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청량산..

 

자연은 모든 생물의 원천이고 사람이 기댈 영원한

품이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유심히 바라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성과 아름다움을 캐낼 수 있다.


그렇다, 11월의 셋째 주말에도 어김없이 법정스님의

깨우침을 쫓아 청량산을 찾았다.

청량산, 듣기만하여도 부드러운 어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제아무리 욕심이 많은 자라도 청렴해진다는 산,

산세가 너무 좋아 남에게 보여주기조차 아깝다는

청량산, 오늘은 바로 그 청량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캐내는 날이다.


아침 7시에 안양을 출발한 관광버스는 원주. 제천을

거쳐 굽이굽이 낙동강 길을 따라 영주를 지난 후

청량산이 위치한 봉화에 접어든다.

낙동강,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 황지를 지나 이곳 봉화로 접어든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청량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안양을 출발한지 4시간만인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곧바로 산행 길에 올랐다. 산 입구에서 청량사

경내까지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땅만 쳐다보고

올라야 했다.


지난 주 운장산 산행코스의 하나로 연석산 코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장장 3시간여 동안이나 이어지는

오르막길 산행의 피로가 덜 풀렸던 탓일까, 아니면 지난

한주 내내 속세의 무리들과 어울려 마셔댔던 알콜

탓이었을까, 아랫도리가 무척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한 참 만에 절에 도착했지만 청량사

경내는 하산 길에 둘러보기로 하고 계속해서 정상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청량산의 주봉인

의상봉과 자소봉의 갈림길인 뒤실 고개가 나타났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산꾼은 보다 높은 곳을 지향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하여서는 우리들은 더 내려가야만

한다. 그렇다. 우리의 의지는 정상을 향하여 불타고

있었지만 때맞춰 정상인 의상봉이 통제되고 있으니 어쩌랴,

하는 수없이 발길을 자소봉 방향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급경사의 사다리 계단을 통과하고 조금 오르니 탁필봉이

턱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봉우리에 올라 산세를 조망해 본다.

청량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안에 옹기종기 청량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청량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 같은 선무당이

보기에도 명당자리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절 뒤로는 탁필봉,

자소봉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앞으로는

확 트인 전망을 지녔으니 더 이상 좋은 명당자리가 이 나라

어디에 또 있으랴,


다음 코스는 자소봉이다. 자소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목에는

대롱대롱 나무 가지에 매달려 용용히 버티고 있는 몇 잎의

나뭇잎이 늦가을의 정취를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이제 저 나뭇잎들은 얼마 후면 낙엽이 되어 뒹굴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저 나뭇잎들은 메마른

모습으로 언제고 자기를 버릴 각오가 돼 있을 것이며

잎을 떨군 나무 가지들은 모진 겨울을 보내며 새 생명이

움트는 새 봄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자소봉을 거쳐 원효대사가 머물었다는 응진전을 둘러보고

다시 청량사 쪽으로 향하려는데 작은 울타리 안에 있는

“ 산꾼의 집" 이란 푯말이 눈에 띄여 그 앞에서 문득

발길이 멈춰졌다. 청량산 산지기를 자처하는 왕년의 산꾼

이 대실 씨가 기거하는 곳이다.


조난구조, 산불감시, 차 공양 등을 하며 수년 전부터

옛 잡동사니와 골동품들을 조그만 공간에 가지런히 진열해

놓고 청량산을 찾는 산꾼들에게 약 차 한 잔씩 공양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그의 모습은 분명 노쇠한 모습이었지만

그 동안 수많은 산행을 통해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큼 일가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발길은 다시 속세로 우리를 인도 할 관광버스가 있는

입석대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간 내려오다 보니 문득 길옆에

" 안심당" 이란 찻집이 하나 눈에 띄었다.

어서 빨리 하산하여 걸쭉한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허름한 건물외벽에 붙어 있는 이색적이고도

문학틱한 서각 앞에서 발길이 멈춰지지

않을 수 없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꽃이 될까 잎이 질까 /

  아무도 모르는 저쪽 /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는 /

  청량의 산사에  밤이 올까 /

  창문에 그림자 /

  고요히 어른거릴까.


글자 하나하나 뜯어보면 분명 그 의미가 크게 느껴질 듯

싶지만 우선은 청량한 바람이 뽀얀 안개가 피어오른 듯한

청량의 산 계곡에 부딪혀 아름다운 소리를 연출하는 정경

정도로만 느껴져도 충분할 듯 싶었다.


내게 있어서 청량의 가을 바람소리는 언제까지 기억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산행은 더욱 더 의미 있는

산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2005. 11. 2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