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구간(아홉골고개~남산~백월산~홍동산~덕숭산~나본들고개
"꽃은 예쁘지만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주워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잘 물든 가을 단풍은 주
워가서 책갈피에 끼워 오래 간직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노인도 잘 늙으면 청춘보다 낫다."
법륜스님의 말씀이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지당하신 말씀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유감스럽
게도 노인은 많은데 어르신은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르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젊
은이들로부터 마음 속으로 존경받는 자만이 진정한 어르신인 것이다.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잃는 것 중 하나는 정신적 어른들로부터의 호통이 없어졌다는 것이
다. 어느 날 문득 보니 하늘같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없는 것이다. 외롭다. 삶의 이정표
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산 같은 어른들의 숲속에서 보호받고 있는 어린이는 얼마나 안전한가. 호통은 늘 보호와 함께
하기 때문에 아프지만 따뜻하다. 존경할 만한 노인이 적은 나라의 젊은이는 불행하다. 요즘 우
리의 젊은이들이 그렇다.
꼬장꼬장, 고집불통,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려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노인이다. 눈썹을 새까맣
게 그리고, 입술을 도톰하게 칠하고 노령을 화장술로 감추려는 사람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
하는, 무엇이든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다 노인들이다.
반면에, 인자하고 점잖은 느낌, 대가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는, 말하기 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아
직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는, 인내하고 지켜보는 이런 분들이야말로 어르신들이다. 나의 삶도 잘
물들어 가는 우아한 단풍처럼 곱게 늙어가고 싶다.
그리하여, 훗날 어르신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추(老醜)" 소리는 듣지않아야 할텐데..
오늘은 유럽 나들이 후 처음 가는 정맥산행이다. 정맥산행이 다 그러듯이 오늘도 산행시간이 무
려 8시간 이상으로 예고돼 있었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체력은 약해지지만 이 가을, 저 찬란하
게 빛나는 단풍처럼 아리아리한 사랑을 위해 산길을 걷는다.
산행 일시 : 2015. 10. 18(일)
산행 코스 : 아홉골고개~ 남산~ 하고개~ 백월산~까치고개~홍동산~수덕고개~ 덕숭산~나본들고개
산행 시간 : 약 10시간
오늘 산행 들머리인 아홉골 고개이다.▼
오늘 정맥산행은 일단 전반부에는 평이한 산길이었다. ▼
철로 위 육교를 건너고...
마을 들판길을 거닐며 지금까지는 제법 평화스러운 정경을 맞으며 걷는 길이었다.▼
아, 그런데 중앙분리대를 넘어 저 차도를 건너야 하다니.. 위험천만한 노릇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정맥마루금은 곳곳이 단절됐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건너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수 킬로미터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해 한 용운 선생의 동상 앞에서...▼
걷고 또 걸으며,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이제 백월산은 400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드디어 해발 394미터의 백월산 정상이다. 이곳은 작년에 우리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올렸던 산이라서 유난히 정스러워 보였다.▼
해발 308.9미터의 홍동산 정상이다. 전반부 코스와는 달리 후반부 산행은 이른바 빨래판 구간이
많아 무척 힘들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산행시간도 훌쩍 7시간을 넘겨버렸다.▼
마지막 덕숭산을 오르기 위해 우린 수덕사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덕숭산으로 향하는 도중에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산행시간도 8시간을 넘겼으니 그럴만도
했다. 거기에다가 유럽여행이후 산행다운 산행을 못했으니 체력이 바닥을 칠 수밖에..▼
이를 악물고 천신만고 끝에 해발 495미터의 덕숭산 정상에 이르렀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진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아, 그런데? 덕숭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던 중 6명의 중간그룹 전사들은 대형 알바를 하고
말았으니...ㅠㅠ
파란 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변해버렸다. 내 몸 상태도 최악이었다.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
을 것 같았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인증샷만은...▼
본부와 무전 연락을 취하고 버스가 다니는 길을 찾아 걸었다. 들녘에는 잘 익은 벼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지만 몸이 고달퍼서 시야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버스 길에 도착했
을 때는 산행시간이 이미 10시간을 넘고 말았다. 오늘 산행도 참으로 힘든 산행이었다.▼