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산 길이다.
하산 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음사 코스이다.
바람. 바람. 바람...
“어서 빨리 거친 바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이런 심산으로 일행들을 독려하며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3분쯤이나 되었을까,
결국 나는 일생일대의 최대 대형 사고를 유발하고 만다.
내리달리는 가속도에 무거운 배낭에 육중한 나의 몸은
마치 고목나무 쓰러지듯 무려 세 계단을 미끄러지면서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깨달았을 때는
콧등 언저리에 비쳐지는 붉은 핏덩이를 보고
통증보다 더 큰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뒤에 따라오던 동료직원이 상처부위를 보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별거 아닌 것처럼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나는 상처가 심각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우선 지혈부터 시켜놓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싶었고
어서 빨리 치료하여 얼굴의 흉터를
미리 막아보고자 갈망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성판악을 출발,
관음사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의 산행 소요시간은
총 6시간에 불과하였다.
산행 예상시간 8시간 보다 무려 2시간이나 빠른 시간에
하산하였기에 우리 일행을 제주항으로 이동시킬
관광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한가로이 관광버스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터라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제주시내의 모 약국에 들려
상담을 원했으나 상처주위를 살펴 본 약사는
상처가 너무 깊다며 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권유한다.
거울로 들여다 본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흉측했었다.
이마 부위에는 그다지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상처부위가 예상보다 넓었으며 안경테에
패인 콧잔등은 우려했던 대로 깊게 패였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응급조치를 받았다.
치료를 맡았던 의사는 흉터를 우려하는 나의 질문에
요새는 약이 워낙 좋아 잘만 치료하면
흉터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한 가닥 위안을 준다.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
승선할 시간이 임박해 왔다.
한라산을 오를 때 제주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놓았던 생선회를 인수 받으며
값을 치르려했지만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회 값으로 거둬들인 공통경비를 고스란히
절약할 수 있었다.
인천 연안부두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였다.
같은 일행을 생각해서라도 언제까지나
상처에 대한 공포감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을 다독거려가며
일행과 어울려 회도 먹어보고 술도 마셔보지만
상처에 대한 걱정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출근 할 것이며
흉측스런 얼굴로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만의 하나라도 술에 만취되어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것이라고 지례짐작하게 된다면
그 알량한 나의 체면은 또 어떻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11월 2일에 출발하는
미주여행 일정에 과연 합류할 수 있을까였다.
또다시 선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걱정스런 마음으로 귀가하였지만
마눌은 속이 상한 눈치는 역력했지만 정성스레
치료를 해준다.
이렇게 해서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선박을 이용한
한라산 산행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피로 얼룩진 산행이
되고 말았다.
※ 10.22일 한라산 산행이후 한참 뒤에 정리해 본
산행기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이마에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촉같이 사라졌고 깊게 패인
콧잔등의 상처도 완치되어 가고 있다.
물론 아무 탈 없이 미주여행에도 합류하여 잘 다녀왔다.
돌이켜보면, 그 날 사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었다.
첫째는 날씨가 그리 고르지 못했던 날에
그것도 현재의 시력과 맞지 않은 선그라스를
착용했었던 것이었고
둘째는 산 앞에서는 늘 겸손 하라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고 급경사 계단 길을 뛰었던 것이 문제였었다.
깊게 패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흉터가 발붙일 틈을 주지 않게 곱고도 건강한 피부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