 농촌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었던 보릿고개라는 때가 있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이미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을 흔히 이렇게들

불렀었다. 이렇게 보릿고개를 넘으면서 유년을 보낸 나는 조금 더 성장하여 막연하게나마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꿈을 꾸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뒤, 나는 살아온 흔적이나 남기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고집스럽게도 내 소유의 영역만을

넓히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또한 나였으며

바쁜 일상으로 묻어두었던 문학적 가능성을 다시 펼쳐보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희끗희끗.

이제 내 자신도 싫어져버린 반 백년, 이것을 과연 50줄의 기상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만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 느닷없고도 염치없이  국보문학 신인상 공모에 글을 냈었고 운 좋게도 신인상을

받아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  등단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등단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또 어떠한 의무와 책임이 수반하는지도

잘 모른다. 단지 기존 명함에 문인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고 한 가지

더 유추해 본다면 이제부터는 주로 글을 보는 입장에서 보이는 입장으로 바뀌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되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소식을 접하는 내 마음은 조그만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두 어깨를 짓눌러 온다. 이유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하여 부드러운 언어로 희망과 꿈을 심어

주려는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 같으며 좀 더 진실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희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주며 우리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고운 언어들을 찾아내야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어쭙잖게 당선소감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지만 한 없이 미흡하고 부족하기만 한

글들을 읽어주시고 시인의 명찰을 달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워낙 부족한 사람이라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최선을 다 해보겠다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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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한마디로 줄여서 이야기를 하자면 무척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 세계를 지니고 시를 쓰는

밝은 시인으로 평가 받아도 좋은 시인일 것 같다.

"가슴앓이도 그렇고 "상흔", "코스모스"도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계절이 바뀐다 해도/ 또 다른 계절의 이름으로 가슴앓이는/ 계속된다." 는 노래를 하기도

하고 " 지금의 이 상처가 감기 정도나/ 앓고 난 것처럼 거뜬한 마음으로/ 여명을 향해 날개 짓 하는/

새들의 맑은 울림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하는 아주 밝은 마음의 표정을 보여 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생생히 저려오는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소금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던/ 소녀의 영혼"이 "작은 잎사귀로/

저녁노을의 울음을 받아 주던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세계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등단의 기회에 그런 장점도 많이 있지만 또 다른 약점도 지니고 있음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좀 더 구체화 시켜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자꾸 무엇을 말하려는 소망사고 때문에 진짜로 보여

주어야 할 이미지가 부족하게 되고 따라서 시가 관념적으로 흘러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시가 관념적으로 흐르는 취약점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점도 알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좋은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 용오(전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회 회장, 한국 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임 수홍(시인, 한국문학신문 및 월간 국보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