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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 남자의 중추절 연휴

 

 

★연휴 첫날(9.20)

열흘 전에 미리 와 계신 어머님의 명을 받고 아침

일찍 기상하여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눌과 함께

까르푸며, 롯데마트 등등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차례 장을 봤다.

오후에는 본격적인 차례준비...

컴퓨터를 켜고 미리 입력 시켜 둔 지방을 출력했다.

확실히 이것도 현대문명의 이기가 아닌가 싶다.

(아마 하늘에 계신 선친께서도 정교하게 쓰여진 지방을

보시고 좋아하셨으리라......)


다음 차례는 내가 젤 싫어하는 일, 밤을 깎는 일이다.
밤을 치는 일은 언제나 어머님의 몫이었지만 오늘은

워낙 많이 준비한 양이었기에 거들어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악!!
밤을 몇 개 치다말고 예리한 등산 칼로 나는 그만 왼쪽

인지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금새라도 떨어져 나갈 듯 살점이 아스라이 붙어있다.


어머니 : 애비는 어릴 때에도 일만 시키면 작업도구를

고장 내 놓던지, 아니면 몸이 다치던지 늘 사고를 치더니만

그 버릇은 지금도 변함이 없구나... ㅉㅉ

마눌 : 맞아요.. 어머님, 저이가 또 일하기 싫어서

깨가 나나보네요....

나 : 하이고, 아파라...내 손가락아!! ㅠㅠ
(그러나 피를 본 댓가로 나는 편히 쉴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마산의 동생네 식구들이 들이닥치고

저녁시간에는 이종 형제네 식구들이 추석 전에

미리 어머님을 뵌다고 방문하였다.
오랜만에 조우한 친척끼리 어울려 술판을 벌이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그렇게 벌인 술판은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끝이 났다.

당연히 힘들어하는 사람은 마눌이었다.

맏며느리의 비애는 남푠만이 알아줘야 하는 벱인데

도와주지 못하는 내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였다.
둥근 달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휘영청 떠 올라있는 보름달이 무척 탐스러워 보였다.


★추석날(9.21)

정갈한 마음으로 차례를 지낸다.
몇 번씩이고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내게 있어서

차례예법은 아직도 서툴기만 하다. 열시가 넘어 차례는

끝났으며 다른 손님들은 모두 가시고 동생네와
우리 가족만 남았다.


대일밴드로 다친 손가락을 싸매고라도 설거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계수씨가 있어서 그만 두기로 한다.
오후에는 한사코 산에 오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설득하여 동생네와 우리 가족이 함께 모락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준비해 간 차례음식으로 맛있게 한 판

벌이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추석이튿날(9.22)

동생네도 떠나고 우리 식구들만 남았다.

가까운 온천이나 다녀올까 마음 먹고 있는데 마눌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이불에서부터 소파커버에
이르기까지 빨래거리들을 잔뜩 내놓고 있다.
(오늘 아니면 빨래할 시간이 없다나, 우짠다나?)

등치 큰 빨래들을 욕조에 가득 쳐 넣고 세제를 푼 다음,

마구 밟아댔다. 그러기를 한 두시간....

하나하나 세탁기에 집어넣고 행군다음, 탈수시켜
양지바른 복도난간에 신문지를 깔고 널었다.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여 빨래는 금새 말랐다.

마눌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면서 흐뭇해했다.

세시쯤에는 나 홀로 다시 관악산에 올랐다.

 (집에 있으면 또 다른 심부름을 시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에.......)


연주대에서 바라 본 가을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하늘이
어찌 그리 좋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