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부님의 기일을 보내면서...

 

 

주말 아침,
베란다 창 넘어로 맑게 내리쬐는

결 고운 햇살이 무척 싱그러워 보인다.

어제는 조부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

23주년이 되는 기일이었다.
23년 전,

그 날도 이렇게 맑은 가을햇살을 듬뿍 받고
오곡백과의 물결로 가득한 들녘은 풍성하게

무르익어 갔을 것이다.

집안의 장손이라는 거,
당사자에게는 분명, 유산 따위하고는

상관없이 가문의 명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긍지가 몸에

베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눌입장에서는 어디 그런가?
장손과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 이후 줄곧 그렇게 제사를 모셔 왔으니

이젠 이력이 날만도 하겠지만
속은 그리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이해하신
어머님께서 마산의 동생집에서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급거 상경하셨다.

이 세상에서 팔순 노모의 말씀 만큼이나

가슴에 와 닿는 심오한 진리가 또 있을까?
그러셨다.

어머님께선 워낙 총기가 대단하셔서

음식의 배치에서부터 제사의식이 종료될때까지

모든 절차를 도맡아 척척이시다.

창피스럽게도 그런 배려 덕택에 나나, 마눌은

여태껏 제사의식의 절차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제사의식이 종료되고

조부님 생각에 골몰하신 어머님께서 갑자기
"애비야? 너, 중.고등학교다닐 때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신 서당에 다닌 기억나냐?"

 

이렇게 물으신다.

"예? 어머님, 알고 말고요...

그때 배운 한학(漢學)이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는걸요,"

사실 그랬었다. 그 당시 나이가 지긋하신

동네 형님들과 함께
허리를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흔들면서

익혀 둔 명심보감, 소학 등에 나오는
한학의 의미들이 내 인생의 여정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조부님 기일이 하루가 지난 지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 온다.
내 손주를 다른 사람들과 한데 어우려서

교육을 시킬순 없다고 한사코 반대하시는

조부님을 끝까지 설득하셔 마침내

뜻을 이루신 어머님,
정말 그러셨던가요?
그러기에 저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제 기억속에서 지워지는 이름들이

무수하게 많겠지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그럴수 없는 딱 한분, 바로 내 어머님이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머님은

내게 손수 담아오신 마늘 술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